몇 년 만에.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고 처음인 것 같다. 남편과 데이트를 했다. 느긋하게. 아이들이 기관에서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제한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여유로웠다. 아이들 없이 맨몸으로 나갔는데 그럼 말 다 했지.
한참 전부터 함께 먹을 점심을 정성 들여 골랐다. 특별한 날인데 1분 1초도 아쉬워서 미리부터 집을 나섰다.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의 푸릇한 이파리 사이로 아직 덜 익은 도토리가 보였다. 작고 아직 초록색인 채 같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는 도토리는 언뜻 이파리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런가 평소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이 나서 사진을 찍는데 이번에는 잘 익은 갈색 도토리가 쩍 벌어진 곱슬머리 모자를 쓰고 눈에 딱. 잎 속에 숨어 있는 것을 까치발을 들고 팔을 쭉 뻗어서 찍어냈다. 얼마나 신이 나던지.
"따서 하나 가져가."
신나 하는 게 얼굴에 다 보였는지 옆에서 남편이 한마디 하더라. 그런데 따가라니 이런. 잘 여물고 있는데 아깝게. 안된다고 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이게 웬걸. 벌써 다 익은 도토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이들 생각에 하나 줍고, 두 개 줍고, 또 하나 줍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 숫자대로 네 개나 집어와 버렸네? 덤으로 모자도 두 개만 집어왔다.
집에 와서 소독액으로 샤워도 해주고, 지금은 냉동실에 잘 넣어두었다. 땡글하고 윤이 반질반질 흐르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지. 내일은 기다리는 아이들 손에 꼭 쥐어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