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더워'를 입에 달고 있었는데, 오감이 온통 이상해진 것처럼 여름이 한발 물러났다. 눅눅하지 않은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바람에서는 바삭하게 마르고 박하처럼 시원한 냄새가 났다.
'가을이 오나 봐'
더위에 짓눌려 있던 아이들과 나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난리가 났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마중 나가는 길.
아침부터 차갑게 느껴지던 공기는 해가 실컷 땅을 데우고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서늘했다. 마구잡이로 휘날리는 머리카락들을 정리하다가 고개 들어 앞을 보았다. 내 머리카락처럼 아무렇게나 늘어진 풀들이 바람에 붙들려 파르르 소리 내며 옆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길어서 바닥에 쓸리던 풀이 가지런히 옆을 향한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보고 싶었다. 늘 느끼지만 보지 않으면 소리가 배가 돼서 귓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쏴아' 같기도 하고, '파르르 파르르' 같기도 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여기가 너른 초원이구나.
나는 순식간에 탁 트인 넓디넓은 초원 위에 서 있었다. 푸릇한 풀줄기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파도치고 그때마다 연두색, 녹색, 진녹색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초원 위를 실컷 뛰어다니고, 데굴데굴 구르며 놀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감고 내내 생각했다. 그러다가
"안녕하세요."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의 인사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아. 여기 초원 아니네. 괜히 아쉬움에 쩝쩝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