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가을에 '오히강(お彼岸)'이라 부르는 시기가 있다. 이 무렵에는 붉은(주로 붉은색이고 흰색, 분홍색등도 있다.) 꽃무릇이 핀다. 올해는 우리 집 정원에서 피던 꽃무릇조차 모습이 보이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시엄마)가 할아버지 성묘를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하. 했다.
다 같이 가면 참 좋지 싶었다. 나와 둥이들은 안 간 지가 꽤나 되었고, 휴일(추분의 날 : 秋分の日)에 성묘핑계로 나가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번개(급만남)이라도 하듯 가자는 한마디에 아이들에게(둘째를 뺀...) 그러고마 동의를 얻어내었다. 우리는 바람이 휘날리듯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할아버지의 묘는 차를 오래 타서 피곤할 염려도 없고 여차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차를 타고 간 묘지(음. 보통 霊園、 霊苑 - 둘 다 발음이 레이엔이다. -라고 부르는데 유골함을 모셔두는 곳으로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묘지라고 하니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개인적인 고정관념 때문인가.) 에는 사람이 많았다.
논밭을 끼고 있는 입구는 들어가려는 차와 나가는 차로 북적거렸고, 입구에 있는 꽃가게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묘지 안에도 차가 얼마나 많이 세워져 있던지. 이제껏 이렇게 사람 많은 것은 처음 본 지라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오래오래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와서 늘어놓고 절을 하고 이런 것은 아니라 들어왔던 사람들은 금세 빠져나갔다. 다시 많이 들어와서 계속 사람이 많아 보이는 것일 뿐.
우리도 할아버지 모신 곳을 찾아가서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 사 온 꽃을 꽂아드렸다. 가족들끼리 나누어 향을 피우고 인사도 드린 것은 물론이다. 이게 좀 웃겼는데. 정성스레 향을 한두 개 피우고 이런 게 아니라 와일드하게 막 뽑아서(시엄마가 대강 꺼내주셨다. 많이 피우라고 하시면서.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불에 태워 향 올리는 곳에 휙휙 던져 넣었다. 손 뜨겁다고 대충 넣다가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걸 보며 서로 깔깔대며 냉큼 집어 정리하기도 했다. 인사드릴 때 남편은 하지도 않았는데 시엄마가 가자고 하는데서는 참지 못하고 빵 터져서 웃어버렸다.
그러니까 뭐랄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휙 성묘를 했다고나 할까. 엄숙한 분위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고 즐거웠다. '우린 다 잘 지내요. 할아버지도 잘 지내시죠?' 하는 느낌의 성묘.
성묘보다 그 뒤에 슈퍼에 가서 장 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건 이제야 생각하니 우습다.
하지만 들어오는 사람은 많고 서로 방해되지 않게 볼일을 보고 나가야 했으니까. 날씨는 오랜만에 선선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인지 시원한 바람만큼 속도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