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주 오래된 취미가 하나 있다. 내 주변 사람 중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대놓고 말을 할 기회가 없어 그렇기도 하지만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처럼 뚫어져라 뜨고 입은 헤- 벌린 채 쳐다보는 것을 자주 걸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란 바로 ‘방 구조도 보기’이다. ‘평면도’라고 하는 편이 좋을까? 새로 지은 아파트를 광고하는 전단지나 어느 유명인의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에서 볼 수 있는 그 집의 평면을 알 수 있는 그림 말이다. 안방, 거실, 화장실, 욕실 등이 그려져 있고 친절하게 넓이까지 적혀 있기도 한 그것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재미있다. ‘여기엔 이런 벽지를 바르면 멋지겠다. ‘, ‘욕실은 좀 더 넓은 게 좋은데…’, ‘세탁실을 좀 더 넓고 햇빛이 잘 들게 만들어서 빨래를 말릴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고민들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정신이 다 없을 지경이다.
이것저것 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조가 있을 때엔 언젠가 쓴답시고 베껴도 보지만 문제는 이 평면도 따라 그린 것이 어디 들어가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쓸 일이 있어야 꺼내 볼 텐데 그렇지 않으니 실컷 그리고도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 마냥 까먹어 버린다. 아마도 중요하지 않으니 머릿속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버리는 것이겠지.
가끔 들여다볼 때만큼은 열심히도 본다. 어릴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 통지표에 ‘상상이 심함’이라고 까지 적힐 정도였던 나는 평면도를 보면서 집을 한채 짓는다. 가구도 배치해보고 직접 둘러보기도 한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곳은 내 입맛에 맞게 수정한다. 자연스럽게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생겨 남들이 해 놓은 인테리어를 들여다보는 것 역시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잔뜩 있어 늘 집안이 거지꼴이다 보니 이쁜 인테리어는 항상 그림의 떡인데 그놈 떡 한번 먹어보자고 정리를 하려니 이번에는 수납에도 눈이 간다. ‘좁은 집 넓게 쓰는 법’, ‘집 꾸미기’ 같은 책을 열심히 사 모았다. 그렇다고 멋진 인테리어와 마법 같은 수납법의 달인이 되었냐고? 아니다. 책은 한두 번 보고 책꽂이에 꽂혀 잊혀간다. 이사를 갈 때는 꼭 가지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책은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 결국은 햇빛도 받지 못하는 창고 속에 쌓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쓸 일이 없으니 구석에서 먼지 쌓인 책들은 삶에 지친 나를 잠깐 동안 멋진 상상 속 공간으로 데려가 쉴 수 있게 해 주니 힐링을 위한 어느 날을 위해 소중히 모셔놓는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버려도 되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가끔) 즐거운을 주는 것' 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그것이 존재할 충분한 이유와 원인이 있다 그랬던가.
지금 '쓸데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혹시 쓸모없다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존재의 이유를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