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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하얀 도라지~ 레~는 둥근 레코드~ 미~는...
이게 무슨 표시냐고?
옛날 고리짝에 일하던 시절 쓰던 pytho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이다. 뜻인즉슨, '도~는 하얀 도라지...'를 무한 반복하라. 물론 '도~는 하얀 도라지...'로 시작되는 노래는 모두가 다 아는 그 노래가 맞다. 바로 '도레미송'
언젠가 수없이 이 노래를 반복했던 어느 날 밤이 문득 생각나서 멋들어지게(?) 써 보고 싶어졌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겨대며 일하던 젊은 시절의 나를 추억하며 말이다. 그때는 나 홀로 일하던 그 시간들이 행복한 줄 몰랐다. 한 날 한 자리에서 같은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부를 줄도 몰랐음은 당연하다.
첫째가 만으로 3살. 둘째가 3개월쯤 되었을 때던가.
당시 첫째는 동생이 태어난 신고식을 호되게 하던 중이었다.
둘째가 생기고도 버스와 전철을 타고 꽤 먼 곳까지 놀러도 다니고 원하면 안고 다니기까지 했던 아이. 갑자기 8개월 무렵 절박 조산의 위험이 있다고 의사에게 외출금지가 떨어지는 바람에 아빠와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나에게 보내온 아빠와 찍은 사진 속 아이는 슬픈 눈을 하고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 하던 것에 익숙해지려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을지... 안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안 봐도 뻔했다.
그날은 칭얼대며 자지 않는 둘째를 애기띠로 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잘 놀던 첫째가 졸음이 오는지 안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둘째를 앞으로 안고 있었던 탓에 안아줄 수가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누우면 재워준다고 했는데 안아서 재우지 않으면 자지 않겠다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울었다. 부릅뜬 눈에서 원망이 느껴졌다. '아이고...' 같이 울고 싶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울고 발버둥 치기는 했지만 누워는 있길래 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뭘 해야 잘 수 있을지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퍼뜩 노래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애기 때부터 노래로 둥게 둥게 하며 재웠었다.
노래를 불러준다고 달래며 눈을 마주치고 도레미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왜 그 노래를 선택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가사를 바꾸기 쉽고 노래가 길게 느껴져서 그랬을까? 처음엔 안 자려고 버티며 소리 지르고 울던 녀석이 점점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느낌상 몇 시간은 부른 것 같지만 사실 한 시간 불렀나? 가사가 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않아서 제멋대로 바꿔가며 불러댔다. 제발 잠들라는 간절함을 담아서.
'도는 하얀 도라지, 레는 둥근 레코드, 미는 하얀 미나리(미나리가 하얗던가? 하얀 게 자꾸 나온다), 파는 파란 하늘에, 솔은 솔솔 솔나무, 라는 라디오고요, 시는 졸졸 시냇물~' 이런 식의 가사를 끊임없이 반복했었다.
레가 노란 레몬이 되기도 하고 파가 짹짹 파랑새가 되기도 했던가.
멍~ 하니 눈에 초점이 없어지는 듯하더니 드디어 눈이 감기고 잠이 들었다. 칭얼대던 애기띠 안의 둘째도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오호라. 일석이조. 첫째를 재우려고 노래를 불렀더니 둘째까지 잠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들어보니 여기저기 나뒹구는 장난감들과 말려서 구석에 밀려있는 이불들로 온 방안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휴우... 그래도 해 냈다!!!' 그때가 처음으로 첫째를 안거나 업지 않고 재운 순간이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해냈다!
한번 해내고 나니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이도 이해를 해 준건지 억지로 익숙해지려고 맞춰준 건지 모르지만 잠 잘 준비를 하고 노래를 불러주면 자는 날이 늘었다. 그렇다고 100% 의 달성률을 보인 건 아니지만 혼자 떨어져 자기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니까!
노래도 점점 반복의 횟수가 줄었다. 레퍼토리도 늘었고 말이다.
내 노래 실력은 어떻게 됐냐고? 가수 뺨칠만한 실력은 생기지 않았지만 뭔가를 하면서(예를 들면 집안일 같은) 리듬을 타며 끊임없이 부르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건 아이 달래는 것 외에 어디에 써먹는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