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우리 마음 푸르게 푸르게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일을 그만두기로했다.

by 프니

어린 시절의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피곤한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 저질체력은 기본이고, 잔걱정도 많아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아이였다. 또, 어른들 말씀은 잘 들어서 그것도 참 피곤했다. 특히,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쉽게 고칠 수 없었던 버릇이 있다. 그건 바로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



초등학생 때, 엄마는 가끔 등교하는 내게 500원짜리 동전을 쥐어주었다. 그런 날이면, 학교를 마치고 컵떡볶이 300원어치, 피저를 사 먹는 탕진 잼을 했었는데, 문제는 그럴 때마다 항상 옷에는 떡볶이 국물을, 주머니에는 과자, 떡볶이 국물이 묻은 꼬깃꼬깃한 휴지들을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항상 돈만 쥐어주면, 꾀죄죄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혼을 내기도 하고, 진지하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라며 다독여주면서 말했다.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지 말고, 가게에서 먹은 후에 쓰레기는 그곳에 버리고 오고, 과자도 다 먹었으면 길가 쓰레기통에 넣고 집에 올 때는 깨끗하게 좀 오라고.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당연한 행동이긴 하지만, 초등학생의 나는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사는 집에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래도 착한 어린이병에 걸렸던 게 틀림없다.) 분명,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잠바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쓰레기를 하나 둘 모으는 수집가가 되었던 나.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도로에서 쓰레기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컵떡볶이를 파는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대신에 나는 지하철, 버스를 타고 돈을 벌러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었는데(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문제는 여전히 쓰레기를 집으로 들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저지른 실수, 상사에게 들은 자존심 상하는 말들 같은 너저분한 쓰레기를 주머니에 꽉꽉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욕실에서 맨몸으로 샤워를 한 후에도 여전히 내 몸에 붙어있는 그 감정 쓰레기 조각들은 잠들 때까지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그렇게 나는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고 들어왔던 초딩몬에서, 쓰레기 때문에 피곤한 직장인으로 진화했다.

주 5일 다녀도, 체감 7일 내내 회사에 가는 피곤한 사람이 돼버린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 스트레스 어떻게 극복해?, 아니 어떻게 버텨?" 대부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싶은데 계속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한 친구의 말은 좀 달랐다.

"그냥 나는 퇴근하는 순간 스위치를 꺼버려, 회사 생각 1도 안 나고."

헐? 아니, 회사에서 실수를 하고 온 날에도 그렇다고? 믿을 수 없던 나는 재차 물었다.

"실수는 다시 안 하면 되는 거고, 어차피 일은 저질러졌고 수습했으면 됐지, 뭘 계속 생각해"라는 명언을 내게 선사하셨다.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덤덤하게 말하던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빛나고 멋있어 보이 던 지, 그 경외로움에 정신이 나가 햄버거 먹는 것을 잊을 뻔했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항상 잠바 주머니에 꼬질꼬질한 쓰레기를 들고 왔던 나에게 했던 그 말이 어쩌면 오늘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구나 하고 말이다.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 이입하지 말자!

생각해보면, 초딩의 나는 쓰레기에 감정이입을 했었던 것 같다. 아, 이거(쓰레기)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되는데, 다 이거 싫어할텐데, 그냥 불쌍하니까(?)집에 들고가자 하는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직장인의 나도 쓰레기에 감정이입을 했다. 아, 이거(쓰레기)때문에 너무 짜증나는데, 회사에다 버리고오면 다들 짜증나겠지, 혼자 담아두는게 낫지, 그래 집으로 가지고오자.하면서 집에와서 눈물의 쓰레기잔치를 연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오늘의쓰레기를버리러가는오늘의나

잘 버릴 줄 알아야, 잘 산다.


때문에, 진짜 으른다운 어른은 쓰레기를 잘 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쓰레기, 직장동료 때문에 화난 감정쓰레기, 상사의 폭언으로 무너져버린 마음쓰레기 등등을 집에 오기 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는 것. 외부에서 생성된 쓰레기를 집으로 끌고 들어오지 말 것, 너무너무 어렵지만, 조금 조금씩 버리는 연습을 할 것, 잘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될수록 단단한 내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잊지말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우리마음 푸르게~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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