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일삼는 삶

어른이 되면 거짓말쟁이가 안 될 줄 알았는데

by 프니

지금으로부터 어언 20년 전, 초등학생 때 일이다.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내 생일만큼이나 기대되는 날이었다. 손으로 남은 날들을 세며 무슨 선물을 사 갈까 고민하던 설렘은 소풍 가기 전날만큼의 벅참과 같았다. 친구에게 딱 어울릴 만한 문구세트를 선물로 사고 친구 집에 도착해,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고 박수를 쳤다. 짝짝, 주인공인 친구도 초청받은 친구들도 모두 신명 나게 웃으며 음식을 먹고 놀았다.


5단으로 쌓인 김밥 탑, 탕수육, 떡볶이는 짜장, 매콤한 맛이 두 개나 있었던 그곳은 생일파티의 성지였다. 그런데 어느샌가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 어머님은 생일상 앞에서 죽을상을 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셨다.

"어디 아프니?"

"그냥 배가 좀 아파요."

"체한 거 같은데, 잠시만."


잘은 모르지만 정직하게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혹시 집에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조금 더 놀고 싶은데. 하는 마음에 괜찮다고 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이미 괜찮지가 않았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게 친구 어머님은 검은 병 하나를 가지고 오시더니 내게 건넸다.



"저.. 배부른데.."

"이거를 지금 먹어야 속이 괜찮아질 거야."

"아,, 혹시 약이에요?"


약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대충 병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더니 고약한 썩은 내가 났다. 입에 쓴 게 약이라더니 과연 그건 약이었다. 약이라는 말에 곧 인상이 찌푸러진 네 손을 아주머님은 꼭 잡아주셨다. 그리고 말하셨다.


"약은 약인데 콜라 같은 거야, 콜라"


아.. 콜라 같은 맛의 약이구나. 이약을 먹으면 나도 다시 뛰어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그 약을 먹기로 했다. 이건 콜라다.. 콜라다 주문을 걸고 조그마한 입으로 털어 넣었던 바로 그때, 나는 친구네 거실 바닥에 그 쓰디쓴 액체를 트웨엑 하고 뱉어버렸다.


냄새는 구려도 맛은 콜라인 줄 알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본 무서운 맛을 순간 뱉어버렸고, 내 집도 아닌 남의 집, 그것도 잔칫날에 더러운 짓을 해버린 게 너무 미안하고 또 너무 서글퍼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결국 속이 좋지 않은 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참 억울했다. 이런 날 재미있게 놀지도 못하고, 게다가 아프기까지 하고, 심지어 무례를 범하게 될 줄 몰랐는데. 급하게 먹지 말라던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약을 콜라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뱉지 않았을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처럼 콜라면 바로 삼키지 않았을까? 나를 도와주시려 했던 친구 어머님의 배려가 어린 마음에 약간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소화제 대신 콜라라고 말하셨을까?


생각해보니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조금 더 어린 나이일 때 엄마는 감기약 부루펜시럽을 환타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어쩐지 환타를 숟가락에 떠서 주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엄마 말이니까, 엄마니까 믿었는데 당해버렸던 날, 나는 다시는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엄마는 내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왜 내게 거짓말을 한 걸까? 어른이면 거짓말을 해도 될까? 피노키오의 코를 교훈 삼아 정의로움을 조기교육 받은 그 당시 나는 거짓말을 입에도 대지 못할 멋진 어른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게 바로 하얀 거짓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친구 어머니는 노란, 엄마는 주황 거짓말. 어쨌든 나도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약간 슬픈 것은 하얀 거짓말뿐 아니라 온갖 색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퇴사를 해놓고도 엄마에게는 출근하는 척을 한다거나, 회사에서 개 힘든데 그냥 힘든 척만 한다거나, 가끔은 너무 외로우면서 혼자라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거나, 싱거운 반찬을 먹으며 간이 딱 맞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거나, 등의 사소하지만 또 사소하지 않은 거짓말들.


지금껏 살아오면서 쌓아온 거짓말들의 물감을 캔버스에 촥 뿌려 섞인다면 과연 어떤 색이 돼버릴까 생각해보니 결국에는 다시 거짓말처럼 하얀색이 되지 않을까?

거짓말을 한다는 건 어쩌면 나보다 남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다 큰 딸이 난데없이 실직자가 돼버리면 걱정을 하게 될 엄마를 생각해서, 나를 위해 밥을 차려준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소화제를 건네주며 콜라라고 했던 친구 어머님처럼, 숟가락에 부루펜을 덜며 내게 권했던 그날의 엄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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