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이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이탈해도,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by 프니

본가에서 서울로 회사를 다닐 때니까, 3년은 더 된 일이다. 그날도, 녹초가 된 채로 마을버스에 올라타 기사님 뒷자리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시들어버린 콩나물처럼 창문에 머리를 힘없이 기대었다. 매일 같은 버스시간. 매일 같은 하루, 매일 보는 기사님, 매일 보는 풍경, 퇴근시간마다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멍을 때릴 때였다. 갑자기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어..? 어.... 어..!!!"

우회전해야 하는 사거리에서, 기사님이 직진을 하신 거다. 직진하면, 버스노선에서 벗어나는 건데? 어?? 아니 기사님.. 의 ㄱ도 나오기 전에 기사님은 쿨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직진을 하셨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날 때쯤, 기사님은 고개를 돌려 말하셨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마을버스 10년 역사상, 유턴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를 탈 확률은 몇 프로나 될까. 로또를 사 갈까 하다가 마지막 종점, 아파트 앞에 내렸다. 기사님은 한 명 한 명 내릴 때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이셨는데, 단 한 명도 화를 내지 않았던 그날 이후로 난 사거리에 신호를 받고 서있을 때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늘도 우회전하셔야 되는데, 직진하시면 안 되는데 하고. 하지만,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으며, 그날도 조금은 돌아왔지만 모두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단순한 해프닝이었다.



옆으로 꺾어도, 꺾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대학교에 갔고, 또 취직까지 했다. 앞으로 내가 해내야 할 건 결혼뿐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인생이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안정적이고(정년보장) 상여금도 많이 주는 회사라는 버스에 타고 있었지만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하라는 거 했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려고 노력했고, 인격 모독을 느껴도 참으라면 참아야 했다. 버스의 운전대는 회사에게 맡겨두고, 그 뒷자리에 앉아 운전사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렇게 4년, 마을버스로 따지면 몇천 바퀴, 아니 몇억 바퀴를 더 돌았을까. 미치도록 그 버스에 내리고 싶었지만, 벨을 누르고 내리는 행위는 더 미칠 만큼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옆길로 새는 순간 내 인생은 망하지 않을까 싶었다. 서른을 앞둔 딸이 이제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했다고 마음을 놓았을 부모님과의 갈등, 이 회사를 나온 뒤의 불확실한 상황은 나를 불안하게 했으니까. 그렇다고 퇴사를 결심한 건 특별한 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쩌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용기를 내 핸들을 꺾었다.



꺾어야 보이는 것도 있다.

기사님이 우회전 대신 직진을 했을 때 봤던 창밖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동네 토박이로서 보았던 길거리의 간판, 가게들의 모습이 그날따라 어찌나 낯설던지. 마치, 처음 놀러 온 지역의 모습 같았다.


퇴사를 하고, 또 3년이 흘렀다. 그사이 내 인생 슬로건은 안 해본 짓을 하자였다. "내가 어떻게 퇴사한 건데! 어? 그동안 못했던 거 다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우연히 독립출판을 만들어 팔았고, 북마켓도 나가보고, 캘리크라피도 배워보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그날의 기사님처럼, 옆길로 새어보지 않았다면 못해봤을 일들을 이것저것 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도 해보지 못하던 일을 하던 나는, 현재 감사하게도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더는 일요일 밤이 두렵지 않다. 만약, 그때 핸들을 꺾지 않았다면 지금 행복했을까? 자문한다면 바로 답하겠다. 행복은 모르겠고 일단 나온 건 정말 잘했노라고.



어짜피, 정류장은 여러 개니까

물론 인생을 살면서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할 순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지만, 내 첫 직장은 정말 너무했다. 나는 전화를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며, 남들과 협력해서 일을 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작업을 해서 하루에 성과물이 나오는 그런 일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 내가 한 일은 이랬다.

하루에 최소 30-40통 전화를 받으며 이 말, 저 말을 전해야 했고, 숫자를 너무 싫어하지만 하루 종일 비용을 따지는 일을 해야 했고, 1원 가지고 이 말 저 말을 들어야 했으며, 하나의 일이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1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니 내게는 참 고역이었다. 이건 뭐 이말년 씨에게 내일부터는 그림 때려치고 회계사 하라는 느낌?


물론, 회사라는 울타리가 가끔은 그립다. 그래도, 4대 보험 없는 프리랜서를 하게 된 과정에서 가장 좋은 점은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는 일이었다. 정신없이 숨겨져 있던 적성을 찾아가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회사정류장을 지나쳐, 새로운 정류장에 와 있었다.


나는 여전히 한치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에 떠는 겁쟁이지만 단순한 겁쟁이는 아니다. 여긴 아니다 싶을 때 헨들을 꺾고 하차할 수 있는, 잘못 들어온 길이라 할지라도 조금 돌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용기 있는 슈퍼 겁쟁이가 되었을 뿐!


퇴사 기념? 회식을 하는데 앞에 앉은 대리님이 말했다.

"여기 들어오고 싶은 사람 벌써 줄 섰는데. 이대로 나가기 아깝지 않아요?"

속으로는 "내일 그만 둘 사람한테 할 말인가요,대.리.님."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웃으며 말했다.

"그분들을 위해 제가 나가려구요.호호"


누구나 좋은 직장이라고 말하던, 누군가는 신의 직장이라고 말하던 그곳에서 나는 너무 힘들고 슬프고 눈물나고 가끔은 분했다. 내게는 그곳이 천국이 아니었고,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말렸던 옆길이 천국이었다. 때로는, 옆길로 새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남들은 지옥이라 한들, 내게는 천국일 수 있으니까. 가봐야 그곳에 꽃이 있는지, 구렁텅이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사거리에서 꺾을까말까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몇 번이고 이탈해도,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keyword
이전 14화거짓말을 일삼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