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젤리를 먹는 아이들을 만났다. 마이구미, 젤리데이 종류도 다양했다. 언젠가부터 과자,젤리 대신 식재료를 사들고 가는 게 익숙한 어른은, 젤리를 먹는 그 아이들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도 소싯적에는 젤리를 좋아했다. 더 어릴 때는, 기다란 왕꿈틀이를 입안에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오래도록 먹었고, 회사 다닐 때는 작지만 단단한 하리보 젤리를 하루에 열 봉지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 내가 젤리를 손절한 지, 벌써 반년 째. 이게 다 약해빠진 치아 때문이다.
지겨운 충치치료 마지막날, 쫒기는 사람처럼 치과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입안은 가벼웠고, 공기도 상쾌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 절대 다시는 젤리 따위의 것을 먹지 않으리, 순간의 달콤함으로 나의 치아를 낭비하지 않으리. 그런데, 이 별거 아닌 말에 굉장히 슬펐다. 다시는 젤리를 질겅질겅 씹다가 치아에 달라붙은 젤리를 손가락으로 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내적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젤리 먹는 재미없이 어떻게 사냐, 아이고아이고.
그 약속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깨지지 않고 있다. 생각만 해도 입에서 군침이 돌아 행복함이 질질 흐를 것 같아도, 젤리는 입에 데지도 않고도 울지 않았던 데는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젤리 말고도 맛있는 건 차고 넘쳤으니까.
진짜다. 내 인생 젤리를 대체할 것은 없다 생각했는데 참 넘치게 많았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젤리 봉지를 까던 과거의 나는 더 이상 없다. 그동안신맛, 단맛 때문에 젤리를 좋아한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입이 심심해서였다. 보통 입이 심심할 때는 몸도 심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심해질 때마다 프라이팬을 잡고 계란을 까거나, 과일을 씻거나,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헐, 그렇게 갑작스레 뜬금없이 요리의 맛을 알게 되었다.
전자레인지 파스타부터 시작해서, 계란 딸기잼 토스트를 거쳐서 돼지고기 김치찜까지 나아간 요리 스펙트럼. 그 과정에서 나는 행복한 돼지가 되어갔다. 더 이상 젤리를 먹지 않아도, 더 이상 입안에서 젤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목구멍으로 젤리를 넘기지 않아도 행복한 돼지.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뭐.
그게 꼭 젤리일 필요는 없고.
그러고보니, 내 인생에는 수많은 젤리가 있었다. 그런데 사라졌다. 중학교 때 단골로 다녔던 라볶이 집이 있었는데 없어졌고, 고등학교 때 항상 같이 등하교를 했던 10년 친구가 있었는데 없어졌고, 지말로는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주겠다던 구남친구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당시에는 평생 내 옆에서 달달한 젤리처럼 있어줄 것 같던 그 모든 것들이 없어졌던 그날.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그날.
하지만 역시 이렇게 죽으란 법은 없다. 신은 내게, 더 맛있는 떡볶이집을 알게 하셨고, 멀어진 친구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워줄 만큼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하셨고, 구닥다리 말로 유혹했던 구남자 친구를 제거하고 평생을 함께 할 남편을 만나게 하셨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서랍 속 젤리들을 보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떠날 젤리들을 생각해도 더이상 슬프지만은 않다. 내 인생의 행복이 꼭 그 젤리 일 필요는 없으니까. 더이상 젤리를 질겅질겅 씹지 못하게 되었지만 슬프지 않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