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을 쥐고 사는 삶
그건 내게 분명 일탈이었다. 화요일 저녁 8시, 나는 배달앱을 켜서 모카케이크를 주문했다. 청국장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저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케이크를 주문했다. 옆에 있던 백도 나를 말리지 않고, 무조건 시켜! 무조건 시켜! 라며 손바닥을 치며 부추겼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모카케이크를 받기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파란 케이크 상자만 봐도,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케이크의 빛깔을 보니 흥분되는 마음은 지붕을 뚫을 것 같았다.
온몸으로 행복함을 표현할 때, 백이 말했다.
"행복은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맞아! 갑자기 모카케이크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행복이지! 뭐 별건가!!
첫 번째 서랍을 열어, 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케이크 위에 꽂고, 불도 붙이고, 거실 불을 껐다. 청국장 냄새로 가득 찬 거실이, 금세 꽤나 근사한 레스토랑처럼 고풍진 멋이 났다. 초를 끄고 케이크를 퍼먹었다. 정말 그토록 맛있던 케이크는 처음이었다. 아무렴, 케이크는 언제 먹어도 맛있으니까
빵집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몇 번을 돌고 돌아도, 결국 손에 들고 나오는 건 땅콩크림빵, 슈크림빵 같은 시시한 것들이지만. 케이크 구경도 빼놓지 않는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케이크의 변화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케이크는 케이크라 좋다.
진열된 케이크를 볼 때면, 함께 초를 불며, 돌아가며 소원을 빌던 생일파티도 그립고, 남편과 100일을 기념하며 손수 만들었던 그날도 그립고, 친구의 퇴사 날 제작 주문한 케이크를 먹었던 그날도 그립고,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먹었던 맛있는 케이크도 그립고, 결혼 전 마지막 가족여행에 가서 먹었던 초코 바나나 케이크도 그립다.
그러니까, 정말 그리운 건 그때 먹었던 케이크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했던 그 순간들이 그리운 것 아닐까. 행복했던 순간들이 크림 사이사이에 포개져있으니, 케이크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는 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케이크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케이크는 항상 생일 때만 먹어야 하는 것인가! 엄마는 원래 인생사가 그런 것이라는 듯, 그 이후로도 당연하듯 생일 때만 케이크를 사주었다. 엄마에게, 케이크는 생일 때만 먹는 빵에 불과한 걸까. 그리고 다짐했다. 먹고 싶은 케이크는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겠노라고.
나이를 곱절로 먹고, 사회에 나가 돈을 벌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니, 단번에 케이크가 떠올랐다. 생일이 아니어도, 케이크가 먹고 싶을 때는 그깟 케이크! 하면서 당당히 먹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한평생 안 하던 짓을 자연스레 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만 원을 훌쩍 넘는 케이크 가격 앞에서, 주머니 안에 들은 카드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직장인이 바로 나였다.
왠지 아까운 거다. 2만 원짜리 케이크를 오늘 사 먹고, 내일도 사 먹는다 해도 망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사 먹어야 하나? 아무 날도 아닌데? 막상 사면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라며 그 욕구를 막기에 급급했다. 그냥 땅콩크림빵을 집어 들고 오면서, 다음에는 꼭 케이크를 사 먹자고 하면서.
그러고 보면, 친구들 생일 선물, 깜짝 연말 선물 고르는 것에는 항상 마음이 반짝반짝 설레면서, 정작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는 시들한 마음으로 대했다.
부드러운 모카크림으로 둘러싸인 촉촉한 케이크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싱싱한 과일이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를 먹어야지. 생각만 했는데도 군침이 도는 것을 보면, 역시 케이크는 케이크다. 케이크는 언제나 맛있으니까, 소소한 행복을 쥐고 사는 건 어쩌면 식은 (케이크) 죽 먹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