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듯 없는듯한 둥근 턱을 위하여!

콤플렉스 자체 생산금지

by 프니

사춘기 때였나.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그림자를 보고 흠칫 놀라 가던 길을 멈춘 적이 있다. 바닥에는 먹다 만 추파춥스 사탕이 날 보고 있었다. 그렇다. 내 얼굴은 굉장히 둥그런 형태를 띠고 있으며, 목은 또 기린처럼 길었다. 그때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형이 매끈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작아지고 위축됐다. 왜, 나는 이렇게 둥글고 넓적한 얼굴을 가져야 하는가!


강산이 한번 변했을 때였나. 거울 한번 제대로 보기 힘들 만큼 바쁜 현생을 살았다. 중요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일이었으니까. 사춘기시절, 신경이 쓰였던 동그란 얼굴은 더이상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에도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오랜만에 관찰 한 내 얼굴은 역시 세월의 풍파 속에도 깎이지 않은, 동글동글한 사탕 같았다.


하루는 점심밥을 먹다가 회사 친구에게 <나 얼굴이 너무 호빵 같지 않냐> 말했더니, 친구는 아는 언니도 무턱필러를 맞았다며 소개를 해주냐고 물었다. 사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는데 친구는 진지했다. 효과가 직빵이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 내가 무턱이었어?

무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 알았다. 대표적인 무턱 연예인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아래턱이 없을수록 입이 돌출되어 보인다는 부연설명도 들었다. <맞아, 나도 그런데? > 머릿속으로 브이라인이 된 얼굴을 상상해봤다. 죽여줬다.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친구의 팔목을 잡으며 비장하게 말했다.


"갈래, 무조건 갈래."


다음날, 친구가 소개해준 유명한 병원 상담실에 앉았다. 마치, 그냥 지나가다 구경하러 온 손님을 대하듯 차갑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음, 지금 너무 턱이 없으신 편이라 아무리 양을 많이 넣어도, 효과는 정말 없으실 텐데. 그래도, 뭐 그거라도 원하신다면 넣어드릴 텐데.. 굳이.. 정말 콤플렉스 시라면 보형물을 넣으시는 게..?"


"보.. 보형물이요?"


필러를 맞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왔던 나는, 보형물이라는 낯선 단어를 듣고는 전의를 상실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턱에 미쳐있던 나날들


<턱이 진짜 없긴 없는 거구나. 그냥 동그랗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네.. 그런데.. 보형물..? 보형물을 넣으면 너무 무서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연가를 내고 동네 성형외과에 방문했다. 뭐든지 여러 군데 상담받아보는 게 좋으니까. 핸드폰 살 때도 최소 2곳은 들리는데, 이렇게 한 군데만 상담받는 건 턱에게 미안한 일 같았다.


홀린듯이 찾은 성형외과에서 나는 또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내 턱은 필러로는 회생이 불가한 것이었다. 운전면허도 무서워서 못 따는 내가, 얼굴에 보형물을 넣고 살 수 있을까? 될 턱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냥 동그란 얼굴로 살아야지. 하고 체념했다.



결혼할 때도 턱이 중요하군요.


또 한 번 강산이 변하기 전, 나는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식에는 큰 로망이 없었다. 많은 것들을 하지 않았음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웨딩 메이크업 사전 미팅도 그중 하나였다. 샵의 원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뿌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참, 나는 또 그 소리를 듣고 말았다.


"뭐 크게 준비하실 건 없는데, 조금 더 욕심내신다면 턱에 필러 맞으시는 것도 미리미리 해두시면 좋을 거예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옆에 서있던 엄마는 필러가 뭐냐고 계속 물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필러가 뭐냐, 네 턱이 뭐가 문제냐 물었다.


"그러니까, 내 얼굴에 턱이 없대. 턱이."

"그래? 꼭 그 필러를 맞아야 되는 거야?"

"뭐 이쁘게 보이려면 턱이 있는 게 좋다는 거겠지.."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문득 든 생각.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턱을 원하는가. 특히, 그 짧은 30분(결혼식)을 위해 필러, 보형물을 넣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생각해보니, 날렵한 턱이 없어도 둥근 턱으로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내가 보형물을 넣어, 생애 최초 브이라인 얼굴을 가진다면 과연 500% 행복할까? 이제는 또 내게는 없지만, 남들에게는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무언가를 또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내게 없는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며 보낸 그날들이 허무했다. 이건 마치 자체적으로 콤플렉스를 생산해내는 짓이었다. 그전에 필러, 보형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가장 중요한 <자존감>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림과 다르게 생겼읍니다

결국 나는 필러도 보형물도 없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다란 얼굴을 가진 남편의 손을 잡고 결혼을 마쳤다. 이제는 침실 벽에 세워진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킥킥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와! 한 사람은 저렇게 동그랄 수가 없고, 한 사람은 저렇게 기다랄 수가 없다!.> 길쭉이와 동글이라고 스스로를 놀리며 웃는 여유까지 생겼다. 나는 동글이다라고 받아들이니, 내 얼굴이 그렇게 유니크해 보일 수가 없다. 나쁘지 않다.


하루는, 나보다 나의 얼굴을 더 사랑할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여보, 나 너무 얼굴이 동그란 거 같지 않아?"

"아니, 그렇지 않아!"






"오, 그래?"

"너무너무 동그래!!!!!!!!"


남편의 뱃살을 잡아당기며 분풀이를 하던 동그란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턱입니다!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넬 여유마저 생겨버린 오늘의 내가 참 마음에 든다.


있는 듯 없는듯한 둥근 턱을 위하여!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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