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자르듯 지나가는 가을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지나가요, 늘 그러하였듯이.

by 프니

평소 집 반경 1km를 넘지 않는 나의 몸이 그날따라 집을 나가고 싶었다. 퇴근하는 남편을 역으로 마중 나가기로 했다. 혼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 하늘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달은 밝았고, 나뭇잎은 알록달록 변해있었다. 아, 가을이구나. 가을이 왔었구나.


하루에 한 번 환기를 시키느라,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긴 하지만 창밖의 세상에 큰 관심이 없었다. 커튼을 치고 스텐드로 거실을 비추어 모니터 안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가을향에 취해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 버린 낙엽들이 내 발끝에서 또 한 번 으스러졌다.

남편을 만나 3개에 2천 원 하는 어묵을 먹었다. 2개만 먹어도 되는데, 꼭 하나를 더 먹고 만다. 종이컵에 국물을 옮겨 담고, 한 손으로는 남편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욕심을 내 담은 어묵 국물이 흘러넘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조심조심 한 발을 내딛으며 서로의 하루를 물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맡은 밤공기 때문인지, 꼭 잡은 남편의 손이 참 부드럽게 느껴져서인지 괜히 울컥했다.


"낙엽은 너무 떨어지기 싫을 것 같아,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가 리즈잖아, 리즈. 그런데 바닥으로 떨어져서 이렇게 사람들한테 밟히고, 버려질 때는 또 얼마나 아플까? 거참, 슬프다 슬퍼"


다시 생각해도 감정과잉이었다. 그렇지만 진짜 슬펐다. 가을의 낙엽이 우리 발끝을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는 말이니까. 너무나 빠르게 흘러지나 가는 우리의 시간이 참 덧없고 아쉽다는 말도 덧붙이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근데~~ 쟤네는 그냥 손톱 자르듯 자연스러운 일일 거야, 우리도 손톱이 자라면 툭 하고 자르듯이 쟤네도 금방 새로운 나뭇잎을 만들어낼걸, 그냥 자연스러운 거지."


천생 이과인 남편의 덤덤한 말이 헛헛함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펼쳐, 손톱을 만져봤다. 다시 한번 만져보니, 손톱은 매끈한데 손은 참 꺼칠꺼칠했다. 아, 핸드크림의 계절이 왔다. 그렇게 또 겨울이 오고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반팔을 입고, 가을이 되면 단풍을 보고, 겨울이 되면 눈을 흠뻑 맞게 되는 우리의 사계절처럼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루를 살아간다. 출근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때에 맞추어 끼니를 챙겨먹으며. 가끔은, 그 자연스러운 자연을 바라보면 인위적인 생각을 하나 둘 꺼내게 된다. "아, 왜 이렇게 무료하지,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답 없는 물음을.


그러면 자연은 또 말한다. 오늘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내일로 흘러가 내일모레 바닥으로 떨어져 없어질 낙엽처럼, 그렇게 없어질거라고. 자라나면 툭 하고 자르게되는 손톱처럼, 자연스럽게, 너무 무겁지 않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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