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멀게, 나와는 가깝게 명절을 보내는 방법
고향에 가면 불효자가 된다는 말이 나오는 웃픈 2020년 추석을 기다리며, 창고를 열었다.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진하게 먼지가 쌓인 일기장을 펼쳤다. 그곳에는 나인듯, 아닌 듯 한 웃기지만 어이없고, 반갑지만 낯선 내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기를 매일 매일 쓰는 것도 모자라, 선생님께 확인까지 받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선생님과의 약속, 룰. 게으르지만 할 일은 하는 편이며, 부지런하지 않지만 잔꾀가 많은 스타일이었던 나는 일기를 쓰기 싫을 때는 이런 이야기들로 일기장을 채워나갔다. 조금 슬픈 건 그때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영어가 비슷하다는 사실,
byebye...
며칠 전 편의점에 들러 틈새라면 하나를 샀다. 소중한 틈새라면을 책상 서랍에 고이 넣어놓고는, 빡칠 때마다 라면을 처다봤다.(보기만해도 화가 풀릴 때가 있다)
분이 차오르면 열라면을 찾고, 알약을 잘 못 삼키는 고질병을 앓고 있던 11살의 나와, 열이 받으면 틈새라면을 사고, 여전히 물약을 선호하는 32살의 나는 정말 달라진 게 1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소름이 돋았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아)
명절이 되면 늘 내것보다 언니 주머니에 들어간 세뱃돈이 얼마일지 궁금했다. 언젠가부터 어르들은 종이봉투에 돈을 넣어 주셨고, 투명하지 못한 시스템에 당황한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든 것이다. 왠지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이 받을 것 만 같은...그런 불길한..
역시 여자의 촉이란. 언니는 언니라는 이유로 항상 나보다 많은 돈을 받아왔다. 며칠 전, 언니와 명절에 부모님에게 얼마를 드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언니는 ~~그동안 받은 것도 많고, 언니니까 더 드려야지”라는 유치한 말은 하지 않는 어엿한 어른이 된 내 모습에 괜히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로또를 사지 않고도 1억을 바라는 지금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보인다.
사촌동생의 돌잔치를 다녀온 날, 돌잔치 업체 주인이 조폭인 것 같은 의심이 들었고, 산타할아버지를 더 이상 믿지 않는 내게 계속 산타가 있다고 말하는 부모님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었다. 진실에 진심인 초딩은, 참 생각이 많았던 것 같고, 오늘날 나는 그것이알고싶다,당신이궁금한이야기,실화탐사대의 애청자가 되었다.
때는 1999년,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어느 날, 내 마음속에 먼저 찾아 온 것은 바로 종말공포증이었다.
그 당시 티브이에서도 자주 이런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꿈에도 나올 정도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당시 일기장을 보면 정말이지..죄다 종말,종말,종말!
2020년,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전세계 감염자가 100만명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종말공포증은 이웃나라의 강시처럼, 추상적인 공포였다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다. 요즘도 가끔 쓰는 내 일기장에는 코로나 이야기로 뒤범벅 된 지 오래, 20년이 흐른 2040년에는 오늘의 일기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그때는 무서운 바이러스로부터 해방이 되었을까?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종말 못지않게 많은 지분을 차지한 주제는 다름아닌 imf, 세뱃돈을 받아도, 보름달이 떠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나는 나라 걱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걱정하는게 디폴트였던.. 그때는 imf가 언제 끝날지 보이지 않았는데, 어쨌든 끝이 났다. “안 될거야, 안 될거야. 아마 난 망할거야.”라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결국 흐릿한 기억으로 남겨졌다. 어두운 순간이든, 밝은 순간이든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imf가 끝난 것처럼, 나라에 대한, 나에 대한, 가족에 대한, 직업에 대한 고민도 깔끔하게 끝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번 추석, 보름달을 보며 간절히 빌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