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도전만으로 아름다우니까
K-광고 중 하나는 바로 이게 아닐까,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듀윌! 공인중개사합격~주택관리사합격~~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서경석 씨의 광고, 아니 에듀윌 광고. 개그맨 서경석 씨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무려 서울대학교를 나왔고, ㅅ ㅑ를 들어 가기 전에는 육군사관학교에도 입학했던 브레인이었다. 그런 그가, 개그맨이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서경석 씨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볼 예정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늘, 공인중개사 합격을 외치던 그가 직접 공인중개사 시험을 본다니, 우와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짱이고 멋있고 대단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합격이 목표지만, 공부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며 출전(?)소감을 덤덤히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엄마를 봤다.
엄마가 공부를 시작했다.
같은 집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공부인지 물었다. 요양보호사를 준비 중이며, 하루에 5시간 이상 수업을 듣고 있다는 엄마는 멋쩍은 듯 웃었다. 엄마의 대답을 듣자마자 약 6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온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던 차 안이었다.
"자기야, 나 나중에는 요양보호사 한번 해보려고."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거 너무 힘들어."
뒷좌석에 앉은 나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듣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요양보호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힘들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 그냥 엄마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라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하고 싶던 공부 할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엄마는 아빠를 만나기 전,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일했더랬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야근을 자주 했는데,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그 밤공기를 잊을 수 없다는 말을 아주 지겹게도 들었다. 엄마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일이든.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되어, 직장을 그만두게 된 엄마는 그 이후 우리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장 한편에서 작업자들에게 속옷을 팔기도 했고, 우체국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더니 그 일을 어느새 10년은 더 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분들과 함께 동화구연 지도사 등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했던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바빴고 무엇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엄마를 닮아서일까. 회계사무원으로 일하던 나는, 협회 사무, 출판사 편집 아르바이트, 유튜브 원고 아르바이트, 상품등록 아르바이트 등의 여러 직무를 경험했고, 현재는 유튜브 콘티 제작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이게 내 마지막 직업의 종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있다.
최근에는 또 새로 배우고 싶은 게 생겼다. 상품등록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상품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해주는 상품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조금이라도 그려보고 싶어서 아이패드 드로잉 강의도 듣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성과에 대한 강박이 지금보다 더 심했다. 그림으로 성공하지 못할 건데 왜 그림을 배우려고 해?, 어차피 그거 배운다고 디자인으로 취업하지도 못할 텐데 뭐하러 배워?처럼 부정적인 마음이 컸다면, 요즘의 나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배운다고 꼭 성공해야 되나? 디자인 배운다고 꼭 디자인으로 취업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배움의 기쁨이 더 크다. 배움에 있어 확실한 목표는 중요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무엇을 배우고자 할 때,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고,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면 일단 도전하고 보자는 말이다. 배워봐야 내게 잘 맞는 건지 아닌지를 알수있으니까.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지만,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재미는, 시작을 해보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거니까.
일을 마치고, 시험공부 응원차 본가에 들렀다. 엄마의 공부 스토리를 듣다가 침대 한편에 놓인, 엄마의 이름 석자가 적힌 책 뒤표지를 보고 괜히 울컥했다. 본인의 이름을 적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꾹꾹 눌려진 글자에서 엄마의 열정이 보였다. 그래서 다짐했다. 엄마가 요양보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그 도전 자체로 이미 합격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엄마에게 말하기로. 일을 사랑하는 엄마의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