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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누르는 대신, 할말은 하고 사는 직장인

이 되고 싶었다.

by 프니

아빠는 화를 낸 적이 없다. 7살이 되었는데도 신발을 거꾸로 신던 나를 보면서도, 아빠돈으로 실수로 만원어치의 껌을 사왔던 날도, 회사일로 녹초가 된 채로 새벽에 들어와도, 우리방 책 사이에 숨겨 둔 비상금을 눈치없이 찾아냈을 때도 아빠는 한번도 내게 단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어린시절,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귀여운카드에 편지를 써주었던 아빠는 내게, 언제나 늘 웃고 다니는 화를 내지 않는, 아니 못 내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아빠가 화를 냈다. 10년은 더 된 일인데, 남동생의 방문을 걷어 차시며 "이 놈이" 하고 소리 지르셨다. 보지 않아도 뻔할 일, 남동생이 아빠 속을 슬슬 긁더니 저런 사달을 낸 것이겠지.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본 아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었는데, 더 충격적인건 30분도 안 되어 동생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었다. 그 때 알게 된 사실, 우리 아빠는 화를 쉽게 내지 않지만, 쉽게 욱하는 사람이었구나.


부전여전이라 그랬던가. 아빠의 유전자는 내게 직빵으로 몰빵되었다. 나는 삼남매중 가장 쉽게 욱하는 프로욱 역할을 맡으며 살았다.극동의 중2병은 없었지만, 때때로 가끔 욱했다. 정말 별일 아닌걸로. 왜 내 오므라이스에는 케찹으로 이름을 제대로 써주지 않았는지, 언니만큼 공부를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쉽게 욱했고, 쉽게 방문을 쾅 닫았다. (이제는 안 그런다)



착한데, 착하지 않아요.

이런 전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집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집 밖을 나가기만하면 난 항상 착하다는 말을 지겨울 만큼 듣고 또 들었다.특히 회사에선 더더욱 그랬다. 일을 많이 주어도, 군말 없이 네네 하고 일을 하는 사람, 분명, 버거우면서도 "저 못하겠어요."라는 말을 하기 보다, "네..그래도 해야죠."하고 말을 얼버무려도, 울면서 하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욱욱 내뱉는 대신, 꾹꾹 눌러가며 일했다.


그렇게 4년을 일하고,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불합리한 일에도 화도 내지 못하고, 하라면 하는데 가끔은 제대로 해내지 못해 울고 불고하는 지질한 회사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가족 앞에서도 쉽게 화를 내지 않지만, 욱 하는 건 잘하면서 왜 회사에서는, 그 모습의 10분의 1조차 보여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까?


나보다 직책이 높은 어떤 분은, 복잡한 일을 맡게 되면 울었다. 아니, 운다고 달라지겠나?싶던 일도 그 사람이 하면 없던 일이 되버린 적도 있었고, 옆팀 사람은 늘 상대방에게 화를 내며 일했다. 아니, 저렇게 화만 내면 일이 되려나? 싶어도, 위에서는 항상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때로는 이곳이 사무실이 아닌, 지뢰폭탄이 여기저기 숨어있는 야생바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숨을 참아내며 키보드를 두들겼던 나는 꼭 바보같았다.


회사에서는 아무말도 못하던 내가, 집으로만 돌아오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흐흐 웃음이라도 지었지, 집에만 들어오면 문을 쾅 닫고 침대에 들어가 끼니를 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말했다.

"왜 이렇게 집에서 화가 난 사람처럼, 아무말도 하지 않느냐고.네가 이러면, 가족들도 힘들다"


헉..!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러 나간 그 직장에서 받은 설움을 그대로 들고 와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가족 앞에 풀었다니.이런 천하의 바보가 어딨어! 아빠가 30년 평생 일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힘든 기색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보고 자랐으면서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일관 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에서 욱한다면, 회사에서도 욱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이제는 회사라는 울타리 대신,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일은 카톡으로 전달 받는데, 하루에 보통 5개 정도를 해내고, 많이 하게 되면 7개 정도도 가능하다. 일을받을 때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내일 오전까지 가능하실까요?"

아니 선생님, 지금 오후 7시가 넘었는데요..그리고 이미 보내주신 게 있는데?라고 말하는 대신 항상 yes!yes를 외쳤다. 밤낮 할 것 없이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못한다고 하면 내 가치가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날은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쫄보인 나는, 오타를 내지 않기 위해 덜덜 떠는 손을 정돈하며 카톡을 보냈다.

"이번 일은 어려 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빨리 전달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앞에 말만 할걸. 뒷말은 뭐하러 붙였냐. 넓은 이마를 손으로 팍 치고는 전전긍긍 카톡이 오기를 기다리며 또 한편의 장편소설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망상) '아, 네 어쩔 수 없네요. 다른 외주분을 찾아보겠습니다.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자리를 잃어 다시, 사람인에 드나들어야 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괴로워할 때, 카톡 알람음이 울렸다. 경쾌한 소리였다.(망상끝)


"네, 그쵸,,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헐. 뭐야..헐.

무슨 시험합격자 명단을 본 것도 아닌데, 믿기지 않는 듯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 후로, 여전히 일을 몰아받을 때도 많지만, 이제는 괜찮다. 할 말 해야 할 때는 혼자 욱하기대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 해야 할 사람을 향해 해내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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