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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an 02. 2021

2021, 건강한 콘텐츠를 먹으며 튼튼해지는 것

사랑과전쟁은 4주뒤에 보겠습니다.

새해가 밝았다. 해는 뜨고, 달력은 넘어갔는데도 별 감흥이 없다. 2020을 괴롭혔던 코로나가 그 더러운 얼굴을 내밀고, <전 이만 세상을 떠나겠습니다>하고 사라지면 좀 다를까.


세상에, 이런 새해가 있던가? 물에 흠뻑 적셔진 빨랫감들처럼 마음이 무겁고,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힘들었던 2020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간은 가고, 해는 바뀌었다. 1월 1일에는 항상 새로운 계획을 세웠던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계획을 세워보기로 마음먹었다. 계획은 모름지기 하얀 바탕에 검은 볼펜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그런데 올해, 나의 계획은 예년과 조금 달랐다.

2021목 표: 사랑과 전쟁 덜 보기!

나는 사랑과 전쟁 애청자를 넘어 중독자 수준으로 시청했다. 혼자, 집에서 일하다 보니 늘 라디오나, 티브이를 켜놓고 일을 한다. 약 12시부터 4시까지 연달아 방송해주는 사랑과 전쟁. 이제는 <제목>만 보고도 전체적인 스토리를 맞출 정도로 도가 텄는데, 보고 또 봐도 또 재밌는 게 사랑과 전쟁이다.

글쓰기 강의를 들었을 때 일이다. 강사님은 흰 종이 위에,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써보라고 하셨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자주 본다는 것은 즉 좋아한다는 것이니까. 나의 취향을 잘 아는 것부터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시작이라는 강사님의 말에 설레며 하나둘 나의 콘텐츠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종이 위에서 불륜의 냄새가 났다. 사랑은 사랑인데, 항상 배신하고, 상처 주고, 머리채를 끌어 잡는 그런 파국의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말하며 얼굴이 새빨개지기도 했다.




발리에서도 놓칠 수 없는 사랑과 전쟁

신혼여행에 가서도, 남편이 자는 틈을 타 <사랑과 전쟁> 편집본을 봤던 기억이 있다. 습관적으로 유튜브에 접속하고 시청하던 내 모습을 보니,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아니, 발리에 와서도 사랑과 전쟁을 본다고?

그런데, 역시 세상에 쓸데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사랑과 전쟁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사랑과 전쟁을 시청한 짬바로, 15금 유튜브 시나리오 작가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뿐인가. 배우자가 바람을 폈을 시 행동강령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시가 문제에 있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힌트를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알아두면 나쁠 건 없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사랑과 전쟁은 나에게 담배나 술 같은 것이 아닐까. 실제로 몸에 해로운 것들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티브이를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철저하게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사랑과 전쟁을 많이 보고 든 생각들

1) 부정적인 꿈을 많이 꾸기 시작했다.

2) 쓸데없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3) 굳이 안 해도 될 감정을 낭비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도 사랑과전쟁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루에 최소 4개의 사랑과전쟁을 시청했다. 그 때문일까. 사랑과전쟁은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나를 괴롭혔다. 갑자기 내가 불륜을 저질러서, 남편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해하는 꿈을 꾸지 않나, 남편이 시가에 들어가서 살겠다고 짐을 싸는 꿈을 꾸지 않나,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기분 나쁜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꿈에서 남편의 멱살을 잡으며 깨어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현생에서도 자연스레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불륜, 시가 문제 등으로 가득 차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현실에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머릿속에서는 혼자 날뛰면서 울고불고 하는 짓.


이건 마치, 몸에 해롭지만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살이 찐 느낌이다. 가끔은 그 맛있는 사랑과전쟁때문에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힘들기도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이게 다 사랑과 전쟁 때문이야, 이제 그런 것 좀 보지 마>라는 솔루션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연스레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불륜을 다룬 부부의 세계, VIP 등이 그런류다.



사랑과 전쟁은 4주에 한번 보는 걸로. 탕탕

그렇게 전쟁인지 사랑인지 모를 콘텐츠에 중독되었던 2020년을 뒤돌아보며, 올해는 사랑과 전쟁 덜 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안 보는 것은 아니고..)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 좋은 세상 속에서 굳이 굳이 자극적인 것에 집착하는 건 아무래도 내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건강하고, 유익한 콘텐츠들을 꼭꼭 씹으며 튼튼한 한 해를 만들어야지.


2021목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고치지 못한 입술 뜯기를 자제하고, 설거지를 조금 더 깔끔히 하려 노력하는 게 또 다른 목표다.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겠다는 화려하고 생산적인 계획만 세웠다면, 올해는 다르다. 꼭꼭 체하지 말고, 깨끗하고 맑고 건강한 한 해를 보내자고 다짐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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