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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an 29. 2021

헐 대박 쩔어를 그만 써야 하는 이유

우리의 이야기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방법

"아 졸라 웃겨, 아 졸라 짱이네"

티브이를 보며 졸라 웃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너 졸라라는 말 좀 쓰지 말아라" 중학생 때 일이다. 평소 <졸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는 병에 걸렸던 나에게 엄마는 왜 그런 안 좋은 말을 계속 쓰는 것이냐, 그러다 습관 돼서 선생님 앞에서 그 말이 나오면 어떡할 것이냐고 소리쳤다. 게다가 티브이 볼 시간에 책 한글 자라도 더 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잔소리였다.

쳇,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밖에서 친구들과 <존ㄴ>를 쓰는데??! 부모님 앞에서는 존ㄴ 대신 <졸라>를 쓰는 딸의 배려를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날부터 나는 <열라>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열라나 졸라나 그게 그거 아니냐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자, 나는 서른 하고도 세 살을 더 먹은 어른이 되었다. 그사이 강산은 졸라 빨리 변했으며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파도와 변화의 바람을 경험하는 세대가 되었다. 그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여기서 나는 더 이상 열라, 졸라, 존나를 쓰지 않는가? 하고 자문자답해보자면 그렇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존ㄴ> 졸라> 열라의 마지막 변형 형태인 <겁나>를 입에 달고 사는 서른세 살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 겁나 웃기지 않냐"

"아 유 퀴즈 겁나 슬펐어"

"와 진짜 겁나 어이없네?"



흰 종이 위에 <겁나>라는 두 글자만 써보면 굉장히 어색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어디 한 군데 안 어울리는 곳이 없는 친화력이 장난 아닌 단어다. 그런데 문득, 겁나를 겁나게 계속 쓰다 보면 글을 쓰기 겁나는 순간이 올 것만 같았다. 어떠한 감정을 이야기하거나 상황을 설명할 때 역시 <겁나>라는 단어로 대충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아 유 퀴즈 겁나 슬펐어"는 "아, 김영선(배우)이 조세호를 바라보면서 눈으로 위로를 해주는데, 그 눈빛에 나도 위로받아가지고 밥 먹다가 울었잖아. 아무 말하지 않아도 위로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니.. 역시 배우는 배우인 건가???"를 축약한 문장이다.



물론 대화를 하면 자연스레 이유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 그렇지만도 않다.  <왜 슬펐어?>라는 질문을 던진 친구에게 <아니 조세호가 우는 게 슬프더라고> 정도로 답을 한 걸 보면 정성스러운 한식이 아닌 패스트푸드식의 대충대충 대화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이야기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김영하 교수가 학생들에게 금지시킨 표현이 있는데 바로 <짜증 난다>라는 것. 짜증 난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엄마가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아 서운한 감정이 들 때에도 <짜증 난다>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완전히 다른 감정의 무늬를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 표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었다.


김영하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짜증 난다>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역시 어렵지 않게 그 답을 찾아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겁나>가 그렇다. 그 외에도,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어떤 상황이든 한방에 표현할 수 있는 <헐> 도 있고, 역시 웃길 때나 슬플 때나 가능한 만능 단어 <대박>도 있다.

"헐, 유 퀴즈 겁나 슬퍼. 대박이야. 미쳤어."라는 문장만 보아도 유 퀴즈가 얼마나 슬펐는지는 잘 알 수 있지만, 조금 더 내 감정의 언어를 표현하는 데 최선을 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뱉는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표출하는 것과 동시에 뱉어냄으로써 다시 무언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게 말이니까.


같은 맥락으로, 글쓰기 강사님의 말씀도 생각난다. 글을 잘, 제대로 쓰기 원한다면 단어의 유의어들을 찾아보고 다양한 표현들에 익숙해질 것을 강조했다. 빠르다 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유의어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한 가지 단어만 계속 사용하다 보면 평생 그 단어 하나만 가지고 쓰는 사람이 된다고 하셨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빠르다의 유의어

우리의 이야기를 더 풍부하고 섬세하게 채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질감의 단어를 이리저리 만져 볼 필요가 있다. 졸라를 그만 쓰고, 책 좀 많이 읽으라던 엄마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것만큼은 엄마 말 좀 들을 걸 그랬다. (졸라 후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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