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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Feb 07. 2021

아들 같은 사위, 백년손님 며느리

소설입니다, 정말 소설이에요.

달력에 선명하게 새겨진 빨간 숫자를 보던 민우는 핸드폰을 집어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이었다.



"네, 장모님. 잘 지내셨죠? 이번 추석 말이에요, 저희가 전날 내려가는 게 좋겠죠? 음식 준비도 도와드리려면 그때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네, 네.. "



민우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덕에 직장에서도 동기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했고, 착실히 모은 돈으로 결혼도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성실했던 민우는 부모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들이었다.


혜민이와 민우는 사내연애로 결혼까지 골인했다. 혜민 또한 민우 못지않은 좋은 평판을 가진 직원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에 대한 욕심이 컸다. 혜민은 쉽게 말하면 워커홀릭 수준을 넘은 야망가였고, 사실은 비혼 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러다 민우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혜민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기 딸의 마음을 돌려준 민우, 사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민우는 사위가 아닌 아들 같았다. 민우 또한 요즘 많이들 말하는 <사위 같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며느리는 백년손님, 사위는 아들 같은 사위가 최고라는 분위기가 자리잡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일했던 그 열정이 어디 가지 못했다. 민우는 최선을 다해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만족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적어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안부전화를 드렸고, 혜민이 몰래 용돈을 챙겨드리기도 했었다. 때문에 언젠가부터 혜민의 엄마는 반찬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딸 혜민이 아닌, 사위 민우에게 전화로 물어보는 것도 흔한일이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혜민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 없다며 민우를 말렸지만 민우는 도저히 말려지지가 않았다.


날이 밝았다. 두 사람은 두툼한 용돈 봉투를 챙기고 차에 올라탔다. 먼저 혜민이의 집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처가 먼저 방문했다. 문을 열자마자 버선발로 맞이해주시는 장인어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으로 향했다. 국자를 들고 나온 어머님은 민우를 보자마자 방긋 웃으며 반겨주셨고, 일단 소파에 앉으라며 거실로 내몰았다.


혜민의 엄마는 정갈하게 깎인 과일을 내어주며 잠시 쉬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민우는 포크로 과일을 집으면서도 괜히 부엌에 눈길을 두기 시작했다. 원래 처가에 오면 괜히 마음이 불편한 게 정상이라던, 차라리 설거지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던 친구들의 말이 하나 둘 떠오른다. 빨리 접시를 비우고, 부엌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민우. 그런데 혜민은 이미 소파 위에 두 다리를 뻗고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 보인다.



(아, 운전을 했으니 피곤하긴 하겠지.. 그래도..)



그때, 혜민의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혜민은 드러눕다시피 누워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볼까? 내가 준비는 대충 했거든."

"아, 네 어머니. 저희 손 씻고 부엌으로 가보겠습니다."


민우는 몸을 일으키며 혜민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닥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집에서 본인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혜민 뿐이었다. 혜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의자에 걸쳐진 앞치마 하나, 혜민이 손을 뻗어 앞치마를 들려던 차였다. 설거지를 마친 혜민의 엄마는 앞치마를 들고 있는 혜민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진 채로 소리쳤다

.


"얘, 얘 네가 무얼 한다고 여길 와. 힘들 텐데. 여기는 나랑 민우가 후딱 해버리는 게 나아."


"아니, 엄마 그래도 나도 도와줄게."


"얘, 너는 앉아서 티브이 보는 게 도와주는 거다. 네가 무얼 안다고 부엌에 들어오냐, 안 그래? 민우야?"


민우는 멋쩍게 웃으며 혜민의 손에 걸쳐있는 앞치마를 목에 두르며 말했다.


"네, 어머니. 저희 둘이 하는 게 빠를 것 같아요. 혜민아, 너는 좀 쉬고 있어.."


혜민은 이번에는 어쩔 수 없네라는 얼굴로 거실 소파에 다시 누웠다. 부엌에 혼자 남은 민우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생각하며 계란물을 휘휘 저었다. 거실에서 추석특선코메디 영화를 보며 깔깔 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는 혜민이만 오면 설거지가 뭐야?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데, 거참. 도대체 며느리는 백년 손님이라는 말을 누가 만든 걸까? "에이 그래도 다들 이러고 살겠지, 뭐.", "다 같이 하면 더 빠르게 끝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사위가 하는 게 맞지, 뭐."라는 말을 힘겹게 밀어내면서, 목구멍에 얹힌 고구마를 처언천히 밀어 삼켰다.


그때, 민우의 목에 따가운 가시가 걸린 것처럼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뺨을 때리는 듯한 불쾌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혜민은 침대위에 자고 있는 민우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밥 먹으러 나와, 도대체 언제까지 자려고 그래."

민우는 식은땀을 닦고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거실로 나갔다.









(며느라기가 사위라기가 된다면 어떨까?하는 단순궁금증으로 짧게 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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