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다툴 때마다 한 발짝 물러나 관전을 하곤 했는데, 하루는 아빠 편을 그다음 날은 엄마 편을,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또 누군가의 편을 들었다. 생각해보면, 초딩이었던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었는데도 난 열심히 노력했다. 이 시대에 마지막 평화주의자는 아마도 나일 수 있다.
그런 나와 아빠는 많은 점이 닮았다. 둥글둥글한 얼굴부터 시작해서 눈치 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도 많이 닮았다.엄마는 부부모임에만 나갔다 오면, 안방 문을 닫고는 아빠가 오늘 행한 일에 대해 읊어주며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엄마가 더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았다.
<왜지? 아빠 웃긴데? 나 같으면 모임에서 아빠 같은 사람 있으면 웃길 것 같은데?>
그날은 송편을 만들었던 날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또 다른 음식 준비를 하고, 우리는 거실에서 아빠의 전두지휘 아래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면을 사 오겠다고 슈퍼에 나갔던 엄마는 재미없는 송편 만들기에 열중한 우리 옆에 카카오 초콜릿을 내려놓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
그때만 해도 아주 파격적인 초콜릿이었다. 정사각형 큐브를 닮은 카카오 초콜릿은 카카오햠유랑에 따라 맛 차이가 났다. 그 당시는 꽤 비쌌던 초콜릿이었다. 역시, 명절이라고 초콜릿도 귀한 것을 먹는구나. 생각하니 설날이 나쁜 날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때, 송편 안에 초콜릿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앞에 있는 송편 속은 깨와, 딱 봐도 맛없어 보이는 콩이었다. 아니 가만히 보니 콩은 4-5개, 깨는 작은 수저 하나를 넣는데 이 조그마한 카카오 초콜릿은 떡 안에 못 넣을 이유가 있을까?
창의적이나 소심한 나는 혼잣말로 초콜릿을 송편에 넣으면 어떨까? 하고 중얼거렸다. 동생이 내 말에 헹가래를 치며 동의해주기를 바라고 있던 차, “그거 좋겠다. 한번 해봐”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더니 아빠였다. 아빠는 그게 뭔 쓸데없는 짓이냐 하지 않고, 그거 참 좋겠다. 한번 해봐라고 하는 것 아닌가. 과연 깨어있는 이 시대의 참 공무원, 공무원 답지 않지만 공무원 빼고는 어울리는 게 없는 아빠였다.
부엌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괜한 짓 하지 말고 제대로 만들라며 태클을 걸었다. 또 그 말에 위축된 내가 수저로 깨를 풀 때였다. 아빠는 손수 초콜릿 3-4개를 집어 하얀 떡 안에 고이 올려두고 꾸욱 꾸욱 눌러 송편을 완성했다. 겉으로 울룩불룩 튀어나온 카카오 초콜릿이 존재감을 발휘했고, 동생과 나는 아빠를 따라 초콜릿 한통을 모조리 송편에 넣어버렸다.
과연 떡과 초콜릿의 조화는 어떨까, 맛있게 쪄져야 할 텐데, 이게 뭐라고 두손을 부여잡으며 기다렸다. 드디어 맛본 초콜릿송편, 카카오 초콜릿이 들어간 송편을 한입 물어버린 순간, 입안에 진득하니 퍼지는 초콜릿에 녹아내릴 뻔했다. 꽤 괜찮은 맛이었다. 오늘 하루의 노곤함을 사라져 버리게 만든 초콜릿.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던 엄마도 맛있긴 하네라며 웃었다.
만약 아빠가 없었다면 내가 이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굉장히 소소하고 작은 사건이었지만, 내게는 매우 의미 있고, 인상적인 날이었다. 고민이 된 다면 한번 해보자는, 의외로 성공일 수도 있다는 달달한 깨달음을 얻었다.
천직이었던 공무원을 퇴직한 아빠는 그날 이후로도 새로운 음식을 창조해낸다. 아빠가 끓인 라면에는 대파가 한단은 들어가고, 꽁치김치찌개에는 다듬지 않은 통멸치가 들어가 있고, 김치죽에는 김치가 밥보다 더 많고, 감자조림에는 땅콩이 함께 볶아져 있다. 나는 아빠가 더 오래오래 아빠만의 요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빠의 새로운 요리는, 여전히 내게 용기를 주니까. 이 일을 할까,말까. 시작하기도전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되는 날에는, 마음속에 둥둥 떠다니는 아빠의 초콜릿송편을 꺼내 씩씩하게 베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