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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an 24. 2021

엄마에게 알려주어야 할 게 많아지는 나이

금요일마다 지옥의 스케줄을 경험한다. 업무 특성상, 보통 그날 부여받은 업무는 곧장 처리해내야 한다. 정신없이 마우스 휠을 굴릴 때면, 미친 듯이 시간이 흘러간다. 오늘 안에 무조건 해야 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핸드폰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평소와 다름없이 바빴던 금요일 오후 1시쯤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는 내게 급히 엑셀 표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했다. 카톡으로 보냈다는 사진을 보니 5분이면 만들 것 같았고, 점심을 조금 미루고 엄마를 위한 표를 만들었다. pdf, 엑셀 파일 총 두개를 만들었다. 역시 이 시대의 참 효녀는 장녀도 아닌, 막내아들도 아닌 차녀였습니다! 완벽하게 메일 보내기 성공! 그리고 몇 분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 너밖에 없다는 고마움의 인사가 아닌, 내용이 조금 변경되었다고 수정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마침, 밥솥 뚜껑을 열고 밥을 푸려던 차였다. 청국장은 팔팔 끓고 있는데, 엄마의 말은 내 마음을 차게 식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나. 괜히 심통이 났다. 아니, 생각해보니 내용 정도 바꾸는 거라면 엄마도 할 수 있지 않나? 엄마는 내 속마음이 들렸는지, 사무실에서 엑셀을 켜려 해도 도통 켜지지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이거 이렇게 바꿔주고"

"어~"

"글씨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어"

"어~~~~~"

"제목도 써줘, 글씨 크게-!"

"어~~ 어~~"



이미 글씨 크기를 19로 키웠는데, 얼마나 크게 해야 엄마가 만족스러워할까? 근데 왜 계속 나한테만 부탁할까? 집에 가서 언니에게 해달라고 해도 될 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최종의 최종의 최종을 거듭하여 마무리된 엑셀 파일이 정말 내 손을 떠났다. 청국장에 푹 퍼진 두부를 숟가락에 얹었을 때쯤이었다. 엄마에게 또 카톡이 왔다.

정확히 4차 수정 요청 카톡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답답함, 짜증, 귀찮음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딸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버린 탓이었다. 엄마가 차려준 듯, 엄마가 보내준 반찬으로 가득찬 밥상을 보니 더더욱 엄마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날은 태어나서 엄마에게 최초로 미안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날이기도 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대통령보다 똑똑한 사람이라 믿었었는데, 그런 엄마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 조금은 슬펐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엄마는 엑셀을 배워 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알려달라던 엄마의 부탁을 바쁘다는 핑계로 답한 적이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젊은이인 나조차 매번 변화의 기차에 재빨리 탑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려 해도 커다란 기계(키오스크) 눌러봐야 하고, 핸드폰 하나를  때도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열공해야 한다. 엄마보다 조금  빨리 배운 신문물을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알려주어야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역시 유행은 돌고, 역사는 반복되고, 부모와 자식의 시간 또한 돌고 돈다더니.


8월의크리스마스

한글이 마치 지렁이처럼 보였던 어린 나이의 나를 붙잡고, 기옄, 니은부터 천천히 알려주었던 엄마처럼. 왜 하늘은 파래? 왜 물은 차가워?라고 당연한 것을 늘 물어보던 나에게 끊임없이 답해주었던 엄마처럼. 다운로드한 어플로 임영웅에게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엄마에게, 유튜브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 돈 나가는 것인지 물어보는 엄마에게, 핸드폰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엄마에게, 엑셀 파일을 만들어달라는 엄마에게 진득하고 정성스럽게 최고의 답을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수한 시간 동안 엄마가 내게 그러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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