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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n 10. 2020

모래바람과 함께 먹던 소불고기

한결같은 소불고기는 엄마를 닮았다.

"야 너는 다시 어린 시절(초등학생)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갈 거야?"


며칠전 친구가 물었다. 뜬금없지만 신선한 질문이었다. 어린 시절이라.. 단소 소리를 내지 못해 교실에서 나머지 수업을 받았던 것, 수학 모의평가에서 4점을 받아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던 것, 일주일에 한 번은 끙끙 대며 파지를 들고 가야 했던 것들이 떠올라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두 기억하기 싫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친구들과 햄버거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며 감자튀김을 맘껏 먹기도 했고, 여름이 되면 물총 싸움, 겨울이 되면 눈싸움을 했고, 글짓기상도 많이 받고, 물로켓도 만들던 일도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년 내내 운동회 때마다 먹었던 엄마의 소불고기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운동장에 앉아 엄마표 소불고기를 먹고 싶다.




광활한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으쌰 으쌰 소리를 지르고, 달리고, 박을 터트리고, 훌라후프를 돌렸던 날, 운동회.

나는 3학년 때부터 키가 크다는 이유로 반 계주 대표로 활동했다. 4학년 때는 팔이 길다는 이유로 농구대회에 나갔다. 날이 갈수록 내 키와 팔은 점점 새롭게 진화했는데, 매 운동회 때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엄마가 준비해 온 도시락 반찬이었다.


간장으로 양념을 한 엄마표 소불고기는 6년 내내 운동회 도시락 메뉴였다. 소풍에는 김밥이라는 공식처럼 엄마에게 운동회는 소불고기라는 공식이 있었다.


 돗자리와 자주색 삼단 도시락통을 들고 동생 손을 잡고 학교에 도착한 엄마는 항상 후문 쪽 공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날도 그랬다. 내 마지막 초등학교 운동회의 점심은 무엇일지 괜한 설렘을 안고 후문으로 냅다 뛰었다. 익숙한 자주색 도시락통과, 이제는 많이 벗겨져버린 우리 집 은박 돗자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신을 벗고 앉아 엄마의 도시락 통문이 열리길 기대했다. 두구두구



아, 또 소불고기다. 엄마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라는 이유였다. 생각해보니 맞았다.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자주 하고, 좋아하는데 엄마도 그랬구나? 그 한마디에 6년 내내 엄마의 기복 없는 소불고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엄마표 소불고기를 입으로 넣었다. 오전 온종일 운동장을 달리며, 응원을 하느라 텁텁해진 입안에 달달한 고기가 안착했다. 오전의 수고를 덜어주는 듯 고기 곳곳에 깊게 밴 달콤함은 지친 입안 구석구석을 달래주었다. 평소 양파를 잘 먹지 않았음에도, 불고기와 함께 양념된 양파는 얼마나 맛있던지. 이게 다 엄마의 힘인가, 소고기의 힘인가 알 수 없었다.



엄마의 소불고기는 정말 음식점에서 돈 주고 사 먹는 것만큼 맛있었다. 땡볕에 30분을 기다린 후에 먹는다 해도, 이 집 맛있네 하며 끄덕일만한 맛. 아마 우리 집이 돈이 많았다면 엄마 이름을 걸고 불고기 기사식당을 차린 대도 잘 됐을 만큼 엄마의 소불고기는 가족 모두가 인정했다.


그렇게 맛있는 소불고기를 한동안은 잘 먹지 않았는데, 결혼을 한 후 친정집에 갈 때마다 또다시 상위에 올라왔다.오늘도? 또?라는 물음에도 엄마는 끄떡없다. "사위가 좋아하잖아"라는 말로 위장한 엄마의 한결같은 마음은  한결같은 맛을 내는 소불고기를 닮았다. 


나이가 드니 이전만큼 맛있게 못하겠다며 오늘도 소불고기 양념을 만드는 엄마의 손에는 살포시 주름이 내려앉았다. 아직도 운동회 때 먹던 그 감격스러운 맛을 잊지 못했는데, 세월은 어느새 엄마의 손에 표식을 만들었다.


"엄마가 맨날 운동회 때마다 이거 만들어줬는데."

"그렇지, 그때가 좋았지. 그때는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힘들지가 않았는데.."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모래바람이 휘날리고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시끄럽게 섞인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소불고기를 먹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기분좋게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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