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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Feb 01. 2021

짱구처럼 엄마도 안 늙을 줄 알았지

짱구 빼고 모든 인간은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꽤 오랫동안 즐겨 본 만화영화가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 짱구는 언제나 빨간 상의에 노란 바지를 입었고, 유치원 해바라기반을 다니는 아이였다. 10살에 봤던 짱구, 17살에 봤던 짱구, 그리고 나이를 먹고 본 짱구는 언제나 늘 한결같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당연한 걸 몰랐다. 짱구 빼고 모든 인간은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을.

어느새 나는 짱구 엄마, 봉미선(29세)의 나이까지 제쳐버린 진짜 어른이 되었다. 그 말은 우리 엄마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엄마가 어느새 <노인>이라고 지칭되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엄마는 늘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해주었고, 늦잠을 잤을 때는 차로 역까지 데려다주었고, 도시락도 직접 싸주기도 했었으니까. 엄마는 늘 엄마처럼 행동했다. 그게 늘 당연했던 일상이었다.




그랬던 엄마였는데 언젠가부터 일찍 침대에 눕는 날이 많아졌고, 늦게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저기에 피어진 검버섯을 제거하러 피부과에도 다녀오고, 몇 달 전에는 허리가 아파 도수치료를 오랫동안 받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엄마도 이제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을, 엄마에게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조금씩 체감 해 갔다.


내게 할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고르고 매끄러운 얼굴을 본 적이 없거니와, 음식을 건네주셨던 할머니의 손은 주름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내게는 엄마 또한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다. 코 흘리면 닦아주고, 계절이 바뀌면 그에 맞는 새 옷을 입혀주고, 밥은 제대로 잘 먹는지, 사람들과는 사이좋게 지내는지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엄마. 그래서 엄마는 늘 내게 산과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절대 올라가지 못할 것만 같은 대단한 존재의 산처럼 엄마는 내게 그랬다.


그래서인지, 하나둘 늘어가는 엄마의 주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한두 개 슬쩍 보이는 흰머리를 못 본체 한 적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나 혼자 우리 엄마는 안 늙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엄마가 늙지 않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세월을 받아들이는 엄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엄마의 늘어가는 주름은 곧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하나의 증표처럼 선명하게 느껴졌고, 한 번은 그 사실이 무서워서, 절대 나이를 먹지 않는 짱구가 부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경험하고, 느끼고, 즐길  있는 다양한 추억을 가질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근사한 일인가! 하고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주름 한 줄 한 줄에는 우리와 함께 한 추억이 들어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낭만적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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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언제나 그렇게 서있을 것이고, 강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갈 것이고, 태양은 언제나 떠오를 거고, 숨 쉬고 살아가는 공기도 언제나 가득할 것이고, 부모님들은 언제나 나와 같이 내 옆에 있어줄 줄 알았다고 덤덤하게 고백했던 아빠의 말이 번번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세상에 당연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그 단순하고도 복잡한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이제 겨우 서른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만 보면 칭얼 거리고, 안기고만 싶은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영원히 5살이고만 싶은 철없는 어른인 것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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