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니 Mar 16. 2021

도전!!! 하루에 돈 안 되는 짓 하나씩 하기

아침이라 말하고 10시라고 쓰는 나의 기상. 침대에서 기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입안의 세균을 박멸하는 가글도 아니고, 건조한 목을 적셔줄 물을 마시는 것도 아닌 거실에 있는 공기청정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띠리리링" 알람 소리를 내자마자 가열하게 돌아가는 청정기의 소음은 아침에 듣기 딱 좋다. 공기청정기를 킨 채로 소파에 드러누우면, 티파니에서 아침을 맞이한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드는데 그 맛이 제대로 살지 않았다. 콧구멍 앞까지 도달한 기분 나쁜 퀴퀴한 냄새 탓이었다. 눈을 번떡, 몸을 벌떡 일으켜 바로 냄새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범인은 바로 공기청정기였다.

먼지 뭉텅이를 입으로 토해내는 것 같은 청정기의 냄새, 즉시 핸드폰으로 냄새 원인을 찾아보니, 공기청정기 필터는 두 달에 한번 꼴로 세척을 해주어야 된다는 말을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몰랐다. 심지어 공기청정기 필터를 따로 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내부 청소 없이 가열하게 돌렸던 청정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귀찮은 짓은 영원히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으른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딴짓이 하고 싶었다. 곧장 블로그를 청정기 위에 두고, 뒷면에 있는 홈을 눌러서 1차 분리 성공. 필터를 분리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세척을 했다. 직사광선이 없는 그늘진 곳에서 말리세요.라는 친절한 블로거의 도움으로 필터의 먼지와 물기를 말끔히 제거하는 성과를 이룬 오전이었다.


오랜만에 육체노동을 하니 허기가 졌다. 냉동실에 숨어있던 비비고 동그랑땡을 부치고, 깍두기, 진미채를 꺼내 식판 위에 덜었다. 어제 끓여 놓은 보리차를 마시며 여유진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일을 했다. 일은 회사에서만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집에서도 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했다. 이건 일이 아니라 나의 팔근육을 움직이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마우스 질을 해대어도 여간 하기 싫은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했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돌아왔다. 점심에 먹었던 반찬에 청국장을 끓이기 시작했다. 집안은 순식간에 청국장의 위대함에 잠식당해 며칠 빨지 않은 양말 고린내가 나기 시작했고, 남편은 공기청정기를 켜야겠다며 난리를 쳤고, 그제야 분해한 필터를 다시 제자리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베란다에 두었던 필터는 애기 솜털 같은 뽀송함은 아니지만, 찌든 때를 벗고 꽤나 홀가분한 듯 가벼워 보였다.


"띠리리리링"


다시 공기청정기가 켜졌다. 나는 공기청정기 앞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남편에게 나의 업적을 심할 정도로 자랑했기 때문에 불안한 탓이었다. 혹시라도 여전히 먼지 냄새가 나면 안 되니까.. 그러나 역시 기계는 기계였다. 기계는 인간과 달라서,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오전의 공기청정기와는 180도 다른, 쾌적한 무향을 뿜 뿜 뱉어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남편의 팔뚝을 팍팍 치며 과하게 호들갑을 떨 만큼 엄청나게 뿌듯했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웠다. 한두 시간은 몸을 뒤척이다 잠드는 게 일상인 내가, 그날은 참 곤히 빠르게 잠에 들었다. 빈틈없이 뿌듯한 하루를 살아 낸 기분 좋은 느낌마저 들었다.(쉽게 감격하는 스타일) 그건 매일 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평소에는 안 하던 짓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주는 행복이었다.


그날의 상쾌한 깨달음 때문일까. 나는 새로운 결심을 마음속에 새겼다.   되는 짓을 하루에 하나씩 기쁜 마음으로 해보기로. 예를 들면, 정해진 날이 아니어도 냉장고 청소 하기, 수저 삶기, 화장실 물때 청소하기, 동네 공원 걷기, 어려워보였던 우거지국 끓여보기  등등. 청소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요리를 만든다고 돈이 입금되는 것도 아닌 그런 일들. 평소 미루고 하기 싫었던 일들을 즐기며 해보기로 말이다. 하나하나 달성해내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왜 항상 돈이 되는 일(회사 일, 블로그에 글 쓰고 애드포스트 수익 얻는 일, 당근 마켓으로 돈 버는 일)등에만 가치를 두고, 그런 일만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돈 드는 일이 아닌 것에는 흐린 눈을 하며 멀리하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돈 되는 짓뿐만 아니라 돈 안 되는 것들과의 총합으로 만들어지는 24시간임을 잠시 잊고 살았다. 나는 오늘, 난잡하게 어질러진 서랍을 정리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서랍을 바라보며 한껏 올라간 어깨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거참, 서랍 정리하기 좋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못 먹어도 고, 고고고고고스톱이 알려준 교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