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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pr 07. 2021

아니, 뭐 이런 개나리를 봤나!!!!!

개나리가 쏘아 올린 희망

"이런 개나리를 봤나, 야 이 십장생. 야 귤 까라 그래" 폭발적인 비트와 찰진 발음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문장, 다시 봐도 정말 명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장이 <아, 길가에 핀 개나리가 여기 있네, 아! 아니 십장생이었구나, 귤 까먹을래?>라는 말이 아니라, 십장생은 십XX를, 귤은 ㅈ을, 개나리는 개새 X를 대체한다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 테다. 그런데 다들 개나리의 꽃말도 아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도 며칠 전에 알았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로.




"제가요, 별명도 개나리예요, 왜 기상이변 때문에 가을에도 정신없이 피는 개나리들 있잖아요? 제가 워낙 정신이 없어서...."


"개나리 꽃말이 뭔지 아세요? 희망이에요."


천방지축 덤벙대는 본인을 개나리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희망"을 말하는 남자 주인공의 저 따스한 멘트는 고전소설도, 영화도 아닌 <사랑과 전쟁>의 한 대사였다. 불륜과 치정으로 뒤엉킨 그 땅에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는 것에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이 절로 뜨거워졌다.


심지어 눈물이 날 뻔도 했다. 33년 인생 동안 "왜 이렇게 덤벙대냐, 똑 부러지지 못해!"라는 말을 밥먹듯이 듣고 살았는데 그런 나에게 <당신은 희망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전생에 개나리였을지도 모르는 내가 그동안 개나리를 개무시하며 살았다는 것에 죄책감도 들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나를 제외한 것들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도 잘하지 못하고, 주변인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무심한 스타일. 그런 내가 우리 동네에 꽃이 피었는지, 꽃 이름은 무엇인지, 꽃은 언제 지는지, 꽃말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예견된 현상이었다. 몇 년 전, 목련꽃을 가리키며 연꽃이냐고 물어봐서 엄마는 경악했었고, 이탈리아의 수도를 피렌체라고 대답해 아빠를 놀라게 했었다. 항상 그런 식이 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목련이랑 연꽃을 어떻게 구분 못하냐"

"아, 뭐가~~ 몰라도 괜찮아."

"뭐가 괜찮아. 어디 가서 창피 당해."


그래서 난 어디 가서 든 아는 척을 일절 하지 않는다. 제대로 아는 것도 드물뿐더러, 창피당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개나리 꽃말을 알게 된 날 이후로 나는 이곳저곳에 힘주어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 개나리 꽃말 알아?"

"응? 아니 몰라."

"그것도 몰랐다고?(잘난 척) 개나리는 희망이야 희망"

"아 진짜? 신기하다!(별로 안 신기한 느낌)"


"언니, 개나리 꽃말 알음?"

"ㄴㄴ"

"개나리 꽃말은 희망이래"

"별걸 다 아네(안 궁금한 느낌)"



별걸 다 안다는 식의 무덤덤한 반응에도 나는 찌릿한 희열을 느꼈다. 이건 마치 누군가 내게 "야 이 개나리 같은 사람아"라고 한들, "아, 제가 당신의 희망이라는 말인가요?"라고 웃으며 맞받아 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똑똑한 지식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개나리는 내게 희망을 준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개나리의 꽃말을 알고 난 뒤, 그동안 무신경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참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됐을 때의 즐거움을 개나리가 알려주었다. 배움의 재미를 이런 식으로 깨우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이런, 개나리 같은 일이 다 있다니.


지난 주말, 드라이브 쓰루 꽃놀이에 다녀왔다. 우리 동네에는 벚꽃과 개나리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벚꽃을 이기기 위해 개나리는 머릿수로 대결에 임하고 있는 듯했다. 길거리 여기저기, 아무 데나, 우왕좌왕 존재감을 발휘하는 개나리의 관종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개나리가 쏘아 올린 희망 덕분에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도 없었다. 특히, 돌담 틀까지 어떻게든 피어있는 개나리의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할미넴의 대사를 읊었다.


"아~~~~~뭐 이런 개~~ 나리를 봤냐!!!!!!!"


그러니까 그날 내가 본 것은 노란 개나리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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