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가 한없이 찌질하고 없어 보일 때가 있다. 나 또한, 인생에서 몇 번의 찐따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의 기억은 첫 회사를 다닐 때였다. 연차가 가장 적었던 나는, 항상 대리님들이 기피하는 팀장님 옆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 당시 팀장님과 겉으로는 히히흐흐(하하호호까지는 못했다) 웃으며 지냈지만, 정말 상극 상극 이런 상극이 없었다. 하지만 상극끼리 통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안타깝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간식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탕비실에서 아주 자주 많이 마주친다는 것.
그 당시 나의 루틴 중 하나는, 출근 전 편의점으로 달려가 오늘 먹을 과자와 바나나우유 혹은 초콜릿 우유를 사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3천 원 정도의 거금을 쓰면 기분이 꽤나 좋았다. 나 3천 원 정도 있는 여자야! 하며 당당하게 가방에 과자를 넣어두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출근을 했었다. 물론 탕비실에도 간식은 있었지만, 정적인 과자들이(초코파이, 오예스 등) 대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사는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니까. 보통 사무실에서 간식을 먹을 때는 두 가지를 의식해야 한다. 첫 번째,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고를 것. 둘째, 한입에 쏙 넣기 좋은 것으로 고를 것.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과자를 골랐는데, 그건 바로 매운 새우깡이었다. 그냥 새우깡도 비린내가 나는데, 거기다 인공 매운맛까지 가미된 매운 새우깡을 고른 것이다. 심지어, 하나하나 집어 먹기도 벅차고 힘든 과자였다. 근데 이걸 전화를 받으면서, 공문을 쓰면서 먹겠다고? 지금 제정신이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나의 식욕을 막을 수 없었다. (역시 가장 큰 적은 나라고 하더니..)
출근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9시 30분, 나는 그때부터 발밑 가방에 있는 매운 새우깡을 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여기서 먹으면 냄새 날 거 같은데? 아 너무 바스락거릴 거야. 아, 점심시간에나 먹어야겠지? 아악! 그냥 다이제나 살 것을!! 그리고 분명 지금 과자를 뜯으면 팀장님이 파티션 너머 고개를 내밀곤, 뭐야 뭐야?라고 손을 뻗어 같이 먹자고 하실 것 같았다. 정말 그건 싫었다. 고개를 힘껏 젖혀 진작에 다 먹어버린 초콜릿 우유를 입안으로 탈탈 털고 있을 때였다. 기막힌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먹기는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복도에 나가서 먹고 오자. 퍽이나 대단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나는 팀장님이 회의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커터칼로 조용히 매운 새우깡 봉지를 뜯고는 가방 속으로 손을 넣어 목표물을 잡았다. 마치 인형 뽑기의 고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당히 한 움큼을 잡았다면 다음으로는 속도가 중요하다. 재빨리 일어나서 가장 가까운 문으로 돌격하였고, 왼손으로 문을 열자마자 오른손에 숨겨놨던 매운 새우깡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입안에 넣은 새우깡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좁은 복도를 두 번 정도 왕복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손을 씻고,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들을 정리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웃고 있었다.하하.
자리로 돌아왔을 때, 팀장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다. 팀장님도 없겠다, 맵고 짠 매운 새우깡을 먹으니 엔도르핀이 돌았다. 열심히 일을 하던 도중 팀장님은 회의를 마치고 복귀를 하셨고, 팀장님의 지시를 받자마자 매운맛이 격렬하게 끌리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완전범죄를 시도했다. 팀장님이 전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아까와 같이 한 움큼의 새우깡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고 입안으로 새우깡을 욱여넣던 순간, 나는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너무 맛있기도 했지만, 아.. 너무 찐따 같아서. 아니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인가? 그냥 대놓고 팀장님과 함께 먹으면 편한 것 아닌가? 팀장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한겨울 복도에 가득한 스산한 공기에 압도당해버린 나는, 매운 새우깡을 우걱우걱 씹으며 철학적인 생각과 다짐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매운 새우깡을 회사에 사가지 않았다.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스낵류(다이제, 에이스, 제크 등) 위주로 조용히 마음 편하게 간식을 즐겼다. 하지만, 인생에 단맛만 존재할 수는 없는 일. 짠맛이 미치도록 당겼던 그날은 <닭다리 너겟>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즐겨먹던 닭다리 과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자리에서 당당하게 닭다리 너겟 봉지를 뜯었다. 푸쉬이이하는 소리를 내며 질소가 날아갔고, 과자를 입으로 넣자마자 경쾌하게 바스러지는 닭다리 너겟! 바삭한 맛이 일품인 과자였다. 점심을 먹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어머 어어"하는 팀장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어머 이게 무슨 과자야, 신상이야?" 하며 어느새 뜯어놓은 닭다리 너겟을 한입 먹어보는 팀장님을 보고도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운 새우깡이 내게 알려준 교훈이 있었으니까.
나는 팀장님과 함께 신상 과자 맛을 이야기하며 하하호호수다를 떨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화가 잘 통했던 적도 없었다. 사람이 먹는 것에 인색해지는 순간, 얼마나 치사스럽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탓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은 미워하되 사람의 입은 미워할 수 없었다. 함께 맛보고 즐기면 그만인 과자 아닌가. 그날 이후, 몇 번의 매운 새우깡을 먹어도 더 이상 찌질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시간의 탓인 것인가, 성숙해진 자아 덕인 것인가. 당연히 후자라고 믿는 미성숙한 인간은 오늘도 매운새우깡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