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태기_ 더럽지만사실은너무나맞는이야기
왔다, 왔어... 그날이 내게도 오고야 말았다. 브런치 작가만 되면 열심히 글 써서 멋진 작가가 되어야지! 야심 찬 각오로 브런치에 입성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 미처 발행되지 못한 글들이 작가의 서랍함에 쌓여갔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아무리 글을 짜내어 써도 100명도 내 글을 보지 않고, 다른 작가님들은 다 어찌 저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시샘이 나기도 했다. 몇 시간을 허비해서 쓰인 내 글은 마치 소똥보다 못해 보였다. 소똥은 거름으로 쓰기도 하는데, 내 글은?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글태기?
여기저기 구린내가 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주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똥 같은 것. 그것을 내 글이라 불렀다. 자괴감이 들었다. 자괴감은 정말 오랜만에 드는 감정이었다. 일 년을 매달리고 겨우 700점이 넘은 토익시험에서, 친구는 무료 강의 한 달 듣고 토익 920점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심한 무력감마저 들었다. 글쓰기가 좋은데, 참 좋은데 왜 내가 쓴 글은 이렇게 구릴 수밖에 없는가! 글솜씨는 역시 재능인 것인가!
작년에는 운 좋게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공저로 책이 나왔다. 그런데 난 그 책을 여전히 남편에게도 보여주지 못했고,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 10권은 여전히 안방 서랍에 모셔두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가 쓴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먹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책 한 권 1/10 분량을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큰 힘이 드는 일일 줄 몰랐는데, 온전히 나의 활자로만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또 한 번 겁을 먹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갈증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속이 더부룩하면 소화제를 먹고, 목이 타면 찬물을 마시는것처럼. 속이 쓰리고, 힘들고, 또 기쁠때면 어김없이 찾았던 글쓰기. 그런데 언젠가부터 글을 쓸 때마다, 묵직한 돌덩어리가 마음에 하나둘 생기는 느낌이었다. 완성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글들을 볼 때마다, 그저 일기에 불과해 보이는 글을 마주하며, 간신히 붙잡고 있던 자신감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을 봐야하는 슬픔. 그것을 고통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 손에는 똥이 붙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안 그러면 이 똥 같은 글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치다보면,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6살 어린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엄마를 도우려 애썼다. 분유를 타는 일, 장난감을 흔들어주는 일, 게다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의 옆에서 애기똥냄새도 자주 맡았다. 팔뚝 길이만한 아기의 몸에서 이런 똥내 나는 똥이 나오다니. 나는 그럴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며 소리를 질렀는데,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자주 했다.
"잘 쌌네, 잘 쌌어. 내일도 잘 싸자~~~"
고작 먹은 것은 분유와 이유식이었을 테지만, 그 작은 몸으로 음식물을 삼키고 꿀렁꿀렁 길을 따라 소화기관을 찾아내고, 음식물을 분해시키고 장운동을 마친 후 바깥으로 슝 하고 배출하는 행위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임을 엄마는 알았고, 나는 몰랐다.
"잘 썼네, 잘 썼어. 내일도 잘 싸자~~~"
글쓰기도 그렇지 않을까. 일상에서 겪은 일을 흡수해서 다시 글이라는 문서로 배출하는 일, 그것만으로 실로 대단한 일. 글을 쓰지 않고, 마음속에만 담아둔다면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배출해내는 행위를 그만두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꾸준히 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도 해본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글들은 언제든 다시 젖 먹던 힘으로 써버리면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최선을 다 해 싸 볼 생각이다. 그게 똥이든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