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나면 행복하잖아요. 그럼 됐죠. 맞죠?
금요일에는 "뉴 업무일지" 매거진의 글을 쓰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그런데 망했다. 또 한 줄도 못 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줄 썼다가 지워버렸다.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은데, 지들끼리 엉킨 탓에 매끄럽게 풀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분명 공복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속이 답답해 가슴팍을 치고야 만다. 뭐지, 뭐가 문제지. 책도 평소보다 많이 읽고 있고, 글감도 차곡차곡 정리해 놨는데. 마치 준비태세를 갖춘 뒤 전쟁에 나갔는데, 총 쏘는 법을 몰라 어이없게 적군에게 당해버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브런치에 들어와 재미있는 글을 즐기다 보면, 나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버리고, 자신만만하게 글쓰기를 시작하자마자 숨과 글이 턱 하고 막혀버리는 루틴. 요즘의 내 생활이었다. 덕분에 최소 90편의 글이 시큰한 냄새를 풍기며 묵은지가 되어가고 있고, 작가의 서랍은 김치냉장고가 된 지 오래다.
글쓰기로 답답해질 때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선릉으로 일을 다닐 때였다. 2호선에서 사당역으로 환승하고, 4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토 나오는 퇴근길이었다. 폐기처리가 시급한 콩나물의 얼굴을 한 채로 1호선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앉을 수 있었고, 조금만 잠을 자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름기로 찌들어버린 머리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시들어보자고. 이래나 저래나 콩나물 같겠지만.
<철크-더어엉>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내 옆에 앉은 느낌도 들었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3초 뒤 나는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앉은 여성분의 목소리가 너무나 우렁찼던 것이다. 내가 앉은 칸은 4-2였는데, 4-4까지도 들릴만한 수준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저기요, 이렇게 크게 이야기하시면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죠.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고 야무지게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이상하게 그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실제로 너무 행복한 목소리였고, 다음 대화가 궁금해졌다.
"잘 모르겠지만 난 글 쓸 때 너무 행복해. 나 소설 쓰고 있는 거 알지?............(중략, 기억 안 남) 책을 낸 것도 아니고, 아직 뭣도 아니지만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나 혼자 스토리 만들어낼 때가 너무 좋아. 있지, 그럴 때는 내가 정말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 동공을 확장한 채 반대편의 차창을 봤다. 차창에는 다크서클이 팔자주름까지 내려온 나와, 무거운 가방을 무릎에 두고도 신나게 웃고 있는 그가 비쳤다. 선명한 행복과 희미한 불행이 겹쳐졌다. 객관적인 나의 불행 지표를 확인한 뒤, 덜컹 거리는 1호선에서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들썩였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핸드폰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둔 글자들이 세상 밖으로 정신없이 튕겨져 나와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가 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맞아, 나 글 쓰는 거 좋아했었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년. 혼자 쓰는 것도 행복한 일인데, 플랫폼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초반에는 조회수가 10 이하여도 분명 행복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변해갔다.
이미 충분히 행복했음에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었는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유려한 글솜씨로, 세련된 문장으로, 구독자를 늘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었다. 올린 지 30분 만에 좋아요를 60개 받는 건 기본인 작가님의 글과 초라한 나의 글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반응이 기대한 것보다 나오지 않으면 "이번 글은 망 글이다" 평가 내리며 스스로의 행복을 후려치던 것이었다. 후려칠수록 나는 점점 작아져갔고, 작아진 마음으로 신나게 글 쓰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도 없던 초원에서 신나게 글을 쓰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초심을 잃은 탓이다.
덕분에 나는 자주 그곳에 도착했다. 쓰고 싶어도 글이 써지지 않는, 글을 쓰면 쓸수록 괴상해지는 마법에 걸리는 곳. 글이 안써져 미치겠땅에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처럼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마음속으로 냉큼 1호선에 올라타 본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를 만난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를. 글이 안 써져서 미치겠땅에 도착한 뒤, 한 줄도 못쓰겠어 병에 걸린 내게 그는 이렇게 위로한다.
"음, 글을 쓰고 나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다면 그건 망한 글이 아니라, 프리 씨를 살리는 글일 거예요. 쓰고 나면 행복하잖아요. 그럼 됐죠..... 맞죠?"
나는 곧장 김치냉장고에 담아두었던 가장 오래된 묵은지 하나를 꺼내어 요리를 시작했다. 그때도 글이 안 써져서 미쳤었는지 엉엉 우는 소리를 길게도 적은 덕분에 나는 5분도 안 되어 이 글을 완성했다. 과거의 내가 밀어주고 오늘의 내가 끌어주며, 오늘의 글을 완성했다니!
그러니까 이 글은 미치고 팔딱 뛰다가 환장 할 때 완성된 것이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글이 안 써져서 환장 할 때는 그 환장을 환상 없이 쓰면 되고, 글이 안 써져서 미치고 팔짝 뛸 때는 팔짝 팔짝 뛰는 몸부림을 쓰면 된다. 글이 안 써지는 때가 왔다면 웃어도 좋다. 그것은 글이 술술술 써지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