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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l 06. 2021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모태솔로가 들어왔다.

"뭐야, 모쏠은 무슨, 오히려 내가 모쏠 같잖아?"

"착하긴 한데, 한 가지 걸리는 게 모태솔로라 여자를 잘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되게 웃긴데 여자 앞에서는 노잼일 수도.."


당시 남자 친구() 소개받으면서 주선자의 주선자를 통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모태솔로?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번도 만나  ..없는데 ... 찮을까? 흔히 모태솔로라 하면, 모든 것에 서툴고, 뚝딱 거려 본인의 매력을 내뿜지 못할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모태솔로가 들어왔다.


모쏠남이 남자 친구가 되었을 때, 나는 몇 번의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였다. 고백을 받은 다음날, 또다시 우리 동네로 온 백을 공원으로 이끌었다. 근처 닭꼬치 집에서 포장해 온 꼬치를 먹고, 씹고, 맛보고 즐기며 길바닥 데이트를 즐기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백이 내 옆으로 바싹 붙더니 기다란 검지를 내 손바닥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헉! 손을 잡으려고 하는 걸까! 손 잡는 것쯤이야 별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닭꼬치를 열정적으로 먹는 바람에 손바닥에 눌어붙은 양념으로 손이 끈적였던 참이었다. 아... 아... 그래도 어떻게 내민 손가락인데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대로 백의 손을 잡아버렸다. (잡혀버렸다는 말이 더 맞을수도) 땀과 양념으로 버무려진 내 손과 달리, 백의 손은 핸드 드라이 워시에 갖다 댄 손처럼 뽀송뽀송했다. 두근두근대는 심장소리가 반팔티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걷는 그의 손을 로봇처럼 잡으며 생각했다. "뭐야, 모쏠은 무슨, 오히려 내가 모쏠 같잖아?"


그날 이후, 나는 모태솔로에게 여러 번 역습을 받았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예상외의 말로 나를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저기, 나 주말에 친구들이랑 밤에 술 마셔도 돼?"

"응, 그럼. 마시면 마시는 거지."

"아.. 정말? 그게 다야?"

"어?? 친구들이랑 논다며, 재밌게 놀면 되잖아!"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백의 목소리가 어쩐지 풀이 죽은 느낌이었다. 뭐지? 왜 저러지? 나는 그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니, 평생 알지 못할 뻔했다. 그의 마음은 이랬다. 친구들과 밤에 술을 먹는다는 말을 하면, 여자 친구가 "아, 정말? 너무 오래 놀지마, 아.. 음 미안한데 안 놀면 안 돼?" 같은 말을 하며, 본인을 마구마구 구속하고 옥죄여주기를 바란 거였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당혹스러움을 이루 감출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감정선에 적응하는 게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아니, 그게 뭐야. 뭐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이 어딨어!"

"(멋쩍게 웃으며) 아니, 친구들이랑 술 먹으면 항상 여자 친구들이 연락 와서 먼저 집에 가던 게, 그때는 너무 부럽더라고..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었어....."


아. 그랬구나. 천지창조 이후 처음으로 만난 여자 친구에게 구속과 핍박을 받아보고 싶었구나. 그랬구나. 그냥 한 번도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었는데, 이것도 그것 중 하나일 뿐이구나. 나는 그제야 백이 모태솔로였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가 아주 잊을 수 없는 첫 여자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그를 구속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애초에 내게는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연애경력자로서 연애신입사원을 만나 본 결과, 새로운 사람에게는 나 또한 다시 신입사원이 된다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했다.



그렇게 백을 만날수록 나는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아웃백에서 스테이크를 썰면, "와, 나 이런 거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백이 귀여워서, 스타벅스에 가서 치즈케이크에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와, 케이크도 팔아?"라고 말하는 백이 신기해서, 처음으로 김밥 도시락을 싸 봤다며 스스로가 기특하다고 말하는 백이 웃겨서, 처음으로 화이트데이 선물을 받았다고 울먹이는 백이 사랑스러워서, 때로는 답답해서 화를 내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말해주면 안 될까."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백이 고마워서.


모든 게 처음이라고 말하며 웃는 백을 보며 여러 감정이 스쳤다. 나도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러니까 내게 이런 새로운 감정, 새로운 사랑을 알려준 네가 나의 첫사랑이라고. 말하려다가 오글거려서 내 입을 틀어막은 게 여러 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모태솔로가 들어왔다. 그의 뽀송뽀송한 손에 이끌려 우리 집 현관에 도착하면, 아쉬운 마음에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고, 그래도 아쉬워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우리 집 문 앞까지 와서 나를 바래다주었던 그가 어느덧 거실로 들어와 우리 부모님을 만났다. 으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내 옆에는 그때 그 모태솔로가 누워서 잠을 잔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그를 바라보며, 모쏠이라 노잼각이라는 주선자의 말에 훌러덩 넘어가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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