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너무 일상적이어서 순간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고 지나 친척이 많다.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될 때는 더더욱 많다. 그럴 때면 꼭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가 열두 살이었나, 열세 살이었나. 늦은 밤, 우유를 사러 나갔다 오겠다는 아빠 뒤를 따라나섰다. 하루 종일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길, 길인지 눈밭인지 모르겠는 그 길을 아빠를 따라 걸었다. 슈퍼까지는 5분도 안 걸리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좁디좁은 골목길로 몸을 틀어버리는 아빠.
높게 쌓인 눈길을 성큼성큼 앞장서던 아빠가 휙 하고 돌아 내 눈을 마주치고는 "이렇게 눈 많이 온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그렇지 않아?"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아빠는 갑자기 희고 흰 눈밭 위로 몸을 눕혔다. 눈밭은 과학이 아니고, 가구도 아닌데 침대에 드러눕듯 편하게 몸을 맡긴다니.
그 장면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드러누워서 떼를 쓰는 자식과 그 자식을 말리는 부모의 모습이 일반적인 거 아닌가? 그렇다고 아빠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지금 뭐하냐고 하기도 뭐해서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빠는 눈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누워봐, 이렇게 깨끗한 눈 위에 누울 수 있는 기회~흔치 않다~."
졌다. 졌어. 결국 나도 아빠 옆에 누웠다. 눕자마자 차가운 눈이 발목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패딩 아래쪽의 바지가 조금씩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날까 싶었지만,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 누워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밤하늘을 조명삼아 녹지 않는 눈으로 만든 극세사 이불을 덮은 사람처럼,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길 눈밭에 오래도록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