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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Feb 15. 2022

유튜브 구독자가 적은 게 오히려 좋은 이유

(많으면 더 좋겠지만...)

지난 12월 지역문화센터에서 짧은 다큐영상으로 상을 받았다. 꽃다발과 상장을 받자 흥분하기 시작한 나는 마이크 앞에 서서 핸드폰에 적은 진부한 수상소감을 줄줄이 읊다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유튜브를 시작했는데요, 실버 버튼 받는 그날까지 열심히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마스크를 써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랑니까지 보일 정도로 입을 헤벌쭉 버리며 웃고 있던 모습을 마스크 덕분에 감출 수 있었다. 수상소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왜 또 오버를 했을까, 왜 나댔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눈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내렸다. 펑펑 내리는 눈이 늘어나는 구독자수처럼 보였다. 이게 내 미래라면 을매나 좋을까?


작년 9, 유튜브를 시작했다. 추진력 제로에 수렴하는 나를 출발선에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좌절>이었다.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곳에 지원을 했다가 전화면접으로 서로 갈길을 가자는 면접관의 말은 내게 좌절이었지만, 희망이었다.  힘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으니까.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브이로그를 만들다가,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채널을 끌고 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판단으로 노선을 변경하기로 했다. 바로, MBTI 유튜브를 만들자!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INFP(인프피)가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인프피 쪽으로는 아주 빠삭하니까! 이건 정말 자신 있었다.


Plotagon(플로타 곤)이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드라마 형식으로 인프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물론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꾸준히 영상을 올리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열정이 끓어오르다 못해 뜨거운 용광로의 온도로 치솟은 탓에 하루에 콘텐츠 2개를 뽑아내기 시작했고, 속도 조절을 하지 못했던 나는 일주일에 5개 영상을 올린 적도 있었다.


유튜브계의 공무원이 되자, 나는 할 수 있어, 그래 내가 학교 때도 개근상만은 놓치지 않았었잖아! 가보자고! 시속 150km로 달리는 도로 위의 무법자처럼 나는 유튜브에 뛰어들고 만 것이다. 나쁘지 않았다. 빠른 속도에 멀미가 나지도 않았다. 나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이대로 쭉 질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초반에 엑셀을 너무 많이 밟은 탓인가. 나는 역시 지쳐버렸다. 지난주에 침대에 누워서 삼십분만에 영상을 뽑아내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그제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을 찾아봤는데, 영상 속 한 남성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모니터 밖의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튜브를 시작하면 꼭~~이런 분이 계세요, 일주일에 영상을 3-4개씩 올리면서 폭주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쉽게 지치게 됩니다. 영상은 일주일에 1-2개 올리는 게 가장 좋고, 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처음부터 너무 달리면 쉽게 지치게 되니까....(생략)"


헉! 내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실 분이 내 상황을 모두 알고 너무 맞는 말만 하시니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일주일에 최. 대. 2개 영상만 올리기로. 너무너무 올리고 싶은 게 많아서 빨리 영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다음 주로 업로드를 미루면 미루었지, 급하게 업로드는 하지 말기로 말이다. 그렇게 유튜브를 운영하고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영상 중 한 두 개가 고귀하고 깜찍하신 유튜브 알고리즘님의 선택을 받아서 조회수가 폭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늘어나는 조회수와, 댓글 수를 바라보며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대박, 대박" 밖에 없는 사람처럼 같은 말을 뱉을 뿐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정답은 정말 모르겠다.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다보면 선택 받는 것이 알고리즘이 아닐까 추측..


한두 번 알고리즘을 탔더니, 구독자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고 한 달 차에는 무려, 놀라지 마시라. 바로바로 8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방탄소년단보다 1명이 많고, 슈퍼주니어보다 약간 부족한 8명의 숫자는 내게 딱 좋은 숫자였다. 오히려 좋았다. 10명은 너무 많고, 7명은 조금 아쉬우니까. 나쁘지 않았다. 내 콘텐츠를 계속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가족, 친구 제외 8명이나 있다니.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세 자리 숫자까지는 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0명.. 아니 100명만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이시여, 제발!



두 달 차가 되었을 때, 8명의 20배가 넘는 구독자가 생겼다. 세상 쫄보인 나는 이때부터 사실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 콘텐츠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1,000명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남편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더니, 그가 눈을 세로로 크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그게 왜 걱정이야, 늘어나면 좋은 거지?"

"아니 그런데, 너무 늘어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고, 뭔가 구독자 취향에 맞게 영상을 만들어야 될 것 같고,이것도 걱정되고 저것도 걱정되는데 근데 가장 큰 걱정은 천명이 안 될 것 같아.."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된다며 그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꾸준히만 하라며 책상앞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맞다. 가장 큰 고민은 언제쯤 나도 천명이 되는 것인가, 인데 언젠가부터 구독자1에 집착하고, xxx님이 구독했습니다.라는 메일이 하루라도 없는 날에는 금방 풀이 죽었고, 콘텐츠를 만들 때에도 "자자, 영상 만듭니다~~ 100명도 볼까 말까 한 영상 나갑니다~~"소리를 외치며 매너리즘에 푹 빠져있던 적도 있었다.


저 세상도 참 잔인한 곳이었다. 조회수가 잘 나올 때는 1만도 훌쩍 넘고 그러더니만,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100을 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유튜브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한 덕목은 흔들리는 조회수 속에서 중심을 잡을 줄 아는 멘털이라는 것을. 구독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앞으로 늘어날 구독자가 더 많다고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글은 내가 태어나서 쓴 글 중에 가장 모순적인 글이다. 구독자가 적은 게 오히려 좋은 이유라고 제목을 박아두고, 구독자가 한 명이라도 늘면 좋겠다는 본문을 적어 내려갔으니 말이다. 앞뒤가안맞는 전화번호같은 감정을 수차례 겪으면서 내가 고안해낸 방법이 몇개 있다.


첫번째는, (조회수, 구독자 등) 실적이 좋지 않아 마음이 상할 때는 회사 신입 때를 생각하면 좋다. 입사 세 달 차, 사수가 시킨 복사 심부름만 잘해도, 열심히 인수인계만 받아도 괜찮을 시기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고작 반년차 주제에, 엄청 큰 실적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두번째는, 누군가에게 질투하는게 아니라 자극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같은 주제의 유튜브를 운영하는 유튜버들을 모조리 챙겨보는데, 하루는 몇주전만해도 5천명이던 채널이 어느새 1만명을 찍은 것을 목격하고는 전의를 상실한 사람처럼 드러누워 끙끙댔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조회수도 잘 나오고, 구독자도 빨리 느냐, 나는 왜 이러고?" 에서 끝내고 엉엉 우는 대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댓글도 많고 구독자도 많을까?" 라는 마음으로 자극을 받고, 분석을 하는 것이 내게도 좋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일주일에 최소 2~3개의 영상을 올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같은 톤을 유지하며, 매주 꾸준히 한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나를 제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결국 돌고 돌아 또 같은 말을 했다. 유튜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라는 것. (물론, 조회수 정체가 지속된다면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목요일에 업로드할 영상을 만들기위해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 좌측에 있는 "유튜브" 폴더를 누르고는 썸네일, 대본, 브금 폴더가 보이기도전에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실버 버튼을 받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외쳤던 내 영상을 1년 뒤 다시 본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헐. 올해안에 실버 버튼 받는거 아닐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런 날이 온다면 실버 버튼 받는 날에는 무슨 옷을 입을까? 에휴, 나는 겸손한 사람이니까 실버 버튼만 받아야지. 됐다! 상상은 이제 그만! 이제 진짜 만들러가야지. 상상이 현실이 될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쭈우우욱 가보자고오오오오오!


https://www.youtube.com/watch?v=YQO8cv9yQO4&t=2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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