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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l 21. 2022

내가 여전히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이유 2. 일

우리가 회사가 없지, 일이 없냐.

노트북을 질렀다. 엄청 가볍고 디자인도 이뻐서 비싼 건 아니고 투박하지만 들고 다니기에 부담 없는 적당히 가벼운 것으로. 34만 원짜리 노트북을 7개월 무이자 할부로 지르며 다짐했다. 매일매일 삼천 사백자의 글을 쓸 거야. 그래서 그 글로 할부를 다 갚기도 전에 34만 원을 벌겠어. 아무렴 돈을 벌겠다는 다짐이 지켜지지 않아도 좋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갖게 될 테니까. 그래서 11월에는 독립출판물을 낼 작정이다.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나는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회사에 다니는 자기보다 네가 더 바쁜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아냐, 아냐. 나 하나도 안 바빠.라고 말했지만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라서 나도 깔깔 웃고 말았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하고 있는 일>

- 평일 오후 고정) 아르바이트

-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주 1회 업로드

- 인스타툰 연재

- 서예 강좌

- 시나리오 강좌

- 플래너 펀딩 프로젝트 진행 중(주 1회 회의)

- 독립출판물 준비 중 (11월 예정)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 편히 하기 위해서는 소액의 돈이 필요했다. 일명 창작 기운을 북돋아주는 응원 비용.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이 일은 하루의 중심축이 되어 나를 조종한다.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제외한 시간에는 자연스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게 되는데, 화요일 저녁에는 청년센터 워크숍에 참여하고 , 수요일 오전에는 동네 문화원에 가 서예를 배우고, 목요일 저녁에는 동네 센터에서 시나리오 강의를 배우는 일들이 그렇다.


배우기만 하다가 일주일이 다 지나가는 느낌이지만, 인스타툰, 유튜브, 브런치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일도 미룰 순 없다. 주말에는 서울역에서 프로젝트 팀원들과 만나 플래너를 기획한다. 정해진 판을 정돈하는 일보다 창의적인 일에 자신 있는 나는 모임에 나가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뱉을 때마다 생각했다. 나 대박 신났는데? 이런 내가 어떻게 회계 일을 했었지? 회사 밖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으면 나는 회사를 계속 다녔을까?




우리가 회사가 없지, 일이 없냐.

회사 밖에서 일을 벌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프로젝트로 팀원들을 꾸려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는 사람들을 어디서 모아야 하는지 어려웠고, 인스타툰을 시작하고 싶을 때는 그림 실력이 하찮아서 고민했고,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주저했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알게 된 사실 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팀원들을 만나고 싶으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되고, 그림을 잘 못 그린다면 꾸준함을 강점으로 성의껏 그리면 되고, 잘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된다면 일단 한번 해보면 되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일을 하다 보니 콘텐츠의 조회수가 적게 나오는 것, 예상하지 못한 반응들을 감당하는 것도 오로지 나의 일이 되었는데 나는 그마저도 좋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방향이 잘 가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지만 아무렴 좋다. 꾸준히 해내고 있다는 가장 큰 성과가 있으니까.


하는 일은 많은데 그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이것을 일이라고 해야 하나, 백수의 작당모의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도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일을 주는 회사는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은.. 웃기는 짬뽕, 따뜻한 아메리카노 같은 상황이라는 것!!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이렇게 불안전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놓일수록 내가 너무 재밌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여전히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이유는 회사 밖에서 할 일이 아직은 너무너무 많아서. 딴짓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많이 남아서. 해내고 싶은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라서.라고 쓰다 보니 문득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작은 공간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한 뒤 정시에 퇴근하는, 수상한 오피스 모임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러니까 니트 컴퍼니의 경기도 버전) 적당한 소속감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일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 아니 근데 이거 정말 재미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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