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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Jul 29. 2022

내가 여전히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이유 3. 돈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운 떠돌이 노비가 되고 싶다

사실은 나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고요? 내 인생 나도 모르겠답니다?라고 곧 퇴사를 앞둔 B에게 속마음을 후드득 털어놓았다. 맞은편에 앉아 가만히 듣던 B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작가 아카데미에 가 보는 거 어때요? 프리 씨 젊은데.. 내가 아는 언니도.."


"프리 씨는 말하는 게 너무 웃겨. 여기 있을 인재가 아니란 말이지. 티 X이나 X메프 같은 젊은 기업 짱 잘 어울림."이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우직하게 그만두지 않고 다녔다. 무려 4년이나. 가끔은 20대의 절반을 보낸 그곳에서 용기 없이 존버만을 외쳤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답답해 미치지만, 그때는 그랬다. 평생을 회사 밖에서 잘 살아왔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둔다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내가 뭐라고, 잘 살 수 있을까?


평생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어찌어찌 퇴사를 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사회 초년생 때 벌었던 월급에 반도 못 미치는 돈을 벌면서 하하하 웃고 있는 나는 제정신일까, 제정상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상이자 말끔한 정신 상태로 사회 구성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잘 살고 있다는 말씀. 가끔 이따구로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파도가 나를 훅 덮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파도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멋진 반백수가 되었다. 아니, 이건 정말 짚고 넘어갈 문제다. 5년 사이 내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쩌다 이런 멋쟁이가 되었는지에 대하여.




한 달 전, 재미있는 제안을 받았다. 니트 청년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한 연구원 분이 보낸 장문의 메일이었는데, 가장 마지막 문단을 내려보니 나를 연구대상자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것저것 유의사항 등등 어려운 연구 용어들이 적혀 있는 장문의 메일이었지만, 나는 대충 훑어보고는 답장을 보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해보겠습니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치고는 내향적이고 걱정이 많은 나란 사람. 연구원 님과 인터뷰 일정을 잡은 나는 며칠이나 잠을 설쳤다.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내 얘기를 들어보고 연구대상자가 아니라고 컷 하면 어쩌지 흐어억.


하지만 역시 걱정은 걱정에 불과했다. 연구원님을 만난 나는 한창 신나게 떠들고 있었는데, 연구원 님이 키보드 위로 빠르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네요. 다음 얘기는 다음에 들어야겠어요." 헉. 한 시간 반이.. 90분이 벌써 지났다고요? 난 아직도 이십 대 중반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데? 낯선 이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던 사람치고는 나는 신나게 떠들어댔다. 아니, 뭐 이런 일이.


연구원님과 헤어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열려 있는 창문 틈 사이로 슝 슝 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앞머리를 훌러덩훌러덩 까기를 반복했다. 따뜻한 저녁의 바람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요즘 나는 어떠냐고. 불안하지는 않냐고.


바로 메모장을 켜서 내가 니트족이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재미'에 마음이 쉽게 동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이거 재밌겠는데? 이거는 딱 봐도 노잼이구먼, 이라는 마음의 언어로 나의 거취를 정했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들은 대부분 돈이 붙지 않는 일들이었는데,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을 버리고, 재미와 흥미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은 1+1으로 따라다녔으니까. 바쁘기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더 바쁘지만, 돈은 코딱지만큼 조금 버는 현실. 이런 삶. 음, 나쁘지 않다.


내가 불안정한 니트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쉽게 불안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험이었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어본 경험. 구남친에게 대차게 차였던 글을 썼더니, 연애상담 어플에서 상담사로 활동해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영화채널 편집자로 이력서를 넣었다가 콘티 작가를 제안받아 1년을 벌어먹고 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유튜브 작가, 전자책 판매, 블로그 애드포스트 수익, 원고료, 상품등록업무 등등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생각해보면, 10원이라도 벌어 본 경험은 꼴랑 10원을 번 일이 아니었다. 그건 백만 원어치의 경험과, 천만 원어치의 용기였다. 앞으로도 뭔가를 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용기.


같은 노비라면 대감집 노비가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모두  대감집 노비가  수는 없는 현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운 떠돌이 노비가 되고 싶다. 오늘은 김씨네 노비였다가, 내일은 김씨네 뒷집 노비였다가. 일을  재미있게 잘하면 옆집에도 소개해줄지 모르는 . 그러니까 이것은 꾸준히 일감을 찾아 헤매야 하는 부지런한 노비 놀이!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현실 감각이 없다며 혀를 차기도 하고, 언제까지 그렇게  거냐고 물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일단 올해까지는 이렇게  것이라 말하련다.  왜냐고요? 아니, 그걸 제가 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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