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한 것은 묵직한 소속감은 아니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단계별로 나누었는데, 그 단계에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인 소속감 및 애정 욕구가 존재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인지.
회사는 늘 내게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며 열심히 올라가도 회사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존재 같았다.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일을 하다가 해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갔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그곳에 모여 어제 했던 그 일을 그대로 반복, 반복, 반복하는 곳. 물론 일은 반복되지만 하루는 반복되지 않았다. 니 잘났다, 내가 더 잘났다를 이야기하며 내가 일한 것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곳,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 내가 또 잘못 한 거구나. 하고 그러려니 하면 앞으로 부당함의 몫은 내 것이 되는 곳이라는 걸 몰랐던 나는 정상이 보이지 않는 산에서 결국 터덜터덜 하산했다.
그렇다고 여태껏 해온 산중 생활을 접을 수 없었던 나는 4년 일하고 1년을, 반년 일하고 반년을 쉬었다. 이 일이 내게 정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휴식을 가진 뒤에는 결국 다시 그곳을 찾았던 그때의 나. 당시 나는 아무래도 불안했나 보다. 그래도 회사에 가면 이름이 걸린 내 자리가 있고, 나만 열 수 있는 서랍이 있었고, 서랍 안의 간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소수의 친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소속감이라는 단어에 불안한 마음을 한방에 정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회사에 다니며 사람을 싫어했다. 사람이 싫어졌다. 그 사람들도 내가 싫었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욕을 먹어야 하는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나는 그들을 미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라면, 소속감이 무슨 소용이야? 나를 지키기 위해 그만두자.라고 때려치워놓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그리워졌다니. 다시 사람들과 뒤엉키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회사 밖 생활을 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바로 지금.
심심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랑 놀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심심해졌다. 사람 구경하고 싶을 때는 베란다 문을 열고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했으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로는 충족되지 않았다. 길가에 바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혹시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 빼고 다들 어디를 그렇게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럴수록 나는 간절히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온라인 세계에서는 쉽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인데, 어쩌다 보니 나와 같은 니트족들이 모인 <니트 컴퍼니>를 알게 된, 그때부터였다. 나의 소속 욕구가 확실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 그리고 알았다. 나는 회사 밖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내가 경험한 소속감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니트 컴퍼니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원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팀장님도 있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는 주간회의가 있어서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오프라인으로 직접 소수의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응원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발 오프라인 세상과 조우한 나는, 그곳이 안전지대라는 것이 확인된 이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총 세 달 동안, 나는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안 했던 것들을 시작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다.
- 니트 전시회 현장기획팀 참여
- 인스타툰 드디어 시작
- 니트 전시회 전시 참여
- 니트 컴퍼니 사내 클럽: 펀딩 프로젝트 시작
니트 컴퍼니가 거대 조직이었다면, 다음은 관심 조직으로 들어갈 차례다. 닛컴 생활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고 싶어 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 나는 조금 더 배움에 적극적인 자세를 지니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애프터 이펙트 강의
-시나리오 강의
-전통서예 강의
-청년센터 강의, 프로그램 참여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센터에서는 매달 흥미로운 강의가 열린다. (심지어 강의료도 매우 저렴함) 항상 배워볼까, 말까 고민했던 에펙 8주 과정을 듣고 나만의 오프닝 영상을 가질 수 있었고, 시나리오 강의는 현재 진행 중인데 이거 진짜 재밌다. 그 외에도 청년 오랑, 무중력 지대, 청년 지음과 같은 청년센터에서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단기간의 소속감을 느끼는 것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시작되는 애프터 이펙트 강의 같은 경우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고 오는 3-4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시나리오 강의는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성격상 앞자리보다 뒷자리를 선호하는데, 뒤에서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 탓도 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꽤 낭만적인 소속감처럼 느껴져 벅차기도 했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돈을 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회사에 들어갈 용기는 없던 나는 하루에 4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물론 큰돈은 되지 않지만, 이거 이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당한 근무시간,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감, 그리고 오후 한 시에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 소속감. 내가 원한 것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묵직한 소속감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요즘이다.
앞서 언급한 강의들의 경우는 대부분 4주, 8주 과정이라 새로운 강의를 등록하지 않는 이상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결국에는 다시 나 혼자 하루를 보내야 하는 무소속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앞선 경험들을 통해 쌓은 소속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딘가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배가 부르다. 하지만 오늘도 새로운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배고프기 때문에!
앞으로 한달동안은 내가 여전히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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