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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Sep 16. 2022

조심스럽게 독립할래요. 출판해 볼래요.

20대에 아주 잠시 열렬하게 꾸었던 꿈은 바로 독립이었다. 꿈은 매일 꿀 수 있지만, 모든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365일 중 360일 정도 매일 꿈을 꾸는 나는, 어찌나 독립에 대한 꿈이 간절했는지 나는 꿈에서 여러 번 새로운 집을 장만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과자 부스러기를 질질 흘리며 먹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실제로 흘린 것은 침뿐이었다.



독립을 하고 싶지만, 혼자는 못하겠어.


당시 나는 너무너무 싫은 회사에서 너어무 싫은 일을 하다 보니 너무 좋아하는 엄마와 자연스레 멀어졌다. 엄마는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때의 나는 수다가 웬 말인가. 집에 와서 입을 뻥긋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나의 퇴사를 격하게 반대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의 반대 때문에 퇴사를 미루었던 것도 웃긴 일이지만, 당시 나는 딸내미 마음 하나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엄마의 여유 없는 마음이 미웠다.


그렇게 네 맘대로 살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에 엉엉 울면서 알겠다고, 몇 달 뒤에 바로 나갈 거라고 큰소리치며 방문을 세차게 닫았지만, 핸드폰 지도 위, 매물들 위에 쓰여 있는 억 소리 나는 숫자는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언제든지 이 집을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베란다에서 캐리어를 꺼내 방안에 두기는 했지만 돈이 문제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용기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몇 번을 캐리어를 잡고 울었을까. 결국, 나는 퇴사를 했고 자연스레 엄마와 다시 가까워졌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그건 내 인생의 첫 독립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 새로운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지금도 재밌다. 살림은 하면 할수록 알아야 할 게 생겨나고, 몰랐으면 하는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수건 빨래를 하는 날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화장실의 휴지는 원래 이렇게 빨리 없어지는 게 맞는 건지, 이번 달 관리비는 또 왜 이런 건지. 이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조차도 처음 보게 되는 나의 추잡스러운 성질머리를 마주하는 것은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럴 때면, 자식이라고 내쫓지 않고 집에 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의 삶을 사는 느낌이다. 독립 4년 차를 넘어가는 지금, 나는 새로운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책을 내고 싶지만,

이것도.. 혼자는 못하겠어.


독립출판을 하겠다는 말을 도대체 언제부터 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나 책 내려고~주제는 블라블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세상에 실존하지 않아서 만질 수 없는 나의 책을 자랑했다. 좋게 말하면 도전하는 사람, 솔직하게 말하면 입으로만 하는 사람.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니트 컴퍼니 인베스트먼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만 원을 지원받을 예정이기도 하고, 항상 책이 언제 나오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스스로가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쓰고 싶은 주제와 목차까지는 정한 뒤, 이 구간에서 나는 몇 달째 정체 중이다. 도통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 이를 어쩌지.



이쯤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솔직하게 말해보자. 내가 진짜 독립출판을 미루고 미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멋대가리 없는 내 글이 활자로 찍혀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 나는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저자 소개에 sns를 썼다가, 혹시나 "님 책 졸라 구려요. 내 돈 환불해주세요"라는 연락을 받으면?? 알고 보니 잘못된 정보를 실어서, 님 때문에 내 인생 큰일 날 뻔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등등.


예. 결국에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정말 책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하고,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많은 이들에게 거슬리지 않는 책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나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세상 일이 쉬운 것은 없지만, 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지만서도, 몇 달 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집을 구할 때, 우선 부동산에 들르는 것처럼, 책을 만들고 싶다면 이미 책을 많이 만져보고 만들어 본 사람을 봐야 하니까. 때마침, 인스타 알고리즘이 내게 을지로 내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출판 워크숍을 보여주었고, 나는 바로 21만 원이라는 액수를 지불했다. 분명 적지 않은 돈이지만, 생각보다 과하지 않은, 적당한 금액이어서 다행이었다. 이 정도면 독립할 수 있겠는데..?



 "저는 일단 꼭 해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편이에요. 내가 이날까지 책을 배송하겠다고 말을 했는데, 지키지 않으면 그건 신뢰가 깨져버리는 일이니까. "


독립출판물을 만든 작가님의 북 토크에서 들은 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나도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야지. 사실 브런치에도 <저 독립 출판하려고요~>이라는 말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라 민망하니까, 이제는 진짜 구체적으로 선언을 해보렵니다.


선서
1. 나는 11월 중반까지 독립출판물을 만든다.
2. 나는 12월 중반까지 텀블벅 펀딩 배송을 끝낸다. 3. 나는 12월 말, 독립출판 기념 파티를 한다.(혼자)

독립도 혼자 못해, 독립출판도 혼자 못해. 혼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나 완전 겁쟁이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뿐인 제가 이제 진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을지로로 향한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독립 출판계의 유명 저자가 되어, 작은 동네서점에서 북 토크까지 마친 뒤, <오늘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라는 인스타 스토리를 몇 번이나 올려대고 남았지만, 정작 현실에는 없는 책,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항상 말로만 실천하고, 말로만 하겠다고 뻥치는 나의 못된 습관을 박살내기 위하여. 금요일 저녁,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을지로에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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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KBS열린음악회 방송화면,  MBC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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