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잊기

by 프리노마드

20년 간 학원에서 일했다. 20대 초반에 입사해서 40대 초반에 퇴사를 했으니 젊은 청춘을 학원과 함께 한 것이다. 그동안 학원에서 일하며 항상 마음속에 간직한 것이 즐겁게 일하자는 것이었다. 흔히 하는 얘기들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 말한다. 일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일'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라도 즐거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일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에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학원이 영업 사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학창 시절에도 학원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 학원이라는 생각에 잠깐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어느 학원을 가야 할지 알아보고 학원을 찾아가서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하고 수강 등록을 했다. 이처럼 그동안 알던 학원은 내가 학원을 선택해서 수납 창구 같은 곳에서 간단히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강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해서 등록하고 수강증을 받는 것이 내가 알던 학원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취업한 학원은 내가 알던 학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족히 300명은 넘어 보이는 영업 조직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영업 사원들은 수강생 모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몇 개의 부서와 그 안에 모인 수 십 개의 팀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전화 한 통으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그런 광경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과연 이 무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가 들었다. 면접 보는 순간부터 팀장은 좋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당시 기준으로 매달 월급은 300만 원 이상 받을 수 있고, 일도 힘들지 않으며, 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 매력적인 일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영업이라는 일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영업이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매리트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이 한 만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에 대해서는 아예 경험조차 없었고 낯가림이 심했던 터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월급 때문이었다. 한 달에 평균 3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300만 원의 월급은 지금으로 계산했을 때 500만 원 정도의 초봉을 받는 것과 같다. 당시 평균 급여는 150만 원 정도였는데 신입으로 입사해서 평균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끌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매년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1학년부터 줄곧 선수로 차출되었다. 1학년 때는 배구, 2학년 때는 농구, 그리고 3학년 때는 축구로 체육대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3학년 체육대회 때 축구를 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예체능계로 빠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고3, 대입 시험을 불과 6개월 정도 남기고 진로를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담임 선생님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완강하게 진로 변경을 제안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까지 학교에 모시고 와서 설득을 했으니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기회만 된다면 운동할 수 있는 학교로 가고 싶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을 부모님도 알고 계셨지만 형편상 운동을 시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부모님은 미인함을 갖고 계셨다고 한다. 그렇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진로를 변경해서 예체능계로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했다. 체대 입시를 위해 준비하면서 늦게 시작한 만큼 정말 열심히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노력했다. 그리고 대학 진학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체대를 들어가면 졸업 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얻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90년대만 하더라도 원하는 대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


나는 체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단 하나의 직업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헬스 트레이너였는데 죽어도 그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트레이너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죽도록 운동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4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결과가 헬스 트레이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입 시험을 치르고 학교를 선택해야 할 때 과감히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 생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돈을 벌면 좀 더 빠른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대학을 포기했고,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1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군대 입대해서 제대했을 때 나이가 23살이다.

군대까지 제대하고 나니 정말 돈 버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면접 본 회사가 학원이었는데 신입 월급이 평균 급여보다 2배 이상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끌렸겠는가.


학원에서 시작하는 일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인문계에서 예체능계로 진로를 변경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은 두근거렸고, 두근대는 심장은 두려움에 대한 징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굳이 극복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경 쓰니까 계속 생각나고, 생각하니까 계속 신경 쓰이는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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