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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Aug 28. 2019

블루보틀 역삼에는 쾌활함이 있다.

블루보틀 역삼은 무엇을 공간에 담았나?

역삼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햇빛을 따라서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검은색 철 프레임이 인상적인 빌딩이 나온다. 강남 N 타워다.  강남대로의 빌딩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지나갈 무렵 파란 병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블루보틀 역삼점. 한국의 세 번째 블루보틀 매장이다.


블루보틀 역삼점 콘셉트는 대나무 숲이다. 이를 연출하기 위해 매장 안에 다양한 두께의 원형 나무기둥을 설치했다. 대나무 숲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나는 '시원함'이다. 누군가에는 무협물일지도 모르겠다. 또 무엇이 있을까? 대나무 숲 위에서 쏟아지는 햇살도 있다.

 블루보틀 역삼점은 스키마 건축사무소가 만든 성수와 삼청점과는 많이 다르다. 스키마가 만든 첫 매장인 성수점은 다소 차가웠다. 적지 않은 이들이 도쿄 매장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적인 특색이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삼청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간에서 지나친 '비움'과 일본 미니멀리즘이 강조된 탓에 공간은 느슨했다. 느슨한 공간에 힘을 넣는 역할을 한건 성수점과 마찬가지로 '사람'이었다. 성수, 삼청점에서 본 의도적인 비움은 '사람'을 인위적으로 끼워 맞추는 모습이 강했다. 그렇기에 블루보틀 성수와 삼청점에서는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이 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미니멀리즘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블루보틀 매장은 차가웠다. 그들이 말한 '따뜻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신선한 커피와 편안한 분위기를 통해 도심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휴식처를 제공함이 블루보틀 역삼점의 목표다. 블루보틀 역삼점은 시간마다 달리지는 채광, 공간분할, 사람들 소리, 몸짓, 가구 등 블루보틀 본류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공간에서 자연스러운 '비움'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블루보틀 역삼점은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블루보틀이 한국에서 전개하고 하는 공간은 역삼점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블루보틀 역삼점은  LA를 베이스를 하는 wrk-shp'건축사무소가 작업을 맡았다. 성수와 삼청점을 만든 스키마 사무소는 일본 내 블루보틀 매장을 전담하고 있다면, 'wrk-shp'는 LA 내 블루보틀 매장 일부를 만들었다. 

'wrk-shp'는 건축가 라이언 업튼과 건축가 겸 의상 디자이너인 아이리 이소다 두 사람이 만든  회사다. 그들이 작업한 블루보틀 매장은 의자, 책상, 대리석, 타일, 정수기 등 선적인 전개와 실용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LA에서 만들었던 여러 요소들을  블루보틀 역삼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책상, 탁자, 급수대다.

wrk-shp가 작업한 블루보틀 프레아 비스타 점의 의자는 역삼점에서 거의 동일하게 사용한다.
사진같은 조명,질감, 일회용품보관함도역삼점에서도 동일하게 느낄수있다.출처:wrk-shp홈페이지


'wrk-shp'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이든, 우리는 건축 설계와 일상적인 것들을  연결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합니다"블루보틀 역삼점에서 wrk-shp가 시도한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조선시대의 낮은 가구'와 프랑스 건축가인  '장 프루베의 가벼움'이다. 조선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단아함과 장 프루베가 일생에서 선보였던 디자인은 역삼점에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녹아드러 갔다.


장 프루베의 의자와 조선시대 문갑. 출처: vitra.com,www.leehwaikgallerycom

역삼점 내에 있는 가구들은 조선시대의 수납장을 모티브로 삼으면서도 실용적인 형태를 취한다. 특히 달항아리 백자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함과 부드러운 질감을 단풍나무로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면서도 깔끔한 테이블과 의자는 카페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이는 블루보틀 역삼점 안을 편안하게 이끄는 중심 축이며, '커피'에 집중하게 돕는 도구다.


wrk-shp는 자신들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현지의 숙련된 작가들과 같이 만든다. 블루보틀 역삼점에서 사용한 의자는 양정모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매장 내에 비치된 의자는 그가 2018년에 선보인 '결 의자'와 디자인이 거의 같다. 세라믹 조명은 이정은 도예가가 만들었다. 세라믹 조명은 매우 간결하고 기품 있다. 그렇기에 역삼점은 성수, 삼청점과 다르게 가구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가구가 매장 내에서 소품이 아닌 공간을 이끄는 주축이다. 또한 부드럽고 매끈한 가구 질감은 공간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빛이 만드는 공간.


블루보틀이 매장 인테리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빛이다. 언제나 매장 디자인에 채광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만든다. 스타벅스 같은 경우 매장 내부를 언제나 어두운 밤색과 조도가 낮은 조명을 사용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든다. 반면에 블루보틀은 지역의 고유함을 담은 인테리어를 만든다. 적어도 내가 가본 매장들은 말이다.(블루보틀 성수, 삼청, 신주쿠, 아오야마, 기요스미 시라카와, 나카메구로, 산겐자야, 롯폰기, 역삼점.)

강남 N타워 앞의 거리 모습. 햇빛이 건물을 따라서 내려오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역삼역은 밖에서 들어오는 채광을 강조하기 위해 창가 쪽에서는 바 형태의 좌석을 만들었다. 오후 3시부터 5시 20분까지의 채광을 관찰해보니 흥미로웠다. 일단 역삼역과 강남역을 가로지르는  강남대로는 가로수 배치와 공간이 대칭을 이룬다. 해가 점 점 더 짧아질수록 창가와 키친 사이의 빛 간격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서 공간 느낌이 미세하게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수와 삼청매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각기 다르다.

블루보틀 성수점과 삼청점은 을 매장에 들어오는 빛이 각각 다르다. 성수점은 위에서 내려오는 채광으로 공간에 색을 더한다. 삼청점은 각 층마다 큰 통유리를 설치해 빛을 공간으로 끌어온다. 역삼점은 빌딩 전체가 검은색을 위주로 사용한 점을 반영해  밝은 색을 사용해서 빛이 공간 안에서 반사가 많이 되도록 했다. 창가 쪽에 서서 유심히 보면 반사된 빛이 내부보다 강함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빌딩 안과 강남대로가 선적인 공간인 점을 고려해 역삼점 내부도 선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스키마 건축사무소가 점을 면으로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면 ‘wrk-shp’는 '면 속에 선을 채우는 형태'로 공간을 만들었다.

채광을 강조한 구역 조명이 커피 바보다 조금 더 적고 전구 크기도 작다.

역삼점은 자연빛과 내부 전등을 사용해 시간에 따른 공간 변화를 만든다. 사진 속 천장에 설치한 조명 개수를 살펴보자. 자연광이 많이 들어오는 쪽은 전등수가 확실히 적다. 반면에 자연광이 적게 들어오는 키친은 조명이 많다. 사진을 보자. 햇빛이 매장 내부로 들어온다. 햇빛이 점차 약해지는 키친부터는 실내조명이 강해진다. 햇빛량에 따라서 [햇빛-햇빛과 조명이 만나는 회색지대-조명]으로 공간이 나뉜다.  내가 아침에 역삼점을 가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조시간에 따라 자연빛이 가득한 공간이 점차  '조명'이 만드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조명 차이를 위해서 자연광 쪽은 전구를 박는 방식, 커피 바는 릴 조명과 검은색 전구 바스켓을 사용했다.

커피맛도 매일매일 날씨에 따라서 달라지듯 빛에 따라 공간도 느낌이 변한다. 블루보틀 역삼역에서 시도한  '비움'은 '빛'이다. 동시에 그 비움의 세기는 자연에 맡긴다.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고 커피맛조차도 따뜻하게 만드는 건 빛이다.

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십자가. 빛은 공간을 이끄는 강력한 존재다. 출처:phaidon.com

빛이 있기에 공간은 빛난다. 아무리 화려한 조명도 고요히 들어오는 햇빛을 이길 수 없다.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던가?  성수에는 없고 역삼에는 있는 것이 바로 사람과 마주하는 빛이다. 성수는 고개를 들어 빛을 봐야 한다. 하지만 역삼점은 언제나 빛과 마주한다. 사람과 마주하는 빛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다. 대신 빛이 십자가다. 그 십자가는 무엇보다 강력하다.

대표적인 일본 정원인 가쓰라 리큐.. 그렇지만 일본 정원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데 중심을 둔다. 출처: 위키디피아.

일본 정원은 자연을 재현한 인공적인 공간이다. 그 안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국 정원은 자연 안에 건물이 들어간다. 자연을 해 치치 않는 선에서 나무를 심고 화단을 만든다. 한국정원은 자연 그대로에서 인간이 들어간 공간을 찾아낸다. 한국정원과 일본 정원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정반대다. 일본 정원에서 자연은 인간이 음미하거나 철학하는 대상이다. 반면에 한국정원은 사람이 자연 속에 파묻힌다. 자연에 모든 걸 맡기고 그 안에서 사람이 머무른다. 자연스럽게 한국정원에 들어가는 건물들은 자연 속 빈 틈을 찾아낸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원이자 '미'이다.

반면에 한국은 자연이 가진 자연스러움 속에 인공적인 건물을 집어넣는 형태다. 출처:k-heritage.tv

성수, 삼청점은 일본식 감성, 인위적인 자연스러움이 있기에 역삼점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스키마는 성수와 삼청이라는 지역이 가진 느낌을 매장에서 재현하고자 노력했기에 인위적인 공간이 나왔다. 맥락은 맞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간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도 있었다. 게다가 일본색이 강한 성수와 삼청점은 사람들이 손짓, 몸짓, 목소리로 공간을 채웠다. 성수점이 빛과 사람이 강한 이유도 공간을 채우는 주체를 사람에게 모두 전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직관적으로 공간 속 긴장감을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언제나 공간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wrk-shp는 애초부터 콘셉트를 조선과 장 플로드에서 찾았기에 한국만의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가구가 만드는 편안함.

커피 바, 가구 등은 모두 원형 나무기둥으로 바닥까지 이어져있다.

역삼점 가구의 특징은 편안함, 질감, 실용성이다. wrk-shp가 만든 LA 내 블루보틀 매장을 보면 특히 나무 소재를 사용한 의자와 돌을 통한 마감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물성을 통해 공간에 편안함을 전하는 방법을 선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삼점도 마찬가지다.  책상과 의자가 원형기둥 형태로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어 대나무 숲이라는 맥락도 이어지게 한다.

역삼점 매장 규모는 성수점의 4분의 1, 삼청점의 3분의 1 정도로 작다. 도쿄 내에서는 규모면에서 보면 신주쿠 점과 비슷하다. 특히 스텝룸이 성수와 삼청에 비해서 매우 작다. 그 탓에 키친 일부에 상품을 쌓아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간 부족을 위해서 가구를 적극 활용했다. 포스기 앞에 진열장을 겸한 수납장을 놓았고 이를 통해 오리지널 굿즈 진열장, 재고 보관함, 줄 서는 곳 이렇게 3가지 기능을 넣었다.

삼청점에서는 벽돌 진열장으로  동선을 나누고, 오리지널 상품 주문 종이를 활용한 점과는 또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상품 진열장 아래에도 재고상품을 넣어 손님들이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삼청과 성수점같이 직원들이 재고를 창고에서 꺼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수납장 근처에서 직원들이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구는 동선을 만들면서 공간도 나눈다.
줄서는장서, 수납장, 상품 진열장도 겸하는 가구.

매장 내 비치한 가구들의 디테일도 돋보인다. 좌석 뒤와 아래에는 수납공간을 만들어 매장에 방문객들이 짐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눈에 잘 보인다. 에스프레소 머신 앞의 좌석 아래에도 수납공간을 만들어서 작은 가방, 클러치백을 넣을 수 있게 했다. 의자 1개, 책상, 수납장이 딸린 책상도 세트로 배치해 공간에 독립성을 더했다. 매장 내 가구들은 인테리어 소품에서 끝나지 않는다. 빌딩 회전문과 이어진 공간도 잘 살려냈다

짐을 보할수있는 공간, 남은 음료를 넣는 곳.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낭비하는 공간은 최대한 줄였다. 음료를 마신 후 그릇도 공간 구석에 비치해 낭비를 줄였다. 남은 그릇을 넣는 통도 다른 지점과 다르게 좀 더 깊게 만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무 책상 위에는 대리석으로 마감을 해서 질감과 안정감을 더했다. 아쉬운 점은 창가 쪽 자리의 의자가 흔들려서 불편했다. 게다가 성인 남성이 앉기에도 높이가 살짝 불편했다.


나무 의자 아래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에 부드러움을 만드는 숨겨진 디테일: 가구의 촉감과 색상.


역삼 섬의 가구 색상은 화사하고 밝다. 시원함을 강조한 색감 선택이다. 성수, 삼청, 도쿄 내 매장보다 2,3톤 밝다. 상쾌함 그 자체다. 대나무 숲이 가진 시원함과 채광을 가구가 색으로 보조한다. 특히 단풍나무 소재와 질감이 무척 부드럽다. 성수점과 삼청점의 나무 촉감은 특징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공간 속에 '배치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역삼점에서는 공간을 이끄는 주체 중 하나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안정감을 주는 촉감은 공간에 선명함을 더한다. 매장 전체를 채우는 색은 일본풍의 회색이 아니다.  오히려 애플스토어와 유사하다. 아마도 애플스토어에 가본 이들은 비슷한 느낌에 편안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애플 매장에서 커피 마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매장 내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목소리, 손짓 , 발짓이 채운다. 역삼점은 공간 자체가 자연스럽기에 성수점보다 더 쾌활하다. 사람과 공간이 이 같이 간다. 이 모든 게 매우 직관적이다.


촉감을 통해 더 강해지는 물성.

성수와 삼청점은 '물성' 그 자체에 초점을 두었다. 당연히 두 지점에서는 콘크리트, 철, 금속, 벽돌이 가진 각각의 물성을 두드러진다. 두 지점이 '공간을 유지하는'측면에서의 물성을 강조한다면 역삼점이 추구하는 물성은 '촉감'이다. 역삼점 공간은 딱딱 떨어지는 선적인 공간이다. 선을 면으로 끌어내기보다는 면을 구성하는 '선' 그 자체를 들어내는 면에 집중했다. 애매한 시도는 아예 하지 않았다.

단풍나무 마감과 대리석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접촉하는 경험의 최전선에 있다. 나무니까 딱딱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앉았는데 보드랍고 부드럽다. 이게 은근히 기분이 좋다. 누군가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단풍나무를 사용해만 든 테이블, 기둥 의자는 섬세한 마감은 가벼움과 편안함을 공간에 충분히 표현한다. 부들부들한 책상을 어두 만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성수,삼청점은 쓰레기 분유함이 철이지만 역삼은 아니다. 대리석(나무같기도 하지만)느낌이 나는 처리는 차갑기보다는 부드럽다.

공간에 쾌활함을 더하는 한 뜻 디테일: 음악.

성수와 삼청과 다르게 스피커가 높은 위치에 있다. 참고로 한국 내 매장에서 사용하는 스피커는 모두 동일하다.

역삼점은 천장이 높아서 쾌적하다. 팝 음악을 위주로 한 선곡은 분위기를 더욱 쾌활하게 만든다. 성수, 삼청과는 다르게 재즈가 아닌 팝 음악이 나온다. 또한 스피커가 있는 위치는 성수, 삼청보다 더 높은 천장에 있다. 성수와 삼청이 옆에서 퍼지는 형태라면 역삼은 위에서 내려오는 형태다. 성수, 삼청점 같은 경우는 벽돌, 금속이 주를 이룬다. 성수점은  공간이 연출하는 차가움을 재즈로 보완했다. 하지만 역삼점은 공간 대부분이 나무이다 보니 재즈풍 음악에 의지할 필요가 줄어든다. 빌딩 안이지만 매장을 구성하는 소재들은 나무와 돌이 많다. 금속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경우에는 재즈도 좋지만 팝 음악도 좋다. 선택 폭이 늘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 이유는 역삼점 공간 자체가 부드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수, 삼청점처럼 사람이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 아닌 '공간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기에 팝 음악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만일 저녁에  재즈 혹은 재즈힙합을 튼다면 공간이 매우 감각적으로 변하리라 생각했다.


공간과 어우러지는 서비스.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이제 막 오픈했던 시기였다. 이제 막 오픈한 카페에게 최적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기대다.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직원들도 공간에 적응한다. 일도 일이지만 손님들에게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면을 고려하고 블루보틀 역삼점의 서비스를 봐야 한다. 일단 음료 주문과 픽업은 성수점과 같다. 포스기 스크린에 이름을 쓰는 방법도 동일하다. 키친은 'ㄱ'자 동선이다. 초반이라서 주문처리에 작업 분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내가 방문한 시점은 2019년 8월 23일.]

포스기에 서명.성수점과 동일하다.

음료를 픽업하는 공간도 인상적이다. 픽업 지점을 사람이 앉는 자리보다  조금 높게 만들어 사람들이 공원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연세가 높으신 분들도 자연스럽게 음료를 주문하고 직관적으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매우 좋았다. 종종 바리스타 혹은 직원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 같은 경우도 커피맛이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블루보틀 같은 경우는 핸드드립 중심이라서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큰 단점은 음료와 디저트 간의 픽업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움 과자류는 그 자체로 맛있지만 구움 과자는 버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커피 혹은 차와 함께 먹어야 더 좋다. 휘낭시에, 마들렌이 대표적인 예다. 매장에서 종종 사람들이 구움 과자를 다 먹고 나서 커피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았다.  직원들은 많았지만 공간에 익숙하지 못해  버벅거리는 상황도 보였다. 카페를 비롯한 요식업은 '동선'에 적응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2,3개월 뒤면 해결될 문제이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아직 오픈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고쳐질 부분이다.

역삼점도 블루보틀 간판은 나무다.

블루보틀 역삼점이 한국이 가진  아름다움을 잘 살려낸 이유는 콘셉트를 한국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성수와 삼청점에서 보여준 공간적 단점인 '긴장감'은 역삼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스키마 사무소가 만든 성수와 삼청의 공간도 좋았지만,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감성을 위한 유연성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블루보틀 역삼점이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강남 N타워 내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공간을 보는 시각이 또 달라진다.

블루보틀 한국 매장은 지역마다 성격을 다르게 하면서 공간을 만들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수, 삼청, 역삼등 모두 각기 다른 성격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이 좋다 나쁘다의 우열을 논하기보다는 '공간'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주목하는데 옳다고 본다. 공간에는 언제나 사람과 문화가 담겨있다. 누군가에게는 극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커피처럼 다양한 공간을 서울에서도 담으려고 하는 게 블루보틀의 방향이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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