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롯폰기점을 통해 보는 국가 간 다른 공간감.
블루보틀 롯폰기점은 도쿄 4번째 매장이다. 최근에 만든 매장은 아니다. 카페 위치는 롯폰기 번화가에서 다소 떨어진 뒷골목이다. 정확하게는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 앞 빌딩 뒤다. 카페 건물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원과 같은 작은 광장을 마주 보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정원 앞에 머물면서 조용히 정원을 즐기도록 만들었다. 내부 마감재는 참피나무 합판이다. 매장 안 벽과 수납장에는 규칙적인 패턴을 넣었다. 다소 불규칙한 격자 프레임도 삽입해 차분함을 넣었다.
블루보틀 일본의 건축은 스키마 건축사무소가 전담하고 있다. 한 건축사무소가 특정 브랜드 공간을 전담한다는 점은 건축사무소와 브랜드 간 통하는 점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스키마에서 만든 공간은 대체적으로 간결하다. 어떤 '형태'를 만들기보다는 주변관계를 고려한 공간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그렇기에 스키마 건축사무소는 '뺄셈의 건축'을 강조한다. 스키마 사무소는 일본뿐만 아니라 블루보틀 성수, 삼청점을 작업했으며, 코엑스에 위치한 JAJU매장, 디앤디 파트 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를 만들기도 했다.
스키마 건축사무소는 일본 미감을 공간 안에 잘 반영하다 보니, 블루보틀 일본 매장들은 일본 감성에 잘 맞는다. 블루보틀 성수와 삼청동에서 느꼈던 긴장감. 느슨하거나 사람이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도쿄에서는 '공간 속 긴장감'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라마다 다른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롯폰기 점도 마찬가지다. 롯폰기점에 가기 전 방문했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는 모든 이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정서적인 공간이었지만, 블루보틀 롯폰기점은 타깃이 정해진 느낌이었다.
정원, 분재, 다도는 일본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미감이다. 일본에서는 이 세 가지를 예술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만일 정원, 분재, 다도에 담긴 일본 미학을 파악하고 도쿄에 간다면, 도쿄 공간과 그에 기반한 서비스 기획을 관찰하기 수월하다.
다도를 즐기는 다실은 다다미 5조 방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고 일본 다실을 연상케 하는 블루보틀 롯폰기점이 바닥에 다다미를 깔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다다미에서 볼 수 있는 격자 패턴. 다다미가 깔린 바닥을 벽으로 형상화했다. 벽과 벽 배치에 다다미를 연상시키는 선적인 배치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블루보틀 롯폰기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다다미 벽을 닮은 벽을 마주하며 매장 앞에 조성된 정원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일본 다실 구조와 흡사하다. 또한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정원은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이어준다.
사진은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중 하나인 가쓰라 리큐 안 다실과 블루보틀 롯폰기점의 벽이다. 블루보틀 롯폰기점은 '직선'으로 공간을 강조한다. 이는 매장 안에 긴장감을 만든다. 전형적인 일본 건축이다. 역삼점도 선을 강조한 구조를 취했지만 원형 나무, 대리석, 가구가 공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반면에 롯폰기점은 그런 게 없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이 추구하는 공간 미감이 분명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블루보틀 롯폰기점에서 직선 형태를 가장 잘 묘사한 곳이 티슈, 우유, 시럽을 잠은 서랍장이다. 게다가 서랍장 재질은 금속이다. 그 옆에 자리한 에스프레소 머신과 핸드드립바도 역시 금속이다. 심지어 화장실도 금속으로 부분 마감했다. 금속에서 풍기는 차가운 물성은 공간에 긴장감과 차가움을 넣는다. 이를 상쇄하기 위한 장치는 꽃꽂이와 통유리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일본식 정원이다.(정원에는 붕어도 있다.) 이는 전형적인 일본 회유식 정원의 차용이다. 나카메구로점은 다실로 들어가는 입구만 차용했지만 롯폰기는 다실 구조 자체를 차용했다.
블루보틀 롯폰기 매장 앞의 정원은 일본과 서양 정원을 합친 형태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조그마한 연못에는 붕어까지 살고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게다가 연못 옆 나무와 식물들 보는 순간 자연적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본 정원 방식임을 알 수 있다.(교토 같은 전통방식은 아니다.) 좌우로 들어가는 정원 통로와 이를 마주 보는 블루보틀 롯폰기점은 그 자체로 회유식 정원 형태를 닮았다. 종종 사람들이 매장 앞 의자에 앉아있다 가는 이유도 이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블루보틀 롯폰기점의 입지는 사운즈 한남의 콰르텟과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운즈 한남은 건물 사이로 빛이 그대로 내려온다. 빛은 콰르텟 매장 밖 파라솔과 사람들을 통해서 공간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는 자연 속에서 빈 공간에만 자연스럽게 건물을 집어넣는 한국정원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렇기에 사운즈 한남에는 한국 미감을 가미한 '쉼'이 있다. 블루보틀 롯폰기에는 일본 정원의 연장선이다.
일본 정원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편집해 정원으로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편집해 가져온 자연을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동선, 발걸음까지 철저하게 설계한다. 정원 안에 조성하는 건물도 철저히 정원 동선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 정원이 유독 정갈하고 차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정원. 이 둘은 우열을 가리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두나라가 추구하는 미의식 차이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블루보틀 롯폰기에 반영된 일본 미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감을 표현하는 일 그것이 디자인이다. 한국과 일본 정원을 차이를 비교하며 이를 차용한 건물양식을 탐구하기에는 블루보틀 롯폰기만큼 좋은 곳도 없다. 게다가 같은 건축사무소에서 지은 동일한 브랜드 건물이 한국과 일본에도 있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블루보틀은 그들이 지향하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을 공간에 담기 위해서 항상 흰색, 갈색을 사용한다. 롯폰기점을 이끄는 공간도 흰색과 갈색이다. 매우 간결한 디자인을 통해서 흰색과 갈색을 대비시킨다. 또한 매장 가구의 질감과 금속성을 대비시켜 공간에 포인트를 주었다. 간결한 공간 색깔과 디자인 덕에 커피를 주문하는 바에서는 금속 질감이 두드러진다. 질감 대비를 사용해 공간에서는 어떻게든지 '긴장감'이 남는다. 역삼점에서 보았던 나무, 돌, 자기 조명이 만들어낸 쾌활함과는 거리가 멀다.
블루보틀 롯폰기점은 스타벅스 로스터리 도쿄와는 다르게 음악이 정말 작게 나온다. 하지만 화장실에는 음악이 크게 나온다.(이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이를 위한 배려다. 일본화장실에서는 소리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화장실 비데에는 음악 버튼도 있을 정도니까.) 매장에서는 사람들의 소리와 스텝들의 소리가 더 클정도로 음악은 작다. 음악 선곡과 볼륨이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은 공간 속 '의도적인 비움'에서 나온다. 롯폰기점에서 사용한 비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소리다. 앞서 말한 대로 음악은 매우 작고 사람들 목소리가 오히려 더 크다. 이는 공간을 차분하게 만든다. 고요함이 아닌 차분함이 핵심이다. 적절한 음악 소리와 목소리는 '커피'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적절한 소음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듯이, 적절한 긴장감을 통해 사람들이 커피에 더욱 집중하도록 유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통유리다. 통유리를 통해서 블루보틀 매장 앞 정원이 블루보틀 매장 일부처럼 느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공간에 각기 다른 변화를 준다. 내가 간 날은 구름이 낀 날이라서 성수, 역삼점처럼 빛의 변화를 크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간혹 비치는 햇빛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선호하는 일본인에게 비움과 차분함이 있는 장소는 잠시나마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조용히 앉아 너무 크지 않은 음악, 바깥에 보이는 정원은 내향적인 미감을 좋아하는 일본인에게 잘 맞는다. 블루보틀이 서비스가 아닌 호스피텔리티를 강조한다는 점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이곳에 온 많은 이들이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가만히 있다가 매장을 유유히 매장을 나가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 점도 어쩌면 당연하다. 낮잠을 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삼점은 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대비'를 매장 전체를 아우르는 '색'으로 사용했다. 반면에 롯폰기점은 흰색과 갈색이 의도적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매장 공간 좌우 끝에서 전체 공간을 관찰하면 한쪽은 흰색이 중심. 반대편은 갈색이 중심이다. 이 같은 색 대비를 통해서 적절한 긴장감과 유머를 공간에 넣었다.
서비스는 다른 블루보틀점과 다를 게 없다. 이름을 포스기 터치화면에 적는 방식과 음료가 나오면 호명하는 방식도 여타 도쿄 내 블루보틀 매장과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종종 직원이 고객에 따라서 직접 음료를 전하는 정도다. 성수, 삼청, 역삼 매장에서 경험한 서비스는 도쿄, 교토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직원과 손님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점은 블루보틀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롯폰기점은 직장인이 많은 지역을 고려한 듯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음식도 팔고 있다.
사람들만의 미감은 각기 다르다. 또한 각 지역마다 미감도 다양하다. 자신이 선호하는 미감은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공간과 취향을 쫓아간다. 나는 스키마 사무소가 만든 한국 내 2개 지점과 'wrk-shp'가 지은 블루보틀 역삼점을 보았기에, 공간 속에 담긴 나라 간 미의식 차이를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역심점을 가보지 않고 롯폰기점에 갔다면 위와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거다.
공간에 담긴 미감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각자마다 선호하는 미감을 융합해, 자기가 추구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요즘 생기는 공간 안에는 그 공간을 만드는 브랜드가 속한 지역의 미의식이 어떻게든지 드러난다.
앞으로 공간에 대한 고민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맥을 같이 하리라 생각한다. 동시에는 이를 특정 규모가 있는 브랜드라고 한정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학교에 다니면서 '너는 ~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다. 개인이던 기업이든 지금 시대는 색깔을 묻어내 ‘-다움’을 끌어내야 한다. 결국 이 ‘-다움’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공간으로 나타난다. 온라인이던 오프라인던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