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도쿄에서는 서울과 다른 일본 미감이 있다.
미감은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다. 미감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가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가늠하는 요소 다. 하지만 사실 미감이라고 하면 사실 많이 와닿지 않는다. 혹시 최근에 찍어본 음식 혹은 카페 사진을 찍을 때 그대는 어떻게 찍었는가? 아마도 각도를 잡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느낌 좋게 찍었을 거다.
"야! 아직 음식 사진 안 찍었는데 왜 먹냐고!""야! 빨리 찍어. 배고프다고!",
"미안해 나 음식 사진은 영 아니야"라는 말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거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음식 사진 찍는 일. 이제 일상이 아니던가? 왜 버거킹, 맥도널드, 쉑쉑, 롯데리아는 같은 햄버거도 다르게 찍을까? 왜 글로시에, 헤라, 맥, 나스, 샤넬, 입생 로랑은 같은 립스틱인데 사진이 다를까? 각자 자기들이 추구하는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이 아름다운가? 어떤 서비스가 주목받는가?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도 따져보면 각자가 추구하는 취향이라고 넘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취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미감과 언제나 이어진다.
왜 미감을 먼저 이야기했을까? 요 근래 가본 공간 중 미감을 공간에 가장 잘 표현한 곳도 블루보틀이었다. 또한 미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비난을 받은 곳도 블루보틀이었다.(블루보틀 성수점) 내가 지금까지 가본 블루보틀 일본 매장은 블루보틀 절반, 일본 미감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흥미롭게도 일본 미감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도쿄 내 브랜드 중 하나가 블루보틀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블루보틀 성수점이 문을 열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성수점 매장을 비판했다. 높은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도쿄 매장의 연장선을 보고 싶던 게 아니다'를 포함해 '한국 미감'을 반영하지 못한 인테리어에 비판적 시각이 강했다. 내 주변에서도 실망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즉, 미감이 문제였다.
일본 미감을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는 일본 정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 미감은 단아, 간결, 긴장감이지만, 내가 교토에 직접 가서 발견한 일본 미감은 '편집'이었다. 일본 정원 술에 대한 교과서라고 하는 '사쿠 테이 키'에서는 정원을 조성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양식의 정원이 있으나 이는 다른 양식을 제외하고 한 가지 양식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의 정원에는 연못 모양이나 대지의 조건에 따라 여러 양식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이처럼 일본 정원은 정원을 만들 때 기존 양식을 편집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적는다.
이번 글에서는 블루보틀 매장에서 일본 미감을 느낄 수 있는 몇몇 매장을 이야기한다. 만약 도쿄에 디자인, 서비스 기획을 보기 위해 간다면? 여기서 언급한 매장들은 기회가 되면 가보기를 권한다. 게다가 대부분 매장이 역과 붙어있거나 지하철역과 가깝다.(이글에서 다루는 매장은 2019년 9월 기준이다. 2019년 9월 이후 생긴 에비스, 메구로점과 리모델링한 기요스미 시라카와점은 가보지 못했다. 부드럽고 쾌활한 역삼점은 오히려 한국 미감에 더 잘 맞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Zeg6yF6yA&t=45s
JR시나가와 역을 따라 출구 쪽으로 걸어가면 이세탄 백화점과 atre가 나온다. 이세탄 백화점이 보일 때쯤 예쁘고 깜찍한 파란 병이 하나 보인다. 그렇다. 블루보틀 시나가와 점이다. 시나가와점은 일본 블루보틀 매장 중 유일하게 다른 식당과 붙어있다. 사진처럼 블루보틀 시나가와점과 옆 식당과의 경계가 거의 없을 정도다. 이를 위해서 조명과 바닥 타일, 색상을 활용해서 다른 식당과의 관계로 같이 고려했다.
스키마 건축사무소는 흰색으로 구성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요 인테리어 마감재로 이시카와 현에서 생산하는 흰색 응회암을 사용했다. 석재의 자연적인 수평, 수직 구성은 시원하고 정교한 인상을 준다. 미세하게 짜인 석재 표면은 부드럽게 빛을 받아 고요한 느낌을 만든다. 이시카와 현에서 조달한 석재 마감재는 바닥, 벽 및 카운터 패널 전체에 매끄럽게 적용되어 평온함을 만든다.
블루보틀에서 키친은 다른 카페보다 상당히 중요한데, 블루보틀 자체가 '환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키친은 환대의 중심이다. 키친 위치가 손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직원들은 매장 키친에 설치된 핸드드립 바안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커피를 추출한다. 게다가 환대도 매뉴얼에 입각한 환대가 아니다. 커피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그렇기에 블루보틀 매장에서 직원들이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걸 보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시나가와점은 신주쿠 카페와 같은 정사각형이면서, 동시에 정사각형 키친 뒤에 경사진 통로를 만들어 손님들이 나가는 동선을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블루보틀 직원들이 최대한 모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도쿄에서 가본 블루보틀 매장 중 일본 정원과 다실을 가장 잘 표현한 매장은 시나가와, 롯폰기, 이케부쿠로 점이다. 롯폰기와 이케부쿠로는 각각 정원과 공원(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이 있지만 시나가와는 조금 다르다. 시나가와점이 추구하는 미감은 '고요함'이다. 이를 위한 장치는 통유리와 이세탄 백화점 2층에 자리한 위치다. 일단 통유리를 통해 시나가와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시나가와역은 에도시대부터 역참이었고 지금은 JR선과 신칸센을 타는 역이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계속 나온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역을 향해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흐트러짐 없이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이를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느낌이다. 나 자신도 몇 분 전에는 인파 속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 순간 잠시나마 일상에서 '탈출'하는 경험을 한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며 잠시나마 짧은 휴식을 취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멈추지 않고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다. 누구나 한 번씩은 이 같은 긴장감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사람이 많은 통로를 지날 때 "손 꽉 잡어"라고 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블루보틀 시나가와 점은 다른 블루보틀 매장과 다르게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 강하다고 할 수 도 있다. 창문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이 쏟아지는 모습이 보이니까. 또한 도심에서 필요한 카페 역할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도 있다. '나도 저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이다'라는 동질감과 '지금은 아니다'라는 안도감. 바쁜 일상 속에서의 잠시나마의 휴식, 도시에서 카페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휴식의 결을 전한다. 이는 일본 정원에서 정원 속에 있는 다실에서 차를 마시며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한 거'에 몰입하는 일과 큰 차이가 없다.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한 블루보틀 다이마루 커피 스탠드는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 PAPABUBBLE 상점 옆에 있다. 흥미롭게도 바르셀로나에 기반은 PAPABUBBLE의 도쿄 첫 매장인 다이마루 점도 스키마 건축사무소에서 작업했다. 다이마루점은 테이크 아웃 전용 매장이며, 오리지널 상품 판매도 같이 하는 곳이다. 다른 매장과는 다르게 팝업스토어 느낌이 강하다.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의 바닥 색이 하얗기 때문에 매장을 구성하는 색이 흰색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대신 크래프트 지와 같은 따뜻한 갈색을 사용했다. 매장의 표면 마감재로는 가구 같은 빈티지 TV 세트 뒷면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일종의 하드 보드 (고밀도 섬유판) 지를 사용했다.
블루보틀 다이마루 점이 테이크아웃 전용 점이다 보니 블루보틀을 상징하는 핸드드립 바가 없다. 오로지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한 블루보틀 커피만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디카페인만 핸드드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직원은 " 다른 장소에서 커피 드립을 해 매장으로 가지고 온다 "라고 말했다. 블루보틀 특징은 단연코 한 땀 한 땀 내리는 핸드드립이지만 이곳에서는 블루보틀의 핵심을 경험할 수 없다. 상당히 의아했다.
다이마루 백화점은 블루보틀이 '커피 브랜드'로서 승부를 해야 하는 공간이다. 블루보틀이 추구하는 호스피털리티(환대), 원두, 비움을 모두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블루보틀 다이마루 커피 스탠드에 볼 수 있는 부분은 '변화'와 '실험'이다. 어떤 면에서는 '확장'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이마루 백화점은 최적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다이마루 백화점 도쿄점의 위치 때문이다.
다이마루 백화점 도쿄점은 JR도쿄역 아녜스 북쪽 출구에 있다. 아예스 북쪽 출구에는 신칸센&JR출구가 같이 있다.(시나가와역처럼 사람이 계속 나온다. 시나가와역도 신칸센이 지난다.)뿐만 아니라 아예스 북쪽 출구는 니혼바시와 오테마치와 연결된다. 즉, 사람들이 항상 많은 곳이다. 다이마루 백화점은 이점에 착안해서 식품매장을 지하 1, 지상 1층에 집중 배치했다. 특히 1층 절반은 선물코너(오미야게)로 꾸몄다. 선물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당연히 사람이 엄청 많다. 지하 1층 식품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블루보틀 다이마루점은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위치한다. 여기에서 핸드드립바까지 놓은 매장을 설치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나는 사람들이 거의 지나가지 않는 벽에 기대어 블루보틀 매장을 한동안 관찰했다. 많은 사람들이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가거나 원두와 오리지널 상품을 구입했다.
앞서 말한 대로 다이마루 도쿄는 오미야게를 강조한 식품매장으로 도쿄점을 꾸렸다. 나는 블루보틀 관계자가 아니라서 왜 다이마루점은 테이크아웃 전용인지 모른다.(간 다점도 테이크아웃 전용이지만 핸드드립바는 있다.) 하지만 일본 내 블루보틀 매장들의 위치를 확인해보면 다이마루점은 테이크아웃 전용인지 이해가 된다. 블루보틀 매장들은 도쿄에 몰려있다. 그 외 매장은 교토, 고베밖에 없다. [2019년 기준.]
도쿄 이외의 사람들에게 블루보틀이란 충분히 '선물'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대전에 가면 성심당 빵을 사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도쿄에 와서 블루보틀 원두 혹은 오리지널 상품을 사가는 사실 자체만으로 선물(오미야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강배전 커피를 선호하는 일본인에게 약배전, 중배 전등 다양한 맛을 가진 블루보틀 원두는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O2h0hO3IYY
블루보틀 다이마루점만이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은 아니다. 테이크아웃 첫 매장은 간다점이다. 하지만 내가 다이마루와 간다점을 구분하는 이유는 '핸드드립바'때문이다. 간다점은 테이크아웃 전용이 맞지만 테라스 좌석이 있기 때문에 100% 테이크아웃은 아니다.
블루보틀 간다점은 100년이 넘은 철도역과 다리(현재는 JR 주오선)를 리모델링한 마챠에큐트 만세이바시에 위치한다. 간다점 인테리어는 오랜 역사와 함께한 매력적인 벽돌 건축과 흐름을 같이 한다.'빼는'건축을 선호하는 스키마 건축 사무소답게 기존 공간은 대부분 살렸다. 벽과 천장의 기존 석고 보드 마감재를 제거하고 공간에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를 채워 마차에큐트와 과거 만세이바시역과의 통일성도 높였다. 물성도 동일하다. 카운터는 단단한 구조 금속 프레임 안에 싸여있는 것처럼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도쿄 내 블루보틀 매장 중 크기는 간다점이 가장 작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일 잘 만든 곳은 간다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한 인테리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블루보틀 성수동을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성수와 간다점은 프로젝트 기간이 겹쳤다. 또한 성수점과 간다점 오픈 시기가 거의 같다.)
블루보틀 간다점 매장 자체가 벽돌과 금속이 많고 주변에 식물이 없다 보니 꽃꽂이가 돋보인다. 또한 매장 밖의 검은 철 의자도 공간에 통일성을 더한다. 주변 상가와 잘 어울리는 치킨집 같은 느낌? 블루보틀 특유의 세련된 느낌보다는 편안함이 유독 강한 곳이다.
손님과 대화를 자주 하는 일본 카페 문화는 이곳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매장에 손님이 없는 상황에도, 직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매니저 직원은 다른 직원과 원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드립 연습을 하기도 했다. 종종 핸드드립을 가르치기 위해서 물은 내리려고 하는 순간 손님이 오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경우, 매우 자연스럽게 접객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 같은 부분은 요식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 매장에 관한 일을 하면 손님들은 그걸 보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손님을 그 모습을 보고 '이 가게는 직원들이 놀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호의를 가질 수도 있다.
미감 혹은 미의식을 가지고 브랜드를 보는 일은 어쩌면 너무 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디자인과 공간은 언제나 함께한다. 자연스럽게 디자인은 지역 혹은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디자인은 때로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미감은 각자 다른 취향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걸 취향이라고도 부른다.
개인의 취향이 부상하는 시대가 되면서 어쩌면 미감은 우리도 모르게 점차 삶 속에서 익숙해져가고 있다. 음식 사진 하나에도 정성을 다해서 찍을 만큼 우리는 이제 미감에 민감해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미감에 둔감했던 우리의 눈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블루보틀을 우리가 다른 카페들보다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우리는 자극하는 미감이 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