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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Dec 03. 2020

배우와 영상디자인이 중요한 이유.

오늘도 영상 속 샷 디자인이 당신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고자 노력한다.

드라마와 영화는 '글자'로 적힌 이야기.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야기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결과물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시각과 청각을 전달하는 매체이기에, 두 가지 감각들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해 표현하는가에 따라 다른 감각들이 따라온다. '이야기'라는 지도만 달랑 주어진 항해. 그 이야기에 맞는 냄새, 정서, 색깔을 찾아 배치하고 엮어가는 일은 배우, 촬영감독이 가야 하는 항해다. 이 항해를 위해 배우, 촬영감독은 자신만의 편집력을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 이 항해를 시작하고 마치는 과정에서 배우가 가진 편집력, 기획력, 묘사력이 어느 정도 숙달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이야기'라는 항해를 시작하고 마치는 과정에서 배우가 가진 편집력, 기획력, 묘사력이 어느 정도 숙달했는지 드러나게 된다

배우는 매 작품 속에 담긴 감정과 정서를 시각 이미지로 바꾼다. 조각가와 다르게 배우 본인 스스로를 조각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이야기에 담긴 모든 요소를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상황에 맞도록 매 순간 유연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하우스 오브 카다의 높은 대비와 어두운 질감은 극 분위기 그 자체를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데이비드 핀치가 만든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카메라 움직임은 굉장히 무겁다. 처음부터 각을 잡고 들어가는 느낌. 검은색을 많이 사용하고 색온도마저 낮은 탓에 영상은 항상 차갑다. 인물이 앉을 때도 그들이 지향하는 욕망을 날카롭게 보여주려고 애쓴다. 경직되어 엄격한 장면 그러다가 갑자기 터지는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테이시)의 표정. 이 같은 엄격한 샷들이 워싱턴 정계를 매우 사실감 있고 자극적으로 표현한다. 

경직되어 엄격한 장면 그러다가 갑자기 터지는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테이시)의 표정. 이 같은 엄격한 샷들이 워싱턴 정계를 매우 사실감 있고 자극적으로 표현한다

시청자들에게 종종 말을 거는 프랭크 언더우드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안내자 역할도 겸한다. 이러한 느낌과 영상 설계는 영화(혹은 드라마) 안에서 굉장히 단단한 구조를 만든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며 프랭크 언더우드를 응원하다가도, 그의 악행에 구역질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상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샷 디자인이 쌓이고 쌓여 이야기를 만들고 이는 정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UX 디자이너들이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면서 사이트(혹은 앱)를 설계하듯이, 배우, 감독, 촬영감독은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경험을 고려하며 영상을 설계한다.

영상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샷 디자인이 쌓이고 쌓여 이야기를 만들고 이는 정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이루는 중심축인 ‘이미지’는 빛이 핵심이다. 빛을 사용하는 일은 장면 하나하나를 디자인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빛은 이야기 콘셉을 잡아낸다.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가 추구하는 감성, 질감을 만든다. 초반에는 의미가 없던 장면 하나하나들. 미진했던 연출들은 종종 회가 거듭될수록 안정감을 찾아가며 드라마 내력을 탄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밀의숲과 낮과 밤은 비슷한 장르이지만, 작품이 디향하는 어둠과 샷 디자인은 엄연히 다르다.

현실감을 살릴지 혹은 현실감을 포기하고 드라마 분위기에 맞추어 극적으로 묘사할지에 관한 여부는 ‘샷 디자인’에서 나온다. 빛을 부드럽게 넣고 대비를 줄여 몽환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빛을 선명하게 만든 후 그림자를 조절해 대비를 살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비밀의 숲, 낮과 밤 같이 ‘추리’과 밑바탕이 되는 경우에는 빛을 사용할 때 현실과 드라마에 맞춘 상황을 모두 가정해 묘사한다. '콜'같은 경우 무겁고 거친 검은색을 사용해 극 분위기를 끌고 간다.

'콜'같은 경우 무겁고 거친 검은색을 사용해 극 분위기를 끌고 간다.

샷 디자인은  편안하게 가다가고 힘을 줄 때는 힘을 주면서 강약을 조절한다. 지나치게 영상에 힘을 주는 경우, 예를 들어 영상에 초점이 맞지 않거나. 특정 샷이 반복되는 경우, 시청자들 입장에서 매우 피로하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힘보다는 '리듬'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관객이 영상에 몰입하더라도 지나치게 집중하면 피곤하기에, 스토리에 다소 편하게 몰입하면서도 여유로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감정을 고조시켜 카타르시스를 주는 지점을 명쾌하게 해야 한다.

이야기가 항상 같은 톤이면 시청자들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면마다 '디자인'을 통해 최대한 시청자들이 취향을 담아내도록 해야 한다.

빛이 들어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약 역광이 들어오는 경우, 빛의 방향과 성질에 따라 샷은 전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취향에 따라서도 영상에 대한 선호도 달라진다. 누군가는 거친 걸 좋아할지 모르나, 어떤 사람들은 예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항상 같은 톤이면 시청자들은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면마다 '디자인'을 통해 최대한 시청자들이 취향을 담아내도록 해야 한다.

구승효가 예진우에게 다가가는 이 장면을 보자. 라이프 촬영팀은 롱테이크 샷을 바탕으로 마스터 샷에서 천천히 렌즈를 당겨 클로즈 업샷까지 간다. 이를 통해 두 사람 간 긴장감을 극대

드라마와 영화 속 화면은 스토리텔링, 배우, 분위기 등 목적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진다. 카메라, 렌즈, 화각, 비율 등이 중요한 건 이 같은 '목적'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주목할 점은 영상과 영상 간 비교가 아니다. 오히려 ‘영상이 얼마나 시나리오에 충실한가?’에 목적을 두고 비교해야 한다.

몇 마디 직접적인 대사보다 주요 인물들의 예민한 표정 변화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도 배우가 해야 할 일이다.

몇 마디 직접적인 대사보다 주요 인물들의 예민한 표정 변화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도 배우가 해야 할 일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의 표정. 그 표정에 맞도록 조명들을 설계하면 영화 혹은 드라마 안에 디테일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만약 시나리오가  감정 중심이라면? 비주얼보다는 배우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당연히 빛 자체도 부드럽거나 혹은 거칠 수도 있다. 만일 인물이 중심이 되는 영화. 로맨스, 멜로 영화 등 감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비주얼적으로 너무 튀지 않아야 한다.

‘어둠’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해야 할까? 어둠을 얼마나 조절하는가에 따라서 영상 질감이 추구하는 방향이 보다 더 선명해질 수 있다.

‘어둠’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해야 할까? 어둠을 얼마나 조절하는가에 따라서 영상 질감이 추구하는 방향이 보다 더 선명해질 수 있기에, 어둠에서 생긴 대비는 영화(드라마를 표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빛과 그림자는 그 후 전체적인 색감을 결정한다. 클래식한 영화는 부드럽고 질감도 거칠지 않다. 화면 속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 간 대비가 커서 세기도 하지만 보통 대비와 어두운 것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아수라처럼 너무 대비가 심하거나, 역린같이 검은색톤으로 비주얼과 스토리텔링을 이끄는 건 멜로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두 사람 간의 미묘한 감정골을 어둠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14화에서 서달미와 남도산이 만나는 장면을 보자. 검은색은 묵직하다. 이 장면에서 검은색은 두 사람 간의 서로 잊지 못하는 애틋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 건조한 어둠은 두 사람 간의 서먹서먹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남도산(남주혁)의 내레이션과 함께 두 사람 간의 미묘한 대화 장면이 지나간 후, 이전에 없었던 장작불이 나온다. 

두 사람의 감정이 회복되고 있음을 장작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한다.

장작불이 만들어내는 붉은색은 검은색을 걸쭉한 남색으로 바꾸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여전히 어둠이 공간을 이끌지만 그 안에는 촉촉함이 있다. 이 촉촉함에 더해진 아련한 붉은색과 노란색은 어둠과 대비를 이룬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감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툰 두 사람 간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들고 있음을 전한다. 같은 검은색이라도 거칠게 담느냐 따뜻하게 담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전해지는 스토리텔링은 달라질 수 있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몰입에도 영향을 준다.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화면은 커다란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영화 러닝타임을 인체구조와 비교해본다면 전체를 모두 관절처럼 찍으면 안 된다. 관절이 있으면 쭉 이어지는 마디와 근육도 있다. 이를 파악하며 하나씩 관찰해가다 보면 또 관절이 있다. 이 관절이 터닝 포인트다. 특히 롱테이크 샷은 고도의 영화적이며 미학적인 테크닉이 응축된 기법이다. 통 테이크 샷처럼 관절, 근육, 마디 등 모든 요소를 골고루 들어간 기법은 거의 없다. 롱테이크 샷은 단순히 화면을 나누지 안 해서 혹은 빨리 찍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유 없이 쓰면 롱테이크는 작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 어떤 장면에서 한 호흡으로 인과관계나 과정을 죽 이어서 보여주면 관객이 더 극에 몰입하는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혹은 긴장감 혹은 현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도 사용된다.

최고의 롱테이크 신을 선보였던 레버넌트 같은 경우도 배우들의 연기가 카메라 이동에 따라서 잠시 스치고 나간다

만일 촬영감독이 롱테이크로 신을 찍는다면? 배우는 롱테이크 씬에서 카메라에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롱테이크 샷이라는 특성상, 배우 스스로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순간마저도 이야기 전체에 필요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최고의 롱테이크 신을 선보였던 레버넌트 같은 경우도 배우들의 연기가 카메라 이동에 따라서 잠시 스치고 나간다.

경이로운 소문' 촬영팀은 롱테이크+빠른 클로즈업샷 전환을 통해 '언니네 국숫집'에 대한 정보는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한다.

OCN’ 경이로운 소문’에서 활용한 롱테이크 신을 보자.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국숫집'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롱테이크 샷을 사용해 대략적인 정보를 전한다. 하지만 롱 데이크가 끝난 직후 가모탁(유준상), 도하나(김세정), 추매 옥(염혜란)이 일하는 주방 장면에서는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 미들 샷을 매우 빠르게 구성한다. 이구성을 통해 앞서 사용한 롱테이크 신과 대조해 연출 속도를 조절한다.

스타트업 14화는 또 다르다. 일단 뒷부분의 배수지 배우 머리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한다. 동시에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수지 배우를 따라간다. 그다음 정면샷으로 전환되어, 주변 상황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서달미가 마주하는 감정을 동시에 전한다. 서인재와 대화 후 자율주행차로 향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 초점은 계속 중앙을 유지한다. 그다음 카메라는 다시 수지 배우 뒤를 따라가며 자동차까지 따라붙는다. 컷 전환까지 180도 라인을 지킨다. 곧장 남주혁 배우로 장면 컷. 곧바로 다시 수지 배우로 컷. 그다음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장면으로 마무리. 처음 수지 배우 뒷모습에서부터 카메라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고 남주혁 배우와 마주 보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정석을 그대로 지킨 샷 설계 디자인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샷에서 빛은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왔으며, 오히려 빛이 배수지 배우 머리에 닿게 만들어 머리카락에 질감을 부각하고, 움직이는 머리카락을 통해 영상에 리듬감을 넣었다.

영상에서 조승우 배우 옆의 노란 조명 색은 조승우 배우 연기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너무 감정만 살린 샷만 디자인만 해서는 안된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더 차분하게 영상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영화 방향에 따라 자극적이지 않고 조명도 자연스럽게 배치해야 한다. 특히 감정을 담아낼 때는 빛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빛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좋은 빛 조건을 찾아 마주치게는 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조명 스타일과 디테일은 샷 디자인에도 차이를 만든다. 조명으로 만든 인공 빛은 이미지 안에 감정을 집어넣기 때문에 조명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보고 즐기는 영화와 드라마는 수많은 디자인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우리가 이러한 면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야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몰라서가 아니다. 만일 오늘 저녁 침대에 누워서 드라마를 본다면?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미 보았던 드라마 혹은 영화를 다시 보자. 음소거를 한 뒤 자막만 키고 화면만 바라보자. 아마도 처음 볼 때와는 조금은 다른 수많은 모습들. 영상 속 샷 디자인이 당신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려고 무수히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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