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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17. 2020

배우의 표현력은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듣는 드라마 속 배우 목소리는 디테일 그 자체다.

나는 배우를 세 가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를 통해 시나리오에 생명을 불어넣는 ‘표현력’. 인물을 작품 안에서 살아있는 존재로 구축하는 ‘기획력’. 캐릭터를 작품 맥락에 잘 맞도록 묶고 엮어 배치하는 ‘편집력’. 그중에서도 ‘편집력’이 '표현력'과 '기획력'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배우에게 '편집력'은 극 안에서 캐릭터를 기획하고 표현하는 원동력이다. 이 원동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면 영화와 드라마를 전체를 파악하는 '구조 이해력'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배우를 바라보면, 드라마와 영화 속 배우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너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촬영감독을 비롯한 조명, 미술팀이 어떤 방식으로 메시지를 시각언어로 바꾸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드라마의 모든 장면은 의도와 목적이 있다. 출처: 넷플릭스.

배우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점. 기획, 표현, 편집력. 이 세 가지 중에서 배우의 표현력의 시작은 딕션이다.

‘딕션’이라고 부르는 배우의 ’ 목소리와 발음’은 배우 연기 시작점이자, 배우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설령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드라마에서만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오로지 영상 속에서만 살아있는 사람.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판단이 내려졌다면, 거기에 완전히 매달리고자 한다. 실제 삶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듯, 배우들은 시나리오에 적힌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캐릭터에 푹 빠져든다. 우리가 스크린으로 보는 캐릭터의 목소리는 그 몰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목소리’는 캐릭터와 작품 색깔을 파악할 수 있는 첫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 시즌2는 시즌1 이창준을 맡았던 유재명 배우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이 목소리는 비밀의 숲 시즌 2 전체 분위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축이다. 출처: 넷플릭스.

모든 드라마와 영화는 이야기다. 모든 드라마(영화)는 장르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 그 전개과정에서 여러 장르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발생한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그 안에서 아주 작게 서스펜스, 스릴러, 액션을 미묘하게 섞기도 한다. 판타지 장르에서도 멜로와 공포 같은 부가 장르가 있다. 이러한 보조 장르는 때때로 이야기 흐름을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그냥 일반적인 것들.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문법들은 어느 순간 색깔이 된다. 이러한 작은 면들이 반복적으로 쌓이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문법이 된다.. 배우에게 목소리는 캐릭터를 만드는 문법이자, 캐릭터에 자신만의 표현력을 넣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면서 문법이다. 목소리야말로 캐릭터를 살아있게 만드는 시작이니까.

딕션이 좋을수록 배우의 표현력 깊이는 더 풍성해진다. 그러나 딕션이 깊이를 측정하는 절대기준은 아니다. 출처: 넷플릭스


 '딕션’이 좋은 배우들의 연기는 시청자들을 작품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아나운서 뺨치는 딕션을 가진 배우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딕션’만으로 배우를 판단하는 절대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딕션은 기본소양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오히려 배우가 자신의 ‘딕션’을 얼마나 캐릭터 묘사를 위해 적확하게 활용하는가를 주목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배우들 목소리가 청량하고 맑을 수 없다. 누군가는 탁하고 거친 배우들도 있다. 이들은 딕션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로 색깔이 선명한 캐릭터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딕션에서 강점을 보이지 못하거나, 색깔을 잘 보여주지 못한 배우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만나 딕션이 급속하게 성장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배우 엄태구. 그의 목소리는 매우 독특하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캐릭터에 누구보다 잘 담아내는 배우중 한 명이다. 

엄태구. 그의 목소리는 아나운서만큼 청량하거나 맑지 않다. 거칠고 탁하다. 종종 카세프 테이프 혹은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가 목소리 안에 섞여있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 같은 그의 딕션은 정확하고 청량감 있는 목소리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는 매 작품마다 허스키하면서도 찢어지는 자신만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작품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든다. 오히려 엄태구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그렇기에 엄태구 배우의 작품은 연기를 넘어 ‘그의 딕션이 드라마 혹은 영화 안에 어떤 색깔을 넣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오히려 그에게 딕션은 연기의 합을 이루는 하나의 주춧돌이다. 잉투기에서 보여준 찢어지면서 낮은 목소리는 지질한 ‘태식’을 완벽하게 묘사한다. 잉투기에서 태식을 보며 ‘저 등신 같은 놈’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도 목소리 때문이다.‘밀정’에서 그가 맡은 하시모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냉혈한이다. 실수한 부하의 뺨을 사정없이 때린다. 선배 격인 이정출(송강호)에게도 대든다.

엄태구 배우의 표현력은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약간 찢어지는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엄태구 배우는 이 같은 하시모토를 위해 허스키한 목소리톤을 너무 내리지 않는다. 이 덕분에 신중한 동시에 신경질적인 목소리톤으로 하시모토를 완성한다.‘구해줘 2’에서는 허스키함을 최대한으로 줄이지만 여전히 본인만의 낮은 톤 목소리로 '김민철'이라는 캐릭터를 끌고 간다. 판소리 복서에서는 깡마른 몸과 거친 소리는 그가 보여주는 판소리 복싱에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스타트업에서 여진구 배우의 목소리는 극 안에 서정적인 분위기를 집어넣기도 한다.

목소리는 드라마가 순간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정서를 강조하기도 한다. tvN 스타트업에서 여진구 배우의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여진구 배우는 스타트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AI스피커인 ‘영실’의 목소리로만 드라마에 나온다. 음성과 이미지 인식을 결합한 어플인 ‘눈길’을 사용해 원덕(최해숙) 배우가 성경을 읽는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여진구배우의 목소리는 드라마가 추구하는 서정적인 느낌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유아인 배우를 통해 우리는 사도세자의 감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유아인 배우는 목소리의 톤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 종종 목소리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도 난다. 유아인 배우는 이런 목소리를 기반으로 가증스럽고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조태오라는 인물을 표현한다. 이에 반해 사도에서는 목소리에 중후함을 넣어 사도세자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한다. 심지어 사도에서는 감정에 격앙되어 목소리가 뭉개져버리기도 하는데, 단순한 뭉개짐이 아니다. 한으로 응어리진 감정이 북받쳐오는 뭉개짐이다. 반면에, 무신사 광고에서 보여주는 목소리는 인간 유아인의 목소리에 좀 더 가깝다. 오히려 무신사 광고 목소리를 들으면 ‘유아인 배우 목소리 맞아?’라고 할 정도로 낯설다.

공유 배우는 김신을 위해 차분하면서도 사극 말투가 오묘하게 섞인 목소리를 만든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김신’을 맡은 공유 배우의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차분하다. 현대어와 사극 말투가 묘하게 섞인 딕션은 오랜 시간 죽지 않고 살아온 ‘김신’의 성격을 판단하게 돕는다. 종종 여기에 웃긴 딕션을 더해 극 안에서 김신이 지나치게 ‘진지’ 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을 맡은 이동욱 배우는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선보인다. 김신과 마찬가지로 웃긴 딕션을 더해 김신(공유)과 호흡을 맞춘다.

이동욱 배우는 구미호뎐의 이연을 위해 도꺠비의 저승사자의 딕션을 일부 가져온다.

이동욱 배우는 도깨비에서 보여준 딕션을 구미호뎐에서도 유사하가 사용한다 이유는 구미호뎐에서 그가 맡은 배역인 ‘이연 도깨비 ‘저승사자’ 캐릭터와 겹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하지만 구미호뎐에서 맡은 ‘이연 도깨비의 김신과 조금  유사하다이동욱 배우는 이를 위해 도깨비에서 보여준 저승사자의 차분한 딕션과 본인이 해석한  ‘이연이라는 캐릭터 분석을 더한다또한 독백에서는 ‘라이프에서 보여준 예진우의 목소리를 끌어온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이연의 목소리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이연이라는 캐릭터 분석을 더한다이를 통해 만들어진 이연의 목소리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목소리는 당연히 작품에 맞는 억양을 만든다. 하지만 억양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만일 억양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그 억양을 캐릭터에 적용하는 순간부터, 캐릭터는 그 억양에 맞추어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전달된다.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는 건 매우 유용하지만, 오히려 억양에 캐릭터가 지워질 수 있도 있다. 무엇보다 억양이 부드럽게 작품에서 스며들게 하려면, 자기 나름대로 억양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만일 억양을 연기로 만들어내는 경우, 캐릭터 자체가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나는 하백의 신부에서 하백을 맡은 남주혁 배우를 보면이 같은 면을 찾아볼 수 있다.

백을 묘사하기 위해 남주혁 배우는 하이톤과 중저음을 미묘하게 섞는다. 하지만 톤에 중심을 두고 하백의 억양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종종 딕션 뭉개지는 면이 적지 않다.


 tvN 하백의 신부’에서 ‘수신’인 하백은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는 전지전능함에도 생각만큼 오만하지 않다. 신력을 잃어버리고, 소아가(신세경) 위기에 처하는 순간에만 신력이 나온다. 하백은 매우 오만해 보이는 신같이 보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균형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같은 하백을 묘사하기 위해 남주혁 배우는 하이톤과 중저음을 미묘하게 섞는다. 하지만 톤에 중심을 두고 하백의 억양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종종 딕션 뭉개지는 면이 적지 않다. 드라마 안에서 하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목소리톤과 딕션이 맞지 않기 때문에  연기 디테일이 떨어진다. 이는 주동 역을 맡은 양동근 배우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눈이부시게, 보건교사 안은영을 거치면서, 남주혁배우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점차 찾아간다. 

지만 이러한 남주혁 배우는 ‘하백의 신부’에서 보여준 면들을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눈이 부시게’의 장준하,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인표를 거쳐, 방영 중인 스타트업의 남도산과 비교하면 그의 딕션이 점차 성숙하고 정확해짐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맞는 색깔, 억양을 파악하는 역량이 성장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딕션이 좋기로 유명한 신혜선 배우는 자신의 목소리에 하이톤과 신경질적인 면을 더해 영은수의 목소리를 만든다.

비밀의 숲 시즌1의 신혜선 배우는 워낙 딕션이 좋기로 유명한 배우다. 비밀의 숲 시즌1에서 신혜선 배우가 맡은 영은 수는 종종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신혜선 배우의 하이톤 목소리는 신경질이면서도 감정을 때때로 조절하지 못하는 영은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오히려 신혜선 배우가 영은수를 위해 조절한 목소리는 아버지의 누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은수를 세밀하게 만든다. 배테랑 배우인 엄효섭 배우도 실제 목소리는 중저음 통이지만, 작품에 따라 목소리 톤을 다채롭게 구사하며 인물을 묘사한다.

딕션의 여왕으로 불리는 서현진 배우는 이와 다르게 ‘사랑의 온도’에서는 하이톤 딕션에 서정적인 선율 감과 찰진 딕션을 사용한다.


 딕션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서현진 배우는 어떠한가? 그녀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하이톤 목소리를 정확한 발음으로 캐릭터를
 묘사한다. ‘블랙독’에서는 하이톤 목소리를 낮추며 차분하게 고하늘을 묘사한다. 이와 다르게 ‘사랑의 온도’에서는 하이톤 딕션에 서정적인 선율 감과 찰진 딕션을 사용한다. 

유재명배우는 40대의 장대희, 60대의 장대희. 나이에 따라 변해버린 장대희 목소리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비밀의 숲'에서 이창준, 이태원 클래스에서 ‘장대희’, ‘응답하라 1988’의 ‘류재명’을 맡은 유재명 배우를 생각해보자. '비밀의
 숲'에서는 검사장인 이창준을 묘사하기 위해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목소리를 유지한다. 이태원 클래스에서는  40대, 60대의 장대희를 연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보다 ‘사투리’를 가볍게 섞는다. 반면에 ‘자백’에서 연기한 형사인 기춘호는 이창준 같은 차분함에 거친 느낌을 담아낸다.

송강호 배우는 연습하고 연습하고 반복해 캐릭터 목소리를 만든다. 그는 누구보다도 목소리가 캐릭터를 만든다는 걸 적확하게 알고 있는 배우중 한 명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배우만의 중저음톤의 목소리는 극을 관통하는 정서를 만들 정도로 그 힘이 강력하다. 만일 송강호 배우가 밀정에서 연기한 이정출 톤의 목소리를 기생충에서 사용했다면? 아마도 전혀 맞지 않을 것이다. 같은 송강호 배우라도 이정출과 기택은 전혀 다른 인물이기에 송강호 배우는 시나리오에 맞게 목소리를 다듬는다. “송강호 선배님은 영화 사도’에서 촬영장에서부터 분장받는 시간부터 끊임없이 영조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습하고 연습하고 반복하고 반복했다.”유아인 배우는 MBC와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배우에 목소리는 캐릭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우리가 그냥 흘려듣는 드라마의 목소리는 사실. 디테일 그 자체인 셈이다.

 

목소리는 그 생동감의 시작점이다. 그 시작점이 좋다면? 시청자들은 알아서 이야기에 빠져든다.

‘목소리’는 캐릭터를 묘사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건 부정할 수 없다. 배우들은 그 자신이 가진 목소리를 통해 자신만의 문법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언제나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목소리와 합을 이루어야 한다. 영상도 연기도 작품이 추구하는 공간에 맞는 컬러에 어떻게 녹아들어 갈지 촬영감독, 배우, 모든 팀원들이 소통하면 영화 자체가 가진 색깔이 분명해진다. 촬영감독들은 영상 설계, 질감, 색체, 각도, 카메라들 시나리오를 시각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걸 고민한다. 그렇다면 배우들은?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있을 만한 사람들을 만들어 배우는 영상 속 캐릭터를 생동감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목소리는 그 생동감의 시작점이다. 그 시작점이 좋다면? 시청자들은 알아서 이야기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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