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개인의지, 브랜드 철학, 기업이념을 포함해 다양한 의지를 담는다.
공간은 단어 그대로 비어있는 곳이다. 하지만 공간은 벽, 지붕, 바닥, 기둥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모든 공간들은 모두 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간은 누군가 만든 결과물이다. 스스로 형상을 가질 수 없다. 반드시 사람이 생각한 의도가 '공간'을 만든다. 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공간을 논하지 않는다. 자연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풍경'이라고 말하고, 그 속에 담긴 정취를 말한다.
공간을 만드는 일은 삶을 만드는 일이다. 크기와 상관없이 공간을 만드는 일은 ‘건축’을 도시와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시킨다. 공간은 '삶'이이기에 '삶'을 담고 있고 도시와 따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과하게 '이론'으로 이야기하면 공간은 모호하게 변한다. 공간은 이론으로만 해석하는 게 아니다. 공간은 언제나 보고 만지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곳이자 개개인의 삶이 담기는 곳이다. 철학과 형이상학적인 게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간을 '이론'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경험.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공간을 받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사전적으로 정의된 공간을 따른다. 하지만 각자마다 공간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는 24시간 공간에서 생활한다. 그렇기에 공간 그 자체를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방에서 일을 하는 이에게 방은 일터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방은 편하게 누워서 멍 때리는 곳이자 편안함 그 자체다. 어떤 이에게 자신의 공간은 음식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극장이다. 나만 해도 방은 최적의 수면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공간에 각자만의 취향이 스며들어 있다.
수많은 목적을 가진 공간이 모인 곳. 우리는 이곳을 도시라고도 부른다. 도시는 ‘권력’이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 도시 권력은 '교회'였다. 기독교 교리와 그에 맞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건축, 조각, 회화가 도시와 권력을 이끌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크 미술과 고딕 건축이다. 바티칸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이 대표적이다. 현대 도시 권력은 상업자본이다.
도시에서 좋은 공간을 소유하는 일은 '성공'을 의미한다. 동시에 안전한 '자산'을 가졌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 '공간'은 남에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면을 알기 위해서는 한 도시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불리는 건축물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뉴욕을 보자. 뉴욕 하면 마천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뉴욕을 보면서 ‘뉴욕=마천루’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천루가 뉴욕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마천루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뉴욕의 진짜 힘은 마천루를 포함한 크고 작은 모든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그 자체를 오감으로 인식하기에 공간은 얼마든지 메시지를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공간의 본질은 사람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소재들. [나무, 철, 유리, 콘크리트]등을 우리가 손으로 만지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만질수록 우리는 그 의도를 생각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개인의 메시지' 일수도 있다. 만일 그곳이 브랜드라면? 당연히 브랜드 메시지가 공간에 담긴다.
공간에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담기기에 공간은 언제나 미디어 요소를 가지고 있다. 공간은 공간 안에서 다시 다른 공간으로 나누어지면서 계속 변한다. 건축물이 커지고 높아질수록 공간 조합은 다양해진다. 공간 조합이 다양해진 만큼 그 공간이 만들 수 있는 조합도 늘어나고 그에 따른 메시지도 늘어난다.
아무리 크고 복잡한 건축 공간도 방, 계단과 같은 작은 단위로 분해할 수 있다. 방을 점으로, 문을 선으로 표현하면 공간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연결망이자 지도가 된다. 그 지도를 보면서 내력과 외력을 가늠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결망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까?’ 공유 오피스를 생각해보자. 겉모습은 공유 오피스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서로 섞여있다.
상점은 길을 향해 열려있는 단순한 공간일 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장과 상점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상점의 원모습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채소 가게와 명품 가게는 공간구조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좌판과 깔끔한 쇼윈도를 치운 후 두 상점을 바라보자. 하지만 우리가 채소 가게와 명품 가게를 구분하는 이유는 두 가게가 추구하는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과 상점은 길과의 근접성이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온라인처럼 빠르게 변할 수 없다. 장사는 언제나 길목이 중요하고, 길목이 좋은 길목에서 상점가가 생긴다. 이러한 연유로 상업건축에서 1층이 가장 비싸다. 1층이 부동산 수익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도 길과 만나는 면적이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는 '상업부동산에서 1층은 가장 수익원이다'라는 오랜 시간 통용되던 상업건축의 통념을 바꾸고 있다. SNS는 길목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더라도, 가게를 알릴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오히려 SNS는 많은 가게들이 '천편일률'적인 길목에서 벗어나 상점 그 자체가 ‘관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뷰 맛집'같은 해시태그는 이를 대표하는 말이다. 물론 '가로 골목'같이 새로운 공공공지 제도를 활용한 공간도 있다. 더현대 서울처럼 백화점 자체가 공간 안에 ‘현대백화점’만의 관점을 담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이 ‘온라인 커머스’에게 주도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머스가 오프라인을 눌러버리면서 ‘길=상점’이라는 오랜 기간 인류가 겪은 공식은 깨졌다. 동시에 ‘길=상점’에 근거한 오프라인 사이클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오히려 ‘길=상점’이 아니라 ‘길=연결’이라는 공식이 더 맞을지 모른다.
길을 통해 브랜드는 사람들과 연결된다. 메타버스는 온라인 쇼핑에서 ‘BUY’라는 기능을 떼어내 그 안에서 새롭게 즐기는 공간이다. 구찌만 해도 구찌 가옥같이 구찌가 생각하는 오프라인 공간을 지을 수 있다. 동시에 구찌는 로블록스에서도 구찌 상품을 따로 판매한다. 사실 리니지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일과 로블록스에서 구찌 제품을 사는 건 크게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봐야 하는 부분은 온라인이 오프라인이 경험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었다는 사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오프라인도 자신들을 새롭게 정의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게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오프라인이 몰락할 것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몰락은 끝이면서도 시작이었다. 몰락과 함께 암흑기가 도래했지만, 그 암흑기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문화가 꽃피웠다. 메타버스와 AR, XR 같은 기술은 오히려 ‘길=상점’ 공식을 깨부수면서 온라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오히려 '오프라인'이 새로운 문화가 꽃피우게 돕고 있다.
자 다시 길과 상점으로 돌아오자. 길은 상점이었다. 하지만 쇼핑 개념이 생기면서 ‘길이 상점’이라는 공식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상점이 물건을 사고파는 단순한 공간에서 소비를 ‘향유’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길, 상점, 공간]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비는 [오프라인-온라인-메타버스]로 이어지면서 '소비'라는 개념은 점차 미디어 요소로 확장되고 있다.
백화점은 그 변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백화점은 상점을 수직으로 확장했고 수직으로 올렸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해 상점을 입점시킨 공간이 백화점이다. 특히 자동차, 승강기, 에스컬레이터의 발전은 건물을 더 높게 올릴 수 있게 도왔다. 무엇보다 용적률을 올리는데 기여한 게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다.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손쉽게 사람들이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높은 용적률을 적용해 공간을 위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자동차, 승강기, 에스컬레이터는 사람들이 길을 넘어서 스스로 상점을 찾아가게 도왔다. 사람들은 차량과 대중교통을 사용해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닌다. 온라인 시대가 열리고 SNS가 미디어 화하면서 핫플레이스는 더욱 손쉽게 선별되었고, 수많은 서비스들이 공간들을 큐레이션 한다. 스마트폰은 쇼핑을 손 안에서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에 맞게 상업행위로 점차 바뀌고 있다.
앞서 계속해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는 여전히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온라인 덕분에 사람들의 쇼핑시간은 줄어들었다. 상품을 구경할 이유도 없어졌다. GAN, AR, XR 같은 기술발전은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과거 백화점이 생기면서 겪은 상업건축 변화와 그에 따른 변곡점이 지금 다시 찾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동대문에 가서 옷을 직접 고르고 흥정하면서 옷을 샀다. 하지만 지금은 [에이블리, 지그재그, 무신사] 면 충분하다. 한정판 신발은 솔드아웃과 크림을 이용하면 된다. 상반기 상장한 데이팅 앱인 범블은 뉴욕에 '범블브루'라는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범블만의 관점으로 공간을 만든다. 사람들 간 '연결'을 손쉽게 만든 '온라인' 앱이 자신들의 결을 오프라인으로 옮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최근 문을 연 무신사 스탠더드는 어떤가? 온라인 상점인 무신사가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진출해 온라인 공간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셈이다. 전혀 낯설지 않다.
물건을 파는 행위에 서서 점차 전문적으로 변하는 상점. 상품교환을 넘어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화하는 공간. 상점 얼굴이 점점 더 디자인이 강조되며 브랜드화되면서 상점 천국은 점차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미디어로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상점 건축은 각 상점마다 그들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건축을 담고 있다. 그 시작은 대형 판유리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건물을 밖에 보게 만들었다. 특히 판유리는 상점 유리에 이미지를 더함으로써 안과 밖을 미세하게 연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유리창. 특히 판유리는 상점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상점을 보게 만들었다.
판유리는 공간이 쉬는 시간. 공간이 움직있는 시간을 구분하게 만들었고, 건축가와 디자이너로 하여금 공간의 쉬는 시간과 움직이는 시간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사이를 세밀하게 디자인할 원동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판유리 덕에 광장과 길목에 잘 조성된 건물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오브제가 되었으며, 그 주변 공간 자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판유리와 철근 콘크리트는 외부 공간을 안으로 끌어 올 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가장 역동적으로 활용한 곳이 바로 마천루와 루프탑 같은 공간이다.
꼭대기층에 있는 방과 공간에서 도시를 한눈에 바라보는 일은 사람들에게 매우 역동적인 경험을 제시한다. 야경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매혹시킨다. 록펠러 타워에서 보는 뉴욕 야경은 그 자체로 뉴욕에 온 이유가 될 정도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록펠러센터에서 보는 뉴욕 야경은 뉴욕이 아닌, 뉴욕이 이루어낸 모든 역사를 보는 일 그 자체다.
흥미로운 건 록펠러센터에서 뉴욕 야경을 바로 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안전을 돕는 소재도 유리다. 무엇보다 유리는 사람들에게 공간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보게 만들었으며, 그 자체로 사람들은 공간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보고 느낀다. 폐쇄적이면서도 좁은 공간 안에서 유리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아우라’를 전한다. 공간이 미디어가 된다는 건 단순히 공간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가 아니다.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한 기술과 현대 정보기술이 만들어낸 기술적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