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쿠키를 재조명하는 시대가 아닐까?
늘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빵을 먹으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 아마도 이 기쁨 때문에 우리가 항상 맛있는 빵을 찾아다니는지 모른다. 아침이나 낮이나 밤까지도 말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음식은 그야말로 삶에서 단 몇 분만이라도 쉼을 주는 존재니까.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빵 중 하나는 쿠키다. 쿠키를 빵이라고 해야 할까? 과자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요즘 쿠키는 두툼하고 큼직하다. 르뱅 쿠키다. 뉴욕 르뱅 베이커리가 만들어서 유명해진 아메리칸 쿠키. 속은 촉촉하면서도 두툼하다. 두툼한 쿠키 가운데에 크림치즈, 잼, 마시멜로를 채운 르뱅 쿠키는 쿠키보다는 타르트와 케이크의 미묘한 경계선에 있다. 여기에 우유와 커피만 있다면? 한 끼 식사다.
르뱅 쿠키의 꾸덕함은 버터 바와 케이크 중간이다. 바삭함은 타르트 반죽과 결이 비슷하다. 이 같은 르뱅 쿠키의 매력은 단연코 우리를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이 같은 르뱅 쿠키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르뱅 쿠키만의 특징을 지키면서, 그 안에 자신만의 감각을 더해 변화를 준다.
쿠키라고 하면 응당 가볍게 먹는 과자로 생각하기 쉽다. 당이 떨어질 때 먹는 과자.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가면 쿠기를 대량으로 많이 판다. 어찌 보면 쿠키는 대량생산으로 불리는 과자를 대표할지도 모른다. 대량 생산된 쿠키를 먹으면서 즐길 여유가 있을까? 오히려 ‘가성비’라는 말에 다소 쿠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품위가 떨어져 버렸다.
부산의 터줏대감인 올더 어글리 쿠키는 쿠키가 얼마나 ‘풍미’가 가득한 빵인지 몸소 알려준다. 일단 그들은 ‘버터’에서 시작한다. 그냥 버터가 아닌 헤이즐넛 버터다. 헤이즐럿 버터는 헤이즐럿으로 만든 버터가 아니다. 버터를 태워 풍미를 살린 뵈르 누아제트. 이 뵈르 누아제트가 남기는 풍미가 헤이즐럿과 비슷해 헤이즐럿 버터라고 한다. 이러한 헤이즐럿 버터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움 과자로는 피낭시에가 있다.
헤이즐럿 버터는 버터를 태워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 반응에서 나온 좋은 향과 풍미를 반죽에 입히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헤이즐럿 버터를 사용하면 맛과 향은 더더욱 고소하다. 또한 올더 어글리 쿠키는 모든 부재료들을 직접 만든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오히려 대량생산 속에 잊힌 ‘손맛’의 가치에 집중한다. 이름은 올더 어글리 쿠키이지만, 그 과정과 맛은 올더 뷰티풀 쿠키다.
나는 말차 크림치즈, 황치즈 프레젤, 소금 카라벨 슈를 골랐다. 가방에 넣었음에도 달콤한 향은 가방에 가득했다. 걷는 내내 달콤한 향이 가방 안을 가득 채웠다. 쿠키는 생각보다 묵직하고 무겁다. 쿠키는 르뱅 쿠키답게 바삭하면서 부드럽다. 말차 쿠키는 씁쓸한 맛이 혀를 먼저 자극한다. 그다음에는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버터향이 입안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분명 쿠키를 먹었음에도, 동시에 타르트를 먹은듯하다.
매장은 생각보다 작다. 있을 건 다 있다. ‘꿀레’라는 올더 어글리 쿠키만의메뉴를 맛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꿀레는 금방 매진된다. 슈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른 소금 캐러멜 슈도 그날의 마지막 슈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탓인지, 매장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쿠키가 있을 것이다. 어떤 쿠키를 좋아하는가는 자유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각자 쿠키를 먹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우유, 커피, 차에 적셔 먹는 이들도 있을 테고,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더 달콤하게 먹는 이들도 있을 거다. 꾸덕한 르뱅 쿠키라면? 아인슈페너가 또 잘 어울리지 않는가? 쿠키 하나만으로도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
맛있는 빵에 대한 욕구를 단순히 ‘사치스럽다’는 말로 못 박아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빵’을 추구하는 정당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빵의 자유’를 위해 깃발을 내세우는 자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나는 기필코 부족하나마 그를 돕기 위해 함께 연단에서 빵의 중요성에 대해 목이 터져라 말할 것이다. 동시에 르뱅 쿠키를 한 손에 들고 당이 떨어질 때마다 한입 배워 물고 빵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