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단순히 제품도 아니고, 단순히 사람을 포장하는 도구도 아니다. 브랜드는 보이지 않게 개인철학과 생각에 스며들어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든다. 개개인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모든 브랜드가 꿈꾸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매일 아침 자신들의 제품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사람들과 그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걸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브랜드공간에 있는 상품들이 브랜드의 감도를 표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내가 브랜드 제품을 사고 나면 그때부터는 브랜드감도가 아니다. 나의 감도에 브랜드가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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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원피스에서 루피는 말한다.‘자네 내 동료가 되지 않겠는가?’이 말처럼 우리가 구입하는 모든 제품은 ‘자네!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브랜드는 나와 동료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브랜드공간은 사람들에게 '브랜드제품이 개개인의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전할 수 있는가?'를 전해야 한다. 브랜드철학을 넘어서 ‘당신은 어떻게 당신 자신으로 살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 이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입은 옷이 바로 ‘나’다. 내가 사용하는 요리도구가, 내가 먹는 게 내 감각이자 취향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어떤 요리도구를 사용하는가? 어떤 운동을 하는가?' 이것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옷, 요리, 운동 외에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사람의 감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옷이라도 어떻게 입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을 운동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룰루레몬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나이키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언더아머다. 나 같은 경우, 레깅스는 언더아머제품. 운동복은 PSG선수들이 사용하는 트레이닝복이다. F45같이 HIIT운동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취향과 감도는 옷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사진 찍는 방식,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식등 모든 스타일에서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간에서 상품이 고객의 집에서 ‘어떤 느낌’이 날지 전하는 일은 브랜드에게 매우 중요하다.
시보네케이스는 색과 상품진열을 통해 공간감을 만들 뿐만 아니라 집안에 놓으면 어떤 느낌이 날지를 철저히 고려해 배치한다. 액자 같은 제품들은 집에 액자를 놓으면 어떨지도 고려해서 벽에 달았고, 그릇들도 너무 높지 않게, 식탁에 놓으면 어떤 느낌일지를 고려해 배치했다. 시보네케이스는 식탁에 그릇을 놓았을 때 ‘그릇이 어떤 느낌일까?’ 이 자체에만 더 집중한다.
시보네케이스의 이러한 배치는 고객들에게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집안에 놓았을 때 어떤 느낌이 날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객들은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고,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통해 자신의 집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시보네케이스의 상품배치는 고객들에게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객들은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보고 시보네케이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고, 시보네케이스의 제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트웰브북스와 르메르는 고객에게 영감을 주고 실질적인 제안을 하는 공간이다. 일단 트웰브북스는 매장 자체를 ‘서재’로 만들었다. 책장들도 특별하게 연출하지 않고 우리가 책장에 책을 꽂아놓는 그 방식 그 자체로 배치했다. 바닥에 책을 쌓아놓은 모습도, 에코백을 걸어놓는 모양새도 일상 그 자체다. 트웰브북스는 마치 ‘누군가의 방’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나에게 영감을 주는 되는 공간과 나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제안’을 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르메르도 마찬가지다. 르메르는 옷을 예술품처럼 포장하기보다는 일상복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창의성에 집중한다. 이러한 르메르의 방향은 상품진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옷 자체를 오브제로 접근하지 않고, 옷 자체를 옷걸이에 걸어놓았을 때 어떤 느낌이 날지, 집안에 르메르 옷이 있으면 어떤 느낌이 날지 그 자체에 집중한다.
무인양품은 ‘제품을 집에 두면 어떤 느낌일까?’를 염두에 두고 매장 상품진열을 하고 있다. 무인양품의 브랜드 철학은 ‘이것으로 충분한 삶’이기 때문이다. ‘충분함’의 기준은 모호하고,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무인양품의 입장에서는 ‘충분함’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무인양품의 상품진열은 ‘무인양품’ 다움을 전하는 도구다.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가면 곧장 상품진열이 쏟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진을 보자. 무인양품은 침대 쇼룸에서는 침대를 그대로 놓았다. 사람들이 '집안에 침대를 놓았을 경우'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러한 상품진열을 다른 브랜드들도 해야 하지만, 무인양품에게 이러한 상품진열은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다. 선택이 아니다.
무인양품은 ‘충분함’을 추구한다. ‘충분함’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정신적인 평안과 만족이다. 무인양품은 제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충분함’을 느끼게 하고자 한다. 무인양품의 상품진열은 이러한 ‘충분함’을 전달하는 도구다.
투데이스 스페셜은 시보네를 운영하는 웰컴그룹이 가진 브랜드 중 하나다. 신기하게도, 투데이스 스페셜과 시보네는 그 성격이 완전히 반대다. 감각적인 상품진열을 보여주는 시보네와는 다르게, 투데이스 스페셜은 감각적이기보다는 물건이 차고 넘치는 왁자지껄한 상점이다.
얼핏 보면 투데이스 스페셜을 물건을 빽빽하게 채워놓았지만 사실은 아니다. 투데이스 스페셜의 상품진열을 잘 보면 ‘우리가 물건을 집에 놓는 방식’ 그 자체를 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을 보자. 컵을 보면 컵들은 여러 개 쌓아놓았다. 그 옆에 스푼, 스무디가 있다. 심지어 스푼은 유리잔 안에 고스란히 넣었다. 그릇도 마찬가지다. 멋지게 진열하지 않았다. 그릇들도 고스란히 쌓아놓았다. 수건도 마찬가지다. 집에 놓는 것처럼 그릇들도 사뿐히 쌓아놓았다. ‘멋짐’보다는 ‘일상’ 그 자체를 상품진열로 가져오는데 집중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발은 신발장에 놓은 모습과 비슷하게 걸어놓았다. 주걱은 주방에 놓는 모습과 비슷하게 진열했다. 삶은 달걀을 떠먹는 그릇 옆에는 잼도 보인다. 투데이스 스페셜도 ‘라이프스타일 제안’에 맞게 상품을 진열했지만, 기본적으로 ‘집안에 상품을 놓았을 때 느낌’을 전제로 상품을 배치한다. 상품진열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투데이스 스페셜 내 상품진열은 산만하고 빽빽해도 ‘규칙’이 있다.
투데이스 스페셜의 상품진열은 고객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투데이스 스페셜에서 다양한 상품을 보고, 자신의 집을 어떻게 꾸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투데이스 스페셜의 이러한 상품진열은 고객들에게 편안함과 친밀감을 제공한다. 고객들은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투데이스 스페셜을 둘러볼 수 있다.
츠타야 셰어라운지는 공간을 판매하는 곳이다. 하지만 셰어라운지야말로 집을 생각해야 하는 곳이다. 집과 비슷한 편안함과 더불어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츠타야는 이런 부분을 반영해 셰어라운지 안의 물건들을 사람들이 최대한 평소에 사용하는 모습과 편안함을 연출했다. 셰어라운지 자체가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비용을 지불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공간을 편안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에 츠타야에게 셰어라운지의 상품 배치는 셰어라운지라는 츠타야의 브랜드 경험을 전하는 매우 중요한 디테일이다.
시부야 셰어라운지 같은 경우, 기기에 사용하는 각종 선과 간식 등을 집안에 보관하는 식으로 배치했다. 이런 부분은 ‘라운지이니까 그렇지 않은가?’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이칸야마와 미칸 시모키타자와점은 음식을 정갈하게 배치해 놓았다. 물론 시부야점도 정갈하게 배치해 놓은 건 맞다. 그렇지만 두 지점과 시부야점을 비교해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히려 시부야점이 ‘라운지’보다 ‘집’에 더 가깝다.
츠타야 셰어라운지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집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은 셰어라운지 안의 물건들을 사람들이 최대한 평소에 사용하는 모습과 편안함을 연출한다. 이로써 츠타야 셰어라운지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브랜드 경험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