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한끗 다른 상품진열 디테일
세상에는 수십 가지의 색깔이 있다. 우리가 흰색 면 티셔츠라고 부르는 제품도 수십 가지의 면 티셔츠로 나열할 수 있다. 컬러도 형광 백색, 화이트 밀크, 밝은 아이보리까지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이걸 모두 하얀색이라고 통틀어 말한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하얀색이 있다. 브랜드상품도 상품진열만으로 브랜드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무인양품만 보자. 무인양품 같은 경우 진열방식만으로도 브랜드 정체성과 세계관을 알 수 있다. 철저히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추어 제품들을 매장에 진열한다.
[도쿄의 한 끗 다른 상품진열 디테일 시리즈는 다른 글보다 사진이 최소 2배 혹은 3배이상 많습니다.]
브랜드 제품 패키징과 진열은 고객과 만나서 만나기 이전에 고객의 ‘감각’을 일깨운다. 그 일깨움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순간 비로소 브랜드의 실루엣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들어간다. 모든 브랜드들이 브랜딩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품진열을 단순히 ‘물건을 놓는다’라는 의미로만 봐서는 안된다. 물건이 아닌, 브랜드만의 감각을 표현하는 일도 봐야 한다. 내가 도쿄에서 본 브랜드들은 늘 '진열'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품은 브랜드가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가교다. 누군가는 '브랜드가 사람과 어떻게 교감을 나눌 수 있나?'라고 이야기한다. 따져보면 브랜드 자체도 사람이 만들었다. 브랜드가 사람과 다르게 ‘기능’에 집중하는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브랜드는 바탕과 무늬가 강한 대비감의 패턴으로 상품을 진열하며, 이를 통해 브랜드에게 어울리는 느낌을 사람에게 전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반응'이 쌓여 브랜드 '느낌'을 만든다.
브랜드만의 패턴. 브랜드정체성에 알맞은 패턴이 브랜드색깔을 만든다. 브랜드만의 고유한 진열이 통일성을 만든다. 그 통일성의 무늬가 되면 독자적인 문양과 패턴이 만들어진다. 어느 순간 개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상품진열이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고유한 느낌을 만든다. 그리고 진열이 일관성 있게 유지 반복되면서 사람들이 브랜드를 떠올리는 패턴이 형성된다. 그렇기에 브랜드만의 실루엣가 중요하다.
실루엣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실루엣이 없는 브랜드는 그저 하나의 ‘기능성제품’에 불과하다. 가령 갈색병을 사용을 많은 브랜드가 있음에도, 갈색병하면 이솝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파슬리시드의 향기 때문이다. 오히려 갈색병에 담긴 다른 화장품을 보면 ‘이 제품은 어떤 향일까?’라는 생각과 이솝이 떠오른다.
와인셀렉샵 이노테카는 와인병 크기를 가게 입구에 전면으로 앞세워 와인을 취급한다는 브랜드의 통일성을 돋보이게 한다. 'Wine'이라는 문자보다 다양한 크기의 와인병을 입구에 놓은 이노테카는 단연코 돋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노테카라는 이노테카의 입구의 와인병과 그 옆의 와인병의 진열만으로도 '어? 이노테카인가?'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진열을 통한 브랜드정체성과 통일성은 단연코 무인양품이 최고다. 무인양품은 ‘이것으로 충분한 삶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철학을 물건으로 보여준다. 현대일본인들의 소비미학을 보여주는 갤러리라고 할 정도로 무인양품이 보여주는 상품진열은 '통일성'이 강하다.
무인양품은 여러 번 다루었음에도 계속해서 다루는 이유도 그만큼 무인양품이 브랜드 정체성에 맞게 상품진열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인양품은 상품진열을 통해 브랜드미학을 풍성하게 전한다는 사실. 이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미야시타파크의 쇼핑몰 레이어드 미야시타파크에 위치한 편집샵 KITH. KITH는 신발 배치와 화이트톤 매장을 통해 자신들의 감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년에 KITH매장이 성수동에서도 생긴다고 하니, KITH의 상품진열을 기대해 봐도 좋을듯하다.
아코메야의 진열은 투데이스스페셜처럼 정신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쌀이 중심인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다. 아코메야 같이 ‘쌀’이라는 주제가 확실한 경우, 진열을 빽빽하게 하더라도 브랜드 정체성에 혼선을 주지 않는다. 너저분해 보여도 통일성이 더 두드러진다. 아코메야는 신주쿠점을 기준으로 따로 다룰예정이다.
츠타야 롯폰기점은 물건들을 통일성 있게 배치해 매장의 심미성을 더했다. 이 같은 방식은 무인양품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무인양품은 제품진열의 통일성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지만, 롯폰기를 ‘멋’을 위해 통일성을 사용한다.
같은 ‘통일성 있는 진열’이라도 방향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인양품과 츠타야가 다루는 제품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무인양품은 ‘이것으로 충분한 삶’이라는 모호함을 구체적으로 전하는데 집중하지만, 츠타야는 고객들이 서점에서 머무는 ‘시간’에 초점을 둔다. 이런 부분을 염두한다면? 통일성 있는 배치도 브랜드의 성격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기차시장에서 렉서스는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간디자인과 상품진열에서의 렉서스는 여전히 훌륭하다. 렉서스 미트 히비야에서 렉서스는 렉서스사용자들에게 맞는 상품들. 그에 맞는 상품즐을 통일성 있게 배치해 ‘렉서스’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감각을 전하고자 한다. 차분하면서도 정돈된 상품진열은 렉서스 사용자들의 취향이나 성향을 고스란히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인 헤이는 자사의 가구를 종류별로 정돈해서 배치했다. 쇼룸에서 보여줄 부분은 쇼룸이고, 제품은 제품끼리 진열을 통해 공간을 정돈했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덴마크 디자인에 맞는 접근이다.
헤이가 보여주는 ‘진열’은 이케아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기에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쇼룸’ 진열과 ‘상품진열’이라는 ‘진열’ 자체를 분리해서 전하는 면에서 헤이의 상품진열은 브랜드의 통일성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토라야는 500년이 넘은 일본 화과자 브랜드다. 토라야는 이러한 자식들의 역사를 아주 잘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만들어온 과자를 정사각형에 프린트해 벽에 진열했다. 어두운 조명아래에서는 토라야가 걸어온 발걸음을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종이가 모여 '500년'이라는 토라야의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토라야가 500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500년 동안 지켜온 자신들의 업적을 기억하는 것을 하나하나의 오브제로 만들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사진을 보자. 사진 하나하나에는 화과자 이름이 적혀있다. 과자 하나하나에 적힌 글씨. 그 안에 이름을 적었다. 토라야는 500년이라는 시간은 자신들이 만든 과자종이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