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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Apr 09. 2024

시부야파르코,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 기반을 만든다.

도쿄에 가면 언제나 호스텔에 간다. 다양한 여행자들로 부터 도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한 학생이 물었다. "슈프림과 스투시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는 역시 시부야에서 찾아봐야겠죠?"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슈프림 매장은 시부야에 있고, 시부야와 가까운 다이칸야마에도 있어. 스투시도 시부야에 자리해 있으니 꼭 가보는 게 좋을 거야. 시부야파르코를 한번 가봐. 며칠 전에 시부야파르코에 다녀왔는데 좋더라고. 근처에 베이프도 있어. PSG매장도 있던데? 볼 거 진짜 많더라고. 아마 아침 일찍 가면 더 다양한 제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젊은이들의 스타일을 말해주는 건 언제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면? 역시 슈프림이다.  특히, 일본은 슈프림과 빠질 수 없는 나라다. 일단 슈프림 매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슈프림매장이 유독 많은 이유도 재밌다. 일본 슈프림매장은 슈프림이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다. 뉴욕에 여행 간 일본인들이 슈프림을 접하면서 일본에 슈프림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곧 일본에는 슈프림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슈프림에 매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생긴 게 일본의 슈프림 매장들이다. 그 외에도 도쿄에는 베이프, 네이버후드와 같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일본스트리트 브랜드들도 있다. 영국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인 팔라스도 시부야에 자리하고 있다. 스투시도 도쿄에 여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걸로 스트리트 웨어 중에서도 빈티지 의류를 찾는다면? 시모키타자와와 고엔지도 좋은 선택지다.

도쿄 서부의 교통요지, 젋음의거리, 비트밸리, 서브컬처중심지. 시부야를 수식하는 단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새로운 걸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시부야가 한결같이 사랑받는 이유는 시부야는 언제나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도쿄의 옛 이름인 에도. 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근교대제를 실시해 일본 전역의 번을 다스리던 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에도에 머물게 했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머물 지역이 필요했고, 그들이 선택한 지역은 시부야였다. 자연스럽게 시부야는 교통요지가 되었고, 다양한 문화가 오고 가면서 늘 새로운 문물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흐름이 현대까지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시부야는 변화와 도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교통 요지였던 시부야. 지금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도큐 토요코 선 지하화와 긴자 선 시부야역의 리뉴얼은 교통 체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시부야히카리에, 시부야스트림, 시부야스크램블스퀘어, 마크시티 같은 빌딩들은 지하화 된 지하철역을 교통허브로 연결시키면서 시부야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상과 지하로 나누어서 혼란함을 최소화시켰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인 라인과 구글 같은 대형 IT 기업은 시부야히카리에와 시부야스트림에 각각 입주했다. 특히 외국기업들이 대거 입주하던 지역으로 명성이 자자한 롯폰기지역에 일본 본사를 두던 구글이 시부야스트림으로 이동하면서 시부야의 위상은 더욱 올라갔다. 

주차장이 딸린 낡은 공원이었던 미야시타파크는 옥상정원, 쇼핑몰, 호텔을 가진 복합시설로 바뀌었다. 도쿄에서 가장 핫한 전망대인 시부야스카이도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에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시부야를  "놀이의 거리"와 "일하는 거리"가 공존하는 독특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시부야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다양한 가치와 문화의 융합을 촉진시켰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시부야는 많은 사람들을 흡수하면서 이전보다 더 활기찬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시부야의 색깔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시부야의 토대를 만든 곳은 어디일까?  바로 1973년부터 시부야를 이끌어온 시부야 파르코다. 1973년 문을 연 시부야파르코는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선, 문화 창조와 다양한 콘텐츠 사업으로 시부야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2019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파르코는 "노에이지", "젠더리스", "코즈모폴리턴"의 콘셉트로 다양성을 강조하며 성별과 세대를 넘어선 '문화'를 전하는 공간으로 더 나아가려고 한다. 2023년을 기점으로 50주년을 맞이한 파르코는 여전히 시부야에서 다양한 문화를 촉진하며 시부야안에서 국내외 Z세대들이 모이는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부야에서 파르코가 영향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언제나 시대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문화의 경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예술’을 ‘라이프스타일’메시지로 만든 파르코.

2023년 11월 17일 시부야 파르코는 시부야 파르코 내 ‘파르코 뮤지엄 도쿄’에서 자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1969-2023 Parco 광고전'을 개최했다. 지난 50년 동안 선보인 광고 포스터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사실상 시부야 파르코의 브랜딩회고전이었다.  이 전시회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파르코는 자신들의 공간을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로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시부야에서 문화를 전하는 미디어였다’

파르코 탄생의 아버지이자, 종합 디렉터 마스다 쓰지는 '파르코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전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상업 시설을 탈일상적인 공간이자, 그 안의 매력적인 상품과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감각을 자극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스다는 이러한 생각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파르코 자체가 탈일상적인 장소이자 ‘경험’을 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상품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험이 아닌, 공간 그 자체가 ‘경험’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험’은 파르코가 지향하는 방향이자 전략이었다. 파르코가 판매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이었고, 그들은 여기에 ‘문화와 예술’를 더했다. 그들은 '예술'을 브랜딩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통해 시부야 파르코를 경험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그 시작은 이미지 광고였다.

파르코를 지금의 명성을 가진 파르코로  만든 것은 전략화한 이미지광고였다. 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코시부야가 문을 연 1973년에는 아직 인터넷이나 SNS 같은 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광고는 ’ 상품’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상품을 파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파르코의 광고는 달랐다. 상품을 전하지 않았다. ‘광고는 상품을 알리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르코는 광고와 상품 간의 연결을 끊고 광고 안에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일본 아트 디렉터인 이시오카 에이코가 선보인 파르코’의 여자의 시대'라는 광고는 파급력이 매우 컸다. 이 시기는 아직 여성이 비약하기 전이었다.


여성에 대한 메시지는 이세이 미야케의 1976년 세이부 극장에서 선보인 '이세이 미야케와 12명의 어두운 여자들' 패션쇼에서도 나타났다. 이 패션쇼는 여성의 동적인 매력과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표현했다. 아트 디렉팅을 담당한 이시오카 에이코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름 없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메시지는 여성을 단순히 고정된 이미지로 보는 편견을 벗어나 여성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물건이 아닌, 메시지. 즉, 하나의 문화를 전하고자 한 파르코의 전략은 광고에만 국한된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파르코는 광고같이 메시지에만 신경 섰을까? 아니다. 그들은 공간과 메시지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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