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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Mar 03. 2023

책상 앞에 붙여둔 엽서의 의미

I AM AN IMBECILE(나는 멍청이입니다)

얼굴 없는 신원 미상의 예술가 뱅크시


위에 올린 표지의 작품을 제작한 뱅크시는 미술가, 그라피티 아티스트,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신원 미상의 얼굴 없는 예술가이다. 그는 스스로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그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돌에 그림을 그린 후에 박물관 관리자들 몰래 관란 구역 안에 전시해 놓고 가는 일을 벌이기도 했는데(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 현대 미술관) 사람들은 가짜 전시품인 줄 모르고 뱅크시의 돌 작품을 둘러싸고 감상하고 사진을 찍어갔다. 이는 예술에 대한 고찰 없이 겉치레로 소비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행위예술이었다. '뱅크시의 도둑 전시 작품'이라고 찾아보면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놓아둔 미사일 딱정벌레는 무려 23일 동안 안 들켰다고 한다.  


그는 예술계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가장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지역에 벽화를 남기고 사라져서 화제를 남겼다. 한편, 몇몇의 주민들이 벽화를 뜯어 가려고 벽의 외장재와 석고보드를 도려내었으나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주로 전쟁을 비판하고 빈부격차, 자본주의, 만능 물질주의 세태에 대해 풍자를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허를 찌르는 재미를 알게 해 준다. 전쟁 지역에 남겨진, 전쟁에 대한 물음을 담은 벽화와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자기 지갑을 채우기 위해 훔쳐 가려던 전쟁 지역의 사람들, 또 늦은 밤, 침대에서 뒤척이며 핸드폰으로 소식을 읽는 나의 모습까지, 예술은 그 공간과 그 한순간에만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dismaland.co.uk, Barry Cawston의 'Are We There Yet? Pictures of Dismaland'


Dismaland(2015.08.21~2015.09.27)


영국 브리스톨의 해변 도시 웨스턴에 일시적으로 개장했던 일종의 테마 공원이다. 디즈니랜드(Disney)라는 명칭과 음울하다는 의미의 'dismal'을 합쳐서 이름을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놀이공원이라 홍보했지만, 오픈하는 5주간 하루 4,000명의 관람객이 이용했다. 입구에서는 종이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종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은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안내를 받게 된다.(디즈니랜드의 변호사 또한 출입 금지)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50여 명의 아티스트가 테마파크 조성에 참여했다.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신데렐라 성은 허름한 폐허의 모습이었고, 이곳의 공주는 마차 사고를 당해 마차에 늘어져 전시되어 있다. 파파라치들이 공주의 주변을 에워싸고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는데 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 순간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장면만 놓고 보면 기괴하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의 직원들은 웃거나 친절해서는 안된다고 교육을 받았으며, 늘 우울한 표정으로 '나는 멍청이입니다'라고 적힌 풍선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이 풍선은 오직 14살 아래의 아이들에게만 제공되었다고 한다. 


현실을 벗어나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디즈니랜드와 달리 이곳 Bemusement Park(당황스러운 공원)에서는 곳곳에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하는 문장이 적혀있다. '너의 월급을 생각해라.'라거나 '젠장, 나는 여기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는 문장이 곳곳에 걸려있다.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놀이공원, 그렇지만 연이은 입장권 매진으로 약 330배가 뛰어서 천 파운드(현재 한화 가치 140만 원)의 암표까지 등장했다. 


 

The Art of Banksy 더 아트 오브 뱅크시


2021년 8월 서울에서 <더 아트 오브 뱅크시>라는 이름을 건 전시회가 열렸다. 나 또한 이 전시회를 통해 뱅크시라는 예술가를 처음으로 마주했다.(이전에는 이름만 알고 있던 수준이었는데, 별로 관심은 없었다. 경매장에서 그림을 팔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림을 갈아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길래 '저런 행동도 가치가 매겨지다니 신기하다'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뱅크시의 이름을 걸고 홍보를 하고 거창하게 전시회를 연 이 전시회는 가짜 전시회이다. 익명성이 최대 아이덴티티인 뱅크시에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을뿐더러 그의 거리 예술 활동은 법적으로는 위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표권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벽을 실제로 뜯어와서 전시를 하지 않는 이상은 모든 뱅크시의 전시회는 페이크 전시가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뱅크시 본인 또한 해당 전시회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페이크 전시회라며 그 목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위법행위로 그려졌고 상표권을 갖고 있지 않은 작품의 장면과 의미만을 뽑아서 전시회를 열고 영리적인 이득을 취한 <더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회를 통해 뱅크시의 작품을 접한 나는 과연 뱅크시의 전시회와 그 작품의 의미를 얘기할 자격이 있을까? (복잡하다 복잡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작품이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로 전시회가 열리고, 사람들은 돈을 내고 입장하여 저마다의 해석을 안고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회장을 둘러본다. 그리고 마지막 기념품 장소에는 여지없이 그의 작품이 그려진 여러 굿즈를 살 수 있고(멍청이 풍선 포함), 한쪽에는 뱅크시의 스타일처럼 직접 티셔츠를 꾸밀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제공되는데 물론 유료 상품이다. 이번 글의 첫 장에서도 말했지만, 작품은 해당 작품이 만들어지는 그 한순간에만 의미가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언제나 재미있다. 


Dismaland Imbecile balloon, 2015, Banksy


전시회장에 걸려있는 이 작품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작품 안에 쓰인 문장에 흥미가 돋아 한참 동안 설명을 읽었다. 신선한 기분이 스쳤고, 거기에 멍청이라는 단어를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린 학생일 때나 써먹었던 표현이었다. "야, 이 멍청이야!"라는 말로 시작해서 어느덧 한 단어, 한 단어가 덧붙으며 더 길게 말꼬리를 잡는 쪽이 이겼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로 "그러면 너는 멍청이바보똥개말미잘해삼이다!"라는 말로 끝났던 것 같다. 굉장히 유치한 기억이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 작품의 엽서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은 훑어만 보고 기념품점을 나와버리지만,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지갑을 열었다. (뱅크시의 전시회를 보고 자본주의와 권력주의에 대한 뱅크시의 예술 세계를 보며 감탄을 하고 나오는 길에 지갑을 열고 있자니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엽서만큼은 갖고 싶었다.)


우리에겐 멍청해도 되는 기간이 있다(글의 흐름을 위해 '멍청하다'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는데, 약간의 이해를 부탁합니다). 어린이들, 대학교 1학년들, 갓 입사한 신입 직원들,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더 관대하게 대하기 마련이다. 뱅크시는 그런 의미에서 14살 아래의 아이들에게만 이 멍청이 풍선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Dismaland 놀이공원에 표현된 현실에 대해 나는 아직 몰라요. 나는 그냥 가족들이랑 놀러 나와서 즐거워요!'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된 나도 멍청함을 허락받고 싶다


세상을 빨리, 남들과 맞춰서 살아가려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인지 인간의 본성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SNS 생활이 만연해지며 내 세상은 좁아졌었다. 월에 천만 원을 번다는 공식은 왜 이리 많은지, 세상을 똑똑하게 사는 사람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저것은 남의 삶이라 인정하며 스크롤을 넘겼고, SNS를 볼 때 끊임없이 자기 삶과 비교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적절히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쳐낼 것을 쳐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을까? 이상하게도 '멍청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책상 앞에 이 엽서를 붙였다. 


이제껏 해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눈길이 가더라'라는 행동에는 주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책상 앞에 붙여둔 풍선 엽서는 나에게 하나의 브레이크 장치가 되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하지 말아라, 너의 생각을 과신하지 말아라, 빨리 결과를 보려고 허투루 하지 말고 재차 고심해서 천천히 제대로 나아가라. 


온 세상이 나에게 달려가라 말하는 것 같을 때, 나는 나에게 멍청이라고 한다. 


'달리려고 하지 말아라 멍청아.'


멍청이는 모를 수 있고, 어설플 수 있고, 느린 게 당연하니까 천천히 하나씩 단단하게 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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