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도가 한계치를 넘어갑니다.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나의 에어비앤비 호스트, 앤은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앤 아줌마가 거실의 커튼을 걷어내면 사티바가 와서 창밖을 슬쩍 구경하고 부엌으로 향한다. “먀~옹!” 눈과 입이 웃음을 짓는 듯 애교 섞인 표정으로 앤의 다리에 몸을 비빈다. 밥 달라는 신호이다. 아침의 분위기를 즐기고 사티바를 밥으로 달래준 앤은 이제 뉴스를 틀어 두고 재봉틀을 만진다. 나는 이때 캐나다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지만, 아직 시차적응이 마치질 않아, 기상시간이 자동으로 아침 6시였다. 아침에 일어나 사티바의 애교를 보며 커피 한 잔을 들고 뉴스를 보는 것이 마치 티비쇼에 들어와 있는 듯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여행과 삶, 그 어느 가운데에 서 있던 상태였다.
나는 아직 1년의 생활에 대한 계획이 없었어서 주로 영어공부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살아야 효율적으로 이 1년을 사용할 수 있을지 계획을 짜는 것이 최고 과제였다. 가끔은 앤이 나에게 허락을 받고 락을 틀어두었고, 덕분에 활기차게(?) 공부하곤 했다. 앤은 마치 아침에는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동네 이웃과 크리켓을 치며 시간을 보낼 이미지인데, 현실에서는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해결하며, 뒷마당에는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고, 기분이 좋으면 락을 틀어두고 거실에서 헤드 뱅잉을 하며 다니곤 했다. 마치 티비쇼 맘(Mom,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음)의 보니(Bonnie)와 같은 호탕한 인물이다. 정이 넘치는 호스트 덕분에 이곳 에어비앤비에 숙박하는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고, 내 친구들에게는 (앤 몰래) ‘캐나다맘’으로 통하고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아들이 있어서인지, 나의 어리숙하고 계획 없는 도전을 늘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었다. 만약 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한 달 정도의 캐나다 삶을 즐기고 여행 잘하고 왔다는 겉치레를 챙겨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물 좋아하니? 거의 매주 주말마다 근처 강으로 패들 보딩을 하러 가는데, 혹시 일정이 없으면 같이 갈래?"
하루는 아침으로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있는데 앤이 물어왔다. 당연히 간다고 즉답했다. 뭐가 어떻든 실제 현지인의 주말 취미를 참여할 수 있다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년도 여름부터 시작했던 취미인 프리다이빙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패들보딩은 안 해봤지만, 워낙 물을 좋아해서 분명히 내 취향에 맞을 것 같다고 대답에 덧붙였다. 사실은 프리다이빙은 아예 물속을 들어가서 무호흡으로 활동을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수면에서 노만 젓는 패들 보딩이 무슨 재미일까 의심이 먼저 들었다.
약속 날, 우리는 20분 남짓을 차로 이동해 샤론크릭으로 갔다. 앤은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특히 주위의 모든 풍경 하나하나에 반응이 좋았다. 여길 보라고, 저길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하며 들뜬 어린아이 같았다. 강에 가는 길목의 오밀조밀 모여 자란 나무를 보며, 도착해서는 탁 트인 강가를 보며, 'Wonderful, Overwhelming' 등의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나를 데리고 나온 앤을 무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재잘재잘 떠들었다. ‘이런 날 나와서 너무 좋다, 단풍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강이 정말 잔잔해서 이쁘다’라며 말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늘은 푸르고, 단풍물이 들어가는 도로의 길목은 예뻤으니까, 한편으로는 앤의 풍부한 감정 표현에 감탄했다.
패들 보딩을 하려면 보드에 펌프질을 해서 빵빵하게 바람을 채워 넣어 줘야 한다. 15 바 이상의 압력을 만들어 줘야 안전한데, 이 과정이 꽤 힘에 부친다. 그래도 마음 맞는 사람과 떠들면서 하다 보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펌프질을 하며 몸에 열기가 올라오는 순간 10월의 바람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었다. 내 키보다도 큰 보드를 옆에 끼고 강으로 가서 물에 눕히면 이제 그대로 노를 젓고 나가면 된다. 혹시나 핸드폰이나 짐이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가방 속에 잘 넣어서 보드 앞의 고무줄에 잘 끼워 둬야 한다.
강가에서 만나기로 했던 앤의 친구 트리시는 도착하고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우리 클럽은 패들보드를 처음 타는 사람은 물에 빠뜨리는 전통이 있는데 오늘은 날이 쌀쌀하니 봐주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나는 웃으며 물에 안 빠뜨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직 원래 목적인 보드에는 올라서지도 않았지만, 펌프질을 하느라 움직이고 계속 웃어 대느라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물에 떠 있는 낙엽 한 장, 나무에 매달려 있는 죽은 벌집, 젓는 노에 갈라지는 물살까지 감탄하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나름 즐겼지만, 물속에서만 놀던 사람으로선 약간 심심한 감이 있었다. 그저 '캐나다 사람들은 주말에 차 끌고 느긋하게 20분이면 이런 곳에 올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잘 웃고 행복한 걸까? 그들의 순수한 반응에 나도 같이 동참하기로 했다. 영화 속에 들어온 주인공처럼 모든 게 새롭다는 듯이 환경을 느껴보기로 했다. 단풍이 이제 막 물들어가려는 게 아름답다고, 잔잔한 강가를 비추는 햇살이 이쁘다고 했다. 두 손으로 네모를 만들어 강의 한 폭을 담으며 이 장면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의 첫 장면으로 나올 것만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매주 샤론크릭에 갈 때마다 나무에는 단풍물이 더해졌다. 흐리던 하늘은 새파래지고 바람이 잔잔해져서 물 위에 장판이 깔린 듯했다. 갈 때마다 어메이징, 뷰티풀, 원더풀, 형용사라는 형용사는 다 사용했는데, 점점 감정이 간질거렸다. 펌프질은 이제 익숙해져서 보드 하나 바람 채우는 것도 금방이었다. 보드에 올라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좋았다. 살짝 그늘이 져도 눈이 부시지 않아 좋다. 바람이 불어 물살이 있으면 노를 젓느라 재미가 있고, 장판같이 잔잔하면 그것대로 평화롭다. ‘그냥 그래서 모든 것이 좋다’. 온전히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자연의 위대함이라 생각한다. 평가도, 분석도 필요 없이 본 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하나씩 다시 배웠다.
그렇게 목소리로만 전달하던 "Wow, it's fantastic."이라는 한 문장에 감정이 실리기까지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단풍이 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역시 캐나다야’, ‘단풍국은 다르네’, 내가 사진을 찍어 보내줬더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캐나다의 풍경이 역시 대단하다며 감탄을 했다.
“내가 지금 이 풍경 속에 있어서 그런가? 한국이랑 똑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아니지, 확실히 달라. 일단 한국에서 저런 풍경 보려면 최소 한 시간은 나가야 해. 일단 오늘도 개바빴어서 하늘 쳐다보기도 힘들다.”
겨우 일주일 있었다고 잊었나 보다. 나는 하늘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응급실 야간 근무를 끝내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집을 향했고, 어느 날은 달이 뜨는 것을 보며 길을 걸었다. 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면 그것조차 잊는다. 그래서 한 번은 핸드폰 어플 중에 습관 형성하는 어플을 골라서 ‘하루 한 번 하늘 보기’ 습관 만들기를 진행했다. 하루 한 번 꼭 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인증을 해야 인정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정말 바쁘던 날의 퇴근길에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은 하늘이 이뻐 보인다는 감상이 들 때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에너지가 바닥이 난 날에는 무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갔는지 퇴근하고서 집까지 온 뚜렷한 기억이 없다. 차라리 게임처럼 상태창이 존재해서 나에게 울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피로도가 한계치를 넘어갑니다.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행률 3/7)]
[피로도가 회복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가 과정과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몬스터를 몇 마리를 잡으면 경험치가 어떻게 쌓이기 때문에 다음 레벨로 갈 수가 있든지, 어떤 물건을 모으면 능력치가 몇 퍼센트나 좋아진다 하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주어진 미션을 달성하다 보면 텅텅 비어있던 경험치 막대가 반을 넘기고, 몬스터를 잡다가 살짝 피곤할 즈음에 경험치를 확인하면 어느 순간 채워야 할 것이 손톱만큼만 남아있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 피곤하던 것을 견뎌내고 '100마리만 더 잡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치가 만점을 넘기는 순간 화려한 효과가 펼쳐지면서 업그레이드하는 캐릭터에 성취감을 느낀다.
현실에도 게임과 같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결과물이 있다. 월급 명세서, 적금 통장, 이쁘게 찍힌 사진, 바디 프로필, 셀 수 없게 다양하다. 눈앞에 들이밀어지지 않는 목표는 상대적으로 목적을 유지하기 더 어렵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엉뚱한 곳에 과도하게 쓰기도 하고, ‘몬스터 100마리’를 넘기지 못하고 ‘난 안될 거야’라며 감정 자학을 하기도 한다.
단풍물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게 된 것에는 단순히 단풍물이 진해졌다는 이유만 있진 않을 것이다. 그저 ’단풍나무 군집‘으로만 보이던 풍경이 갑자기 다채롭게 눈에 담긴다는 것은 내 안에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 봐도 될까?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숨을 크게 내 쉬면서 어깨에 힘을 탁 풀어내면, 주변이 좀 더 다채로워 보이기 시작한다. 통장의 숫자는 변함이 없고 거울 속의 뱃살도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내 시야는 한층 더 맑아진다. 하늘이 더 쨍해 보이고, 나무는 푸르러 보인다. 하다못해 방 안의 벽지 색이라도 새롭게 인식이 되는 게, 이제야 ‘내 방 벽지 색이 옅은 주황색이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인생에는 게임처럼 상태창이 뜨지는 않지만, 특유의 신호는 나타난다. 살다 보면 나 말고는 주변인이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다. 사람은커녕 오늘 날씨가 뭐였는지도 놓치고 사는 날이 있다. 하다못해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도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복잡하게 분석도 필요 없는 우직한 존재 하나쯤 정해 두는 게 좋겠다. 어느 날은 칙칙해 보이겠고, 어느 날은 더 다채로워 보일 테니, 상태창의 역할쯤은 톡톡히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