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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Jan 12. 2023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고 있었다

취향을 안다는 것은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 게 좋은지 안다는 뜻이다

“와, 나 이런 걸 좋아하지.”


일하던 직장에서의 퇴사가 가까워지던 시기였다. 동네에 있는 큰 서점에 가서 진열대의 베스트 셀러를 둘러보고 있다가 문득 입 밖으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떤 주제의 진열대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생생하다. 친구는 옆 진열대에 서서 책을 살펴보고 있었고, 나는 무엇인가에 시선이 꽂혀 다른 칸으로 갔다. 이색적인 곳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서점의 진열대, 시선을 홀리는 제목 몇 가지, 예쁜 디자인의 표지, 그 시기에 사람들이 찾는 책으로 채워져 있는 매대, 한쪽에는 문구 용품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방향제 종류가 있어 서점에 향기를 더했다.


그런데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지금 사람들의 흥미가 어디에 꽂혀있는지, 무슨 취미를 찾는지, 제태크 관심사는 어떻게 되는지 진열대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나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입으로 툭, ‘아, 나 이런 걸 좋아하지.’라는 말이 뱉어졌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맞아, 난 이런 걸 좋아해.’라며 자문자답했다. 내가 나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 곁들이는 퇴근만이 특별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잊고 있던 재미를 다시 발견한 것은 즐거움이었다. 나는 다른 칸에 있는 친구에게 곧장 가서 같은 말을 전했다.


“야, 나 방금 혼잣말로 ‘와, 나 이런 걸 좋아하지.’라고 했다? 그것도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형이라고.”


“그게 뭐야. 슬프잖아. 무슨 삶을 산 거야, 대체.”


친구와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때론 그냥 웃어버리는 것도 위로의 한 종류겠다. ‘내가 이런 것을 좋아하고 있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입 밖에 내뱉은 뒤, 혼잣말로 한 번 더 끄집어내고, 친구에게 가서 또 말로 꺼냈다(그리고 지금은 글로 쓰고 있네). 입 밖으로 꺼내서 내 귀로 들리게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 온 또 다른 나에게 멋쩍어서, ‘나 그렇게까지 널 잊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야’라는 속내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살면서 자신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하물며 나의 얼굴은 일평생 내 눈으로 직접, 빛의 왜곡 없이 바라볼 수 없다. 자연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남을 바라보는 시간이 월등히 많다. 좋게 말하면 외부에서 배움을 얻으며 성장해 간다고 할 수 있겠고, 나쁘게 말하면 주변에 휩쓸리기 좋은 상태라 할 수 있겠다. 독보적인 존재 같은 연예인을 보며 나 또한 멋들어진 옷을 입고 사진을 남기고 싶고, 그들의 일상도 따라 해 보고 싶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모방을 가장 잘하는 포유류다. 혼자 떨어져 나가면 죽는다는 조상의 기억이 DNA 깊숙이 박혀있어서 무리에 소속되고자 하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 어떤 분야이든 관계없이, 큰 무리를 이끄는 유명인을 따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의 본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기본 교육을 받으며 여러 교훈을 쌓아왔기에 보통은 무지성으로 유명인을 따라 하진 않는다. 우리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으며, 건강한 식단과 운동을 챙겨야 하고, 책이나 영화 등의 매체로 겪어 보지 않은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바디프로필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본다. 존경하는 인플루언서처럼 바디프로필이라는 기간을 정하고 몰입해서 목표를 달성하고 그에 대한 보상과 인정까지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그 행동 자체도 나쁠 게 없는 (필요성은 알지만 실천을 못 해왔던) ‘운동’이다. 물론 운동이란 게 외면적인 모습만 바꾸는 것이 아닌 내면적인 성장도 이뤄내는 활동이다 보니,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면적인 부분에만 집중한 사람들에게는 부작용을 남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운동이라는 하기 싫은 것을 하게끔 끌어낸 해당 챌린지의 영향력을 좋게 생각한다.


말이 나왔으니 이어서 내가 생각하는 내면 이야기를 해보겠다. 위의 내용과 같이 외면은 모방할 수 있다. 김종국의 몸매를 가지고 싶다고 하면 목표에 맞게 운동과 식단을 하면 된다. 정 운동만으로 안되면 그 외의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모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심리, 의식의 영역은 시각으로 확인할 수가 없어서 모방한다고 해도 상대의 발언이나 행동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따라 하는 것에 그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의 내면을 온전히 바라볼 수가 없으니 모방에 대한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는 것도, 변화된 나의 내면이 배우고자 했던 상대의 내면을 따라 한 결과라 여기기도 어렵다.


외면은 어떻게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은 온전히 바라보기 어렵다. 그래서 내 상태가 어떤지 잊기 너무 쉽다. 나를 잊은 채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으로 따라가다가는 자기 자신을 잃기가 쉬운데 특히 학교와 집, 회사와 집만을 오가는 사람들이 취약하다. 나는 특히 취미가 있는 바쁜 직장인을 존경한다. 삶이 여유로워서 취미를 가지고 소소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기에 부럽지만, 나와는 별개의 삶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바쁜 직장인이 자기 전에 그날과 어울리는 위스키를 하려고 하나씩 사모은다거나, 취향에 맞는 커피를 파는 특별한 카페에 찾아간다거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멋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에게 소비시켜 주는 모든 과정이 대단하다. 그들은 해당 활동이 자신에게 그만큼의 가치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깊이 파고든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분위기가 좋은 건지, 풍경이 좋은 건지, 커피 맛이 좋은 건지, 향이 좋은 건지, 친구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좋은 건지 등등 다양할 수 있다


‘좋다, 싫다’를 결정짓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사람의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쉽게 열리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직하니 취향이 같을 수도 있고 갈대같이 가벼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 모든 취향은 그 사람의 의식 아래층에서 무수한 계산을 통해 결정된 자기표현이다. 울고 있는 아기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아기는 뭔가 불편하고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덥다, 춥다, 배고프다, 졸리다, 등등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칭얼거림은 ‘날 봐주고, 날 챙겨’라는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이 단계에서 수시로 방임과 방치를 겪은 아기는 점차 울지 않는다. 울며 에너지를 소모해도 보상되는 결과가 없으면 아기는 표현하기를 포기한다. 이런 상태에서 병원에 오는 아기들은 주사기로 피를 뽑아도 울지 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울 줄 아는 아기가 요구할 줄 안다. 그렇게 내가 불편을 호소했을 때 지지해 주는 성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따라 아기의 표현 방식이 확장해 나간다. 학생이라고 다를 것 없고, 성인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다. 계속해서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 내면은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조차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순간이 잊히질 않았나 보다. 그때의 나는 근무 스케줄이 빡빡하기도 했고,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돈, 돈, 돈’ 거리면서 살다가 가끔 야식에 맥주나 하는 삶이었다. 나름 자기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어리숙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여러 정기 구독 시스템을 시작했다. 깊은 생각 없이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려는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것이라면 일단 시작해 봤다. 타임지를 구독하기 시작했고, 야채 꾸러미도 시켜봤다. 술 취향은커녕 카스와 하이트의 차이도 모르면서 전통주 구독을 시작했다. 그렇게 집에서 구독 물품을 받아 경험을 쌓다 보니 점점 나의 데이터가 쌓여갔다. 이런 맛은 좋고 저런 맛은 싫다. 향수, 커피 원두, 점점 다양한 구독 시스템이 늘면서 나의 취향을 분류해 주었다. 물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다 싶으면 구독을 해지했다. 흥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만 사용하기에는 구독 노예가 되기 쉬운 시스템이다.


한 달에 5만 원 정도로 소비해 다양한 전통주를 즐기다 보면 식당을 고를 때 괜히 ‘전통주’를 판매한다는 문구에 시선이 이끌리기도 한다. 아주 약간의 차이가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경험을 1년가량 쌓아가다 보니,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번 달의 구성을 좋아했는지 별로였는지, 좋아했으면 왜 좋아했는지 생각하다 보니, 단순히 구독 품목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상, 여행, 직장생활, 재테크 등등 다양하게 가지가 뻗어나갔다.


취향은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오늘 저녁은 가지볶음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날이 좋으면 퇴근하고서 산책하고 싶어지고,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봤던 ‘잭 더 리퍼’ 뮤지컬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뮤지컬 예매를 한다. 여행을 가면 하루는 노을을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고, 우연히 마주친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직장 생활로 보자면 일은 힘들더라도 사람 관계가 좋은 곳이면 좋겠고, 내가 소모품이 아닌 곳이면 좋겠다.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생긴다는 의미는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알아간다는 뜻이다.


인생에 있었던 여러 중요한 포인트를 적으라 하면 나는 분명히 그때 서점에서의 순간을 적을 것이다. 아마 그 당시의 친구는 기억도 못 할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좋아하는 것마저 잊고 있던 삶에서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삶으로 인생의 행로가 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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