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직장인이 뭐 어때서
갑자기 웬 꿈 이야기냐고?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꿈을 말한다니 이상할만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평범하다. 아니, 모두 같은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는 별다른 관심도 없어서 문제가 없었는데, 중학생이 되니 꿈과 진로에 대해서 자꾸만 물어본다. 그때부터는 뭔가 대단한 것을 써내야만 인정받고 통과되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꿈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써내라고 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숙제처럼 아무거나 막 써서 내버려야지. 그래야 더 이상 귀찮게 안 할 테고, 편하게 놀 수 있으니까.
나에게 꿈이란 딱 그 정도의 가치였다.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과학자’를 적어서 냈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과학자라는 꿈은 완전 마법의 키워드였던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왜 과학자인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를 더 깊게 묻지 않았다. 돌아보면 불행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더 이상 고민 안 해도 되는 그 순간만큼의 행복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꿈 찾기 프리패스권을 쟁취한 나는 속으로 외쳤다.
‘당장 내일도 모르겠는데 내가 14년 뒤에 뭐 할지 어떻게 아냐고!!’
당시에는 게임하기 바빴으니까 그 심정도 이해는 되지만 그게 결국은 내가 월급쟁이로 꾸준히 살아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은 취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전부터 내 인생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집안 곳곳에 붙어 있는 빨간딱지만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의 얼굴과 분위기를 보니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을 철없는 꼬맹이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쭉 살았던 아파트를 뒤로한 채 쫓기듯 서울로 올라왔다. 이삿짐으로 가득 찬 트럭에 몸을 숨긴 채로. 그렇게 우리 가족은 허름한 반지하 셋방으로 떠밀려 내려갔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인지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하나의 철칙 같은 것이 있었다. ‘사업만큼은 하면 안 된다.’ 사업이 아니라면 직장인이라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는다. 하나뿐인 것도 선택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심지어 운도 좋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점수에 맞춰서 갔던 대학교와 학과였기에 역시나 대학생활은 흥미롭지 않았다. 알바를 하면서 인터넷 동호회 활동에 전념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학교는 학점만 적당히 받으며 다녔고, 학교 사람들과 술 마시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흔한 MT도 한 번을 참석하지 않는 아싸 중에 아싸였다. 동기였던 형의 추천 덕분에 다른 과의 과목이었던 ‘이동통신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한 번의 강의 수강 덕분에 내가 들어가 보고 싶은 직장도 생겼다. 갑작스러운 허리디스크로 누워 지내던 시기에 심심해서 시작했던 토익 공부 덕분에 어쩌다 보니 토익 점수도 400점 이상 올라서 취업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면접을 아주 그냥 제대로 말아먹었는데 뽑힌 걸 보면 큰 역할을 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꿈도 없이 살고 있는데 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어쩌면 꿈이나 목표 같은 것들은 내 인생에 불필요한 조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쌓일수록 ‘꿈’이라는 단어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온 우주가 아주 그냥 나를 직장인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느낌도 든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손흥민 선수나 김연아 선수처럼 어렸을 때부터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고,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꿈을 꾸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힘들게 대학 가고, 취업하고, 돈 벌기도 바쁜데 무슨 꿈같은 이야기인가. 낭만주의자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매년 월급쟁이인 나를 힘들게 괴롭히던 것은 자신의 장기적인 목표가 뭐냐는 질문이었다. 이제는 좀 끝나려나 했었는데 또다시 지긋지긋한 진로 상담이 시작된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는 뭐냐고? 임원을 다는 것!
10년 뒤에 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싶냐고? 그때쯤 연차에 맞는 직급에서 굴러다니고 있겠지.
그동안 공부했던 수학적 능력을 발휘해 지금 연차에 +10을 해서 직급을 계산하고, 장문의 글짓기를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역시나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내가 뭘 써서 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냥 제출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내면 성의 없다고 혼나고, 너무 늦게 내면 왜 빨리 안 하냐고 혼나니까 적당한 속도로 내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임원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날 하루 빼고는.
‘꿈은 잘 때나 꾸는 거지. 근데 요새 피곤해서 꿈도 잘 안 꿔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