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이 Oct 13. 2024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난 걸까

1부. 직장인이 뭐 어때서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내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까?’


특별히 선택한 것이 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니 어쩌면 내 삶의 가이드라인이 이미 다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대단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더라도 그냥 태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초라한 느낌도 든다. 갑자기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노력을 했냐고 묻는다면 또 말문이 막히게 되니까. 


‘나는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난 거다.’ 

아니, 이건 너무 슬프잖아?


열심히 살아도 저기 구석 자리를 선점하신 부장님이나 보고 할 자료만 독촉하는 파트장님 정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와… 싫네’라는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궂은 잡일도 군말 없이 해왔었는데 정작 이런 것에서 더 크게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진짜 나를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금세 이런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잡일에 집중해야 했지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H사 출신 아님 주의)


회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렇다고 잘한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직원이었다. 일단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론을 기초 삼아 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어째 점점 노하우만 쌓이고 있었다. 아무리 잘한다 잘한다 해줘도 내 실력을 내가 아니까 계속 불안함만 쌓여갔던 것 같다. ‘이 정도는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것 같은데….’ 대체 가능한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는 참 순수한 신입사원이었던 것 같다. 초년생에는 받는 월급만큼 내가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나중에는 물론 이름만 대기업이지 돈 주는 걸 보면 중견기업이라며 동기들과 한숨 쉰 기억이 있다. 나도 찌들었구나.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이 특정 비율만큼의 또라이는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규모가 큰 곳이다 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서 힘든 일들도 많았다. 


갑질, 폭언, 욕설, 어떤 경우는 구타, … 


아침 미팅 시간이었다. 플렉시블 근무제도가 나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에 아침 미팅을 열었다. 말이 미팅이지 아침에 혼이 나거나, 일을 받거나, 잔소리를 듣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듣거나 딴생각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후자였고,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선임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 

애초에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 보면서 그러는 것도 싫었지만 퇴근하고도 장문의 문자를 남기는 그 사람을 매일 마주치는 게 고역이었다. 절실하게 회사에 가기 싫도록 만들었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퇴사를 꿈꾸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전화 1통에도 습관적으로 욕설을 꾹꾹 눌러 담아서 말하시는 파트장님도 있었다. 나는 애써 귀를 손가락으로 가리면서 막고 있었는데 이때 동기는 욕의 횟수를 세어보았다고 한다. 약 23회. 둘 다 여러모로 대단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어떤 파트장은 사람을 때린다고 했다. 한번 더 때리면 고소하겠다며 녹음기 준비를 고민하던 동기도 있었다. 사내 보안 때문에 어차피 녹음을 못할 테지만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헛웃음만 나오지만 그때 당시에는 하나같이 충격적인 일이었고,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세뇌당한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의욕이 생기지 않을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전 04화 그런데 꿈이 뭐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